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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김영월 |
날짜 : 17-08-17 23:12
조회 : 1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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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프라우의 만년설
알프스는 유럽대륙의 척추 역할을 하고 있는 아름다움의 보고가 아닐 수 없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와 독일, 스위스까지 무려 5개 나라에 걸쳐 있지만 그 중에서도 스위스는 알프스 산맥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다. 스위스 하면 알프스를 떠올릴 만큼 그림 같은 지역이 아닐 수 없다. 유럽의 정상으로 여겨지는 융프라우를 향하는 설레임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인터라켄(INTERLAKEN)이란 지명 자체가 ‘호수와 호수 사이’에 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곳에서 등반열차를 타고 융프라우(해발 3454M) 정상을 향한다. 목적지까지 열차를 갈아타는 횟수만 해도 오를 때 3번이고 내려 올 때 3번이니 잘못 타거나 시간을 어기면 낭패를 당하기 마련이다. 인터라켄에서 출발하여 1000M 고지까지 그린델발트에서 갈아타고 다시 2000M고지에서 클라이네셰데그 라는 역에서 다시 암반 지구를 통과해 정상으로 오르는 지난한 코스를 밟는다. 하산할 땐 반대편 방향으로 다이어몬드형을 그리며 내려오도록 멋진 코스가 이어진다. 톱니바퀴식 레일 위를 전동차로 오르는 기술도 대단하지만 거대한 암벽을 뚫고 통과하는 터널 코스가 얼마나 난공사가 이루어졌는지 미루어 짐작케 한다. 세계인의 관광코스 일번지라 할 수 있는 만년설의 경치를 보여주기 위해 이렇듯 피눈물나는 공사를 이루어 낸 그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어진다. 얼마나 많은 시일과 인력, 자본, 기술력이 동원됐을 것이고 무엇보다 사고로 희생된 인부들도 적지 않았으리라. 1896년에 착공하여 차례차레 구간별로 개통하여 약 120년의 역사를 가진 유럽 최고의 고산을 달리는 산악열차인 셈이다.
전망대에 오르기 전에 바위 터널을 개발하여 ‘얼음의 궁전’으로 멋지게 꾸며 놓았다. 화려한 조명과 함께 스핑크스 및 물개와 펭귄, 북극곰 등의 얼음 조각품이 눈길을 끌었다. 어찌나 터널 안이 온도가 낮던지 두꺼운 옷을 입는 건 필수인 듯싶다. 실내를 벗어나 야외 통로로 걸어 나오니 눈부신 만년설이 바로 발밑에 밟혔다. 주변의 고봉준령이 하얀 면사포를 쓰고 신부의 자태처럼 드러난다. 이 곳이 정상임을 알리는 빨간 깃대봉이 꽂혀 있어 마침내 감격의 순간을 맞이한다. 수많은 알피니스트들이 히말라야 같은 고봉에 죽을둥살둥 두 발로 걸어올라 정상에 이르는 기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해냈다’는 느낌은 비슷하지 않으랴. 더구나 나는 심장 쪽에 문제가 있어 은근히 걱정을 많이 했다. 수년 전에 남미의 안데스 산맥에 있는 맞추피추를 오를 때도 고산병에 시달려 혼난 경험이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여행 오기 전에 미리 준비한 휴대용 산소 공급기를 지참하지 않았더라면 이번에도 똑같은 증세에 결코 무사하지 못했으리라. 가슴이 턱 막혀오고 어지럼증이 생기는 느낌이 와서 겨우 참고 분사식 산소를 콧구멍에 대며 가까스로 견뎌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대부분의 일행들은 괜찮아 보이는데 일부 몇 분은 증세가 오는지 괴로워하는 듯해서 분사기를 빌려 주었다. 아내는 의외로 멀쩡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그나마 고마울 지경이었다. 젊은 가이드는 이런 고산병 증세는 아무것도 아니란 듯 신경 쓰지 않지만 당사자로선 치명적일 수도 있으니 스스로 챙기는 게 유비무환이 아니랴.
만년설 한 줌을 움켜쥐고 그 안에 고여 있을 태고의 시간을 가늠해 보고 반갑다는 인사도 해 본다. 계곡 아래 가만히 엎드려 누워 있는 설경과 침묵의 미소를 안고 있는 융프라우 앞에 경건함을 느낀다. 잠깐의 상봉을 뒤로 하고 다시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 하산을 서둘러야 하는 관광객들의 초라한 모습에 끼어든다. 만년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변함없는 모습 그대로 자리를 지키며 깊은 침묵 속으로 가라앉으리라.
빙하가 녹아 흐르는 알프스의 계곡은 천상에서 하얀 비단 띠가 흘러내리듯 폭포수가 쏟아진다. 청옥 빛을 띤 맑은 물은 산장 마을의 생명수가 되고 그림 같은 초록들의 뿌리를 적신다. 민들레 꽃 비슷한 작은 풀꽃들이 산기슭마다 하늘의 별들이 내려 와 앉은 듯 은은한 별밭을 이루고 있다. 잣나무 종류의 침엽수들이 키재기를 하며 신록의 숲을 펼치고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내려가는 산악열차의 하산 길은 황홀한 자연의 파노라마를 선물한다. 오월을 맞이한 봄날의 기적이 알프스의 속살을 드러나게 하고 어디선가 요들송이 아스라하게 들려오는 것 같은 차창에 기대어 꿈결 속으로 빠져 든다. 이런 곳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열흘쯤 머물러 갈 수 있는 행운이 왔으면 좋으련만,
봄날의 초록이 흐르고
키 작은 민들레 꽃
무수한 지상의 별들로 내려앉았다
하얀 면사포에 싸인 고봉준령들
모나리자의 미소보다 신비한 빛
만년설 한 줌을 손에 쥐고
아득한 음성에 눈을 감는다
사방팔방을 둘러봐도
알프스가 그려 놓은 봄날의 명화
융 . 프 . 라 . 우
그의 속살 앞에 무너진다.
- 졸시. 알프스 융프라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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