김치 수출업체들이 세계시장을 겨냥하여 큰 김치 공장을 만들어 운영하다가,
하나 둘씩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사연의 뉴스를 보면서 무척 안타까웠다.
저가 저품질의 중국산 김치에 밀려 일본시장에서부터 가격경쟁력을 잃고
세계로의 수출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월드컵을 계기로 세계 속에 우리 김치의 독특한 맛을 이제 겨우 알려 놓으니
효자 노릇하나부다 싶던 김치가 남의 나라 사람들 좋은 일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김치보다 확실한 우리 것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처음엔 발빠른 일본한테
세계 시장에서 김치 원조 나라의 이름을 빼앗길 뻔하질 않나 세계 시장으로의 진출 먼저 하질 않나
이젠 상품 판로까지 인본인, 중국인에게 내주게 될 판이니
죽 쑤어서 남 좋은 일 시킨 꼴이 된 것 같아 참 어이 없게 생각된다.

중국은 인건비랑 생산비가 싸게 먹히니까 우리 김치를 자기네 식으로 절인 배추를
달착지근하게 만들어 김치라 이름하여 낮은 가격에 일본으로 수출한다고 하는데
일본 사람들은 그것도 김치라는 이름을 달았으니 한국의 김치로 알고 있다니 더 기막힐 일이다.
적어도 우리네 김치 맛이란 발효시켜서 숙성시킨다는 것이 특징인데 과정도 다르고
양념 맛도 다르게 해놓고 김치라 이름 붙이면 우리의 김치 맛의 이미지도
나빠질 것이 분명하여 더 안타까운 일이다.

또 모 일간지 '인문사회'면 한 코너에서 "한국에선 김치독을 왜 땅에 묻을까?"란
제하에  '세계문화이해'라는 책에 대한 소개와 아울러 기자의 지적이 눈에 띄었다.
책에는 한국에서 김치독을 땅에 묻는 이유에 대해 '한국은 외국의 점령으로 고통을 겪었고
이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김치가 외국 군인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땅속에 묻었다' 는
구절이 나오는데, 공감할 수 있는가였다.

그 책에 그렇게 기록이 되었다면 나는 절대로 그것을 공감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저자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을, 감히 남의 나라 문화이해 운운하면서
책에 기록해놓은 것에 대해 반박해 주지 않고서는 언짢은 기분이 가시지 않을 것 같다.
그 저자가 잘못 이해한 점을 내 나름 대로 밝혀 보고자 한다.

우리 나라에서 김치를 담아 먹게 된 동기를 보더라도 옛날에는 적정한 온도로
유지시킬 수 있는 시설이 없었기에 채소를 오래 보관하였다가 먹는  방법의 하나로
처음엔 염장하는 방법을 사용하다가 배추에 고춧가루, 마늘, 파 등의
양념을 넣어 버무린 다음 발효시켜 먹는 김치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겨울철에 비타민 C를 섭취할 수 있는 채소류를 보관하는 방법으로
땅에 구덩이를 파서 무, 배추 등을 묻어두었다가 하나씩 꺼내 먹기도 했다.
알맞게 절인 배추에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 인 등의 무기질이 들어 있는 마늘, 파, 갓, 미나리 등의
채소류를 넣고 단백질과 칼슘 섭취를 할 수 있는 젓갈과 맵지만 펩사이신이 들어있는
고춧가루에 골고루 버무려 발효시키는 김치를 담아서 겨울에 결핍되기 쉬운
각종 영양분을 섭취하여 겨울철 건강을 지키도록 한 것은 참으로 뛰어난 조상들의 지혜라 할 수 있다.

겨울 동안에 가장 좋은 맛의 김치를 먹기 위해서 김치를 독에 담아서 땅 속에 파묻었다.
이것은 우리 조상들이 상당히 과학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겨울에 지상의 온도는 영하로 내려가게 된다.
영하로 내려가면 김치가 얼게 된다. 얼면 맛 또한 떨어진다.
그렇다고 실내에 들여놓으면 온도가 일정하지 않으니 맛의 변화가 빨리 올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김치를 담아서 땅속에 묻으면 땅속 온도는 지상이 영하로 내려가더라도
영상 섭씨 4도 정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얼지 않는 냉장 최저 온도에서 잘 발효하고 숙성된
맛있는 김치맛을 유지할 수 있으니 조상들이 김치를 땅에 묻었던 것은 얼마나 과학적인가.

주택에서 아파트 주거문화로 많이 바뀐 한국인들에게 김치냉장고는
필수 생활가전제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김치냉장고를 처음 만든 회사에서 김치냉장고를 만들게 된 것도 소련인공위성 제작에
참여했던 냉동기술 과학자의 얼지 않는 냉장 최저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기술을 도입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또 가장 발달된 현대 기술로 만든 유명 김치냉장고 회사의 인터넷 홍보 문구에서도
옛날 우리 선조들이 김치독을 땅속에 묻어 김치맛을 살렸던 선조들의 지혜를
현대기술로 재현하였다고 하였다.
땅속 흙이 김치독을 둘러싸고 있어 일정한 온도로 유지되는 것과
동일한 원리를 적용한 항아리 냉각 방식을 채택하여 만들어서 가장 신선하게
전통의 김치맛을 잘 보관할 수 있는 냉장고라고 적어 놓은 것을 봐서도
김치독을 땅속에 묻는 것은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보관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는가.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과학적 사고를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는 게 또 있다.
김치를 담아 보관한 그릇으로 항아리를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항아리는 흙으로 빚은 것이다. 그러기에 한지로 바른 창호문에서도 그렇고
우리네 온돌방의 장판에서도 그렇듯 항아리는 자연 친화적인 것으로서 숨을 쉬는 것이다.
그래서 땅속에 김치독을 묻었을 때 오래 보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독에 담아 묻었기에
김치 맛을 싱싱한 채로 보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김치독 말고도 한국인은 흙으로 빚은 독에 간장이며 고추장, 된장 등을 장독대에
보관하기도 하고 온갖 곡식을 독에 넣어 광에 보관하기도 한다.
또 쌀을 담아 보관하기도 한다.
쌀독은 마루 한 구석이나 광에다 보관한다.
세계문화이해라는 책 속에 '한국은 외국의 점령으로 고통을 겪었고 이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김치를 외국 군인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땅속에 묻었다'는 말 대로라면
한국인들이 곡식이나 쌀 또는 간장, 된장, 고추장 독은 땅에 묻지 않고
유독 김치독만 묻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김치독을 땅속에 묻어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하기보다는 쌀독이나 곡식이 든 독을
묻어야 되지 않았을까 하고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인이 김치독을 땅에 묻은 까닭은 점령 외국 군인들의 눈 따위를 피할 방도로
땅에 묻은 게 아니라, 겨울 동안 김치맛을 가장 잘 보관하기 위한 과학적인
방도로 땅에 묻었다고 하는 게 바람직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