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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12] 위험한 도전挑戰 - 복제인간이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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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최원현 |
날짜 : 03-11-25 22:00
조회 : 2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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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복제 인간이 우리와 함께 공존하게 되는 세상을 예상하며 일어날 수 있는 한 예를 가상으로 꾸며 본 것입니다. +++++
최 원 현
나의 출생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된 것은 참으로 우연이었다.
정말 우연히 책장을 정리하다 낡은 책들을 보게 되었고, 거기서 아빠의 옛날 노트 한 권을 발견케 되었던 것이다.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노트를 펼쳐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어떤 보고서를 쓰기 위한 준비 작업의 노트처럼 보였다. 나는 이것을 버려도 되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남겨 두어야 할까를 생각하면서 그 결정을 위해 내용을 잠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런데 노트의 맨 뒤 페이지에 사진이 한 장 붙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사진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이 사진을 왜 여기다 붙여 놓았을까 하는 의아심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사진은 바로 나의 아주 어릴 때 사진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보고서를 작성하기에 내 사진이 필요했을까? 아니 보고서와 전혀 관계없이 내 사진을 가지고 있다 그곳에 그냥 붙여놓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갑자기 나의 가슴은 가쁘게 뛰기 시작했고, 나는 어느 새 노트의 첫 부분을 읽고 있었다.
글씨는 분명 아빠의 필체였고, 노트에는 복제인간에 대한 연구를 해 나가면서 쓴 연구자의 갈등과 고뇌를 기록해 놓은 일기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내용과 나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내 어릴 적 사진이 붙여 있었던 것일까? 의심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나는 방안 정리를 어떻게 마쳤는지도 모르게 끝내고 그 노트만을 들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처음부터 내용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꼭 20년 전인 것 같다. S대학과 Y대학에서는 아주 중요한 공동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인간복제, 우수한 남녀를 결혼시켜 우수한 자녀를 만들어내자는 시도는 결혼문화에서 특별한 사항이 될 수 없는 요즘 같은 시대이지만 복제를 통하여 우수한 자질을 보유한 생명체를 동시에 대량으로 탄생시킨다는 데엔 많은 갈등과 반대가 없을 수 없었으리라.
우선 그것이 인간 생명의 존엄과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아니냐는 신앙적 및 도덕적 반대에 부딪혀야 했을 것이고, 또 이것이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계획은 진행되었고, 그 주 연구자가 아빠였으며, 그 결과가 바로 '나'라는 것이니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인가.
갑자기 세상이 붉은 색, 노란 색, 까만 색 등으로 걷잡을 수 없게 보이기 시작하고, 극도의 혼란으로 도저히 가슴을 진정할 수가 없다.
더욱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나 하나가 아니라 동시에 여섯이나 함께 복제되었다는 사실이다. 아니다. 그 후로도 더 많이 복제했을 수도 있는 일이요, 그렇다면 나와 같은 복제인간이 어쩌면 나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여럿이 함께 살고 있을 수 있다는 말이 되는 것 아닌가.
그 날로부터 나는 밤이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눈만 감으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머리가 여섯 달린 괴물 히드라 같이 나와 똑같은 얼굴을 여섯 개나 달고있는 괴물이 내 옆에 누워있는 것 같고, 어떤 때는 천장에서 거꾸로 내려다보는 것 같아 도저히 눈을 감을 수가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를 낳고 키워 준 부모에 대한 신뢰가 일순간에 무너져 버리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나와 같은 복제인간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처럼 복제된 인간일까? 그리고 나보다 나이가 어린 아이들의 경우엔 훨씬 더 많을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 수많은 양과 소와 돼지가 복제되었고, 어떠한 용도가 되었건 그 2세, 3세가 대량으로 태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인간의 복제는 법적으로 금지한다고 하지만 불임부부들 사이에선 이미 오래 전부터 공공연하게 배아복제를 통해 자녀를 얻고 있지 않던가. 그러나 불임이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 실험 대상 내지 애완동물처럼 인간 복제가 이뤄졌고, 그 복제인간이 바로 나라는 사실 앞에서 나는 나 스스로를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나와 같은 존재들이 있을까? 나와 같이 태어난 나머지 다섯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아빠와 엄마에게 나 혼자만인 것으로 볼 때 내 아빠 엄마는 연구적 동료일 뿐 부부간의 정 같은 건 애당초 없지 않았을까? 연구 목적상, 관찰 목적상, 그리고 연구의 필요성 때문에 형식적으로 부부란 모양을 갖추고 있는 것 아닐까?
내 상식으로 알고있는 자식의 의미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결정체라 생각했었는데 그렇다면 인간이 인간을 상품처럼 생산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러한 개념이 계속 성립될 수 있는 것일까.
인터넷에 들어가면 쉽게 눈에 띄는 복제인간 제조회사의 광고가 계속되는 것을 보면 이미 공공연하게 사회는 모든 것을 인정해 준 것이 아닌가.
인간의 혈연관계도 아무 의미가 없어져 버리고, 얼마 안 있으면 이 세상은 온통 주문형 인간 복제의 시장이 되고 말지도 모른다.
문득 친구들 생각이 났다. 어쩌면 그들도 나와 같이 복제된 인간이 아닐까? 아니라면 아닌 그들이 내가 복제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나를 어떻게 볼까?
무엇보다도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나와 같은 복제인간이 나오고 있을 수 있고, 또 냉동 보관된 수정란은 언제든 시기를 달리해 복제해 나갈 수 있을 것 아닌가.
파란색 안경을 쓰면 세상은 파랗게 보인다. 복제인간의 눈엔 세상의 사람들뿐이 아니라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이 복제된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어느새 하나님은 인간에게 창조의 권한 마저 빼앗겨 버린 상태가 아닌가. 아니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 앉아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가슴엔 돼지의 몸에서 자란 젊은 심장이 대신 바꿔 이식되고, 늙어 가는 피부도 돈만 내면 젊고 싱싱한 피부로 교체가 될 것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더 젊을 수도 있고, 외형으로 나이를 판단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자식이 필요하면 주문하면 되고, 아내나 남편이 필요해도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더 두려운 것은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당사자들이 어떻게 자신을 받아들일 것인가이다. 인간의 한계상황이었던 생명의 신비가 깨어지고, 언제든 소모품을 교체하듯 부품 교체가 가능하여 수명을 연장해 갈 수 있는 기계 같은 인간, 인간에겐 종교도, 신도 필요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어쩌면 나와 같이 복제된 다른 생명체들에는 이름 대신 2호, 3호, 4호라는 연구적 명칭이 붙어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계속 추적 관찰되어지면서 인간의 욕구와 수요에 충족할 더 많은 종류의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가고 있는 것 아닐까.
나도 모르게 감짝 놀랐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나는 자석처럼 그에게 이끌려 그를 뒤따르고 있었다. 그가 이 것 저 것 물건들을 둘러보는 동안에도 나의 눈은 그에게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가 멈춰 티셔츠 하나를 사고나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하자 나는 걸음을 더 빨리 해 그를 앞질러 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그가 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바라보다 바로 옆의 나를 본 것 같다. 나와 눈이 마주쳐졌다. 순간 그의 온 몸이 굳어버리는 것을 나는 분명 감지했다. 내가 눈웃음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역시 굳어버린 채였다. 석상이라도 되어버린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내가 소리를 내어 인사를 했건만 그는 미동도 않은 채 그대로 서 있을 뿐이었다. 다행히 사람이 없는 때였다. 엘리베이터가 와서 멈추고, '내려갑니다!' 하는 안내가 있어도 그는 그대로 서있었다. "잠깐 얘기 좀 해도 될까요?" 내가 다시 그와 나 사이의 정적을 깨트렸다. 그는 비로소 조금 풀려난 듯 했다. 엘리베이터가 다시 와 섰다. "올라갑니다!" 엘리베이터 걸의 안내를 들으며 성큼 안으로 들어가자 그녀가 따라 들어왔다. 엘리베이터 걸이 "자매분이신가 봐요?" 했다. 나만 살짝 웃어주었다.
우린 8층 스카이 라운지에 마주 앉았다.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럴 수도 있는 거예요?" 떨리는 목소리가 몹시 곱다. "그러게요." 나도 한 마디 했다. "이렇게 닮을 수도 있는 거예요?" 그의 물음에 나는 조용히 웃어 보였다. 그리고 "우리 진짜 자매 할까요?" 내가 다시 웃으며 말하자 그녀도 많이 놀라움에서 벗어났는지 표정이 밝아진다. "세상에 닮은 사람들도 많이 있지 않아요?" "그래도 우린 너무 많이 닮은 것 같아요." 그녀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나보다.
주문한 차가 왔다. 차를 가져온 아르바이트 학생이 둘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인사를 하고 갔다. 나는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세요?" "2003년 6월 8일예요." "그럼 내가 언니네요? 나는 2002년 4월 5일이거든요" 나는 쿡쿡 웃으며 순식간에 거짓말을 했다. 그녀는 전혀 의심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린 많은 이야기를 했고, 전화번호도 서로 교환했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는 나와 같은 복제인간일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그녀는 내가 알고있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집에 가서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그의 부모에게 하게 되면 그들의 반응은 어떨까?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그 노트를 발견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혼란에 빠지지 않을 수도 있었지 않은가. 하지만 내가 죽을병에 들어있음을 남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고 죽어 가는 것처럼 내 인생의 문제를 나만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나는 옆집에 사시는 할머니를 생각했다. 그 할머니는 혼자 사시는데 100살쯤 되신 것 같다. 아들도 딸도 있었지만 모두 이 할머니보다 먼저 돌아가셨다고 한다. 하기야 손자도 아들과 딸을 낳았다고 하니 그럴 수 있으리라. 가끔 할머니를 찾아오지만 할머니는 혼자 이렇게 사는 것이 편하다고 하신단다. 내가 이 순간에 그 할머니를 생각한 것은 저 할머니 세대엔 나의 고민 같은 것은 없었을 것 아니냐는 생각에서다. 오히려 지금의 이런 시대를 꿈의 세계로 부러워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앞으로 세상은 더 얼마나 변할까? 무섭고, 두렵고, 떨리기만 하다. 아빠 엄마에게 내가 알고 있는 이 사실을 말하고 그들이 추구하는 세계가 어떤 세계인가를 들어볼까? 세계적 권위자로 학계의 주목을 받고있는 과학자인 아빠 엄마에게서 얼마나 더 놀라운 일들이 만들어질 것인가. 지금쯤 나와 만났던 닮은꼴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혹시 그의 부모로부터 이런 사실을 듣게 되지나 않았을까? 그랬을 때 그의 충격은 어떨까? 세상을 보는 그의 눈은 어떻게 변할까?
책장 뒤편에 숨겨두었던 노트를 내일쯤엔 없애버려야겠다. 그리고 아빠 엄마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인간이어야 한다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아니 하지 않아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생명의 신비를 벗기는 것이 아니라 보존하는 것이라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용서하실 수 있으나 당신의 권위를 넘보는 어떠한 행위도 용서치 않는 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그래서 제발 이제부터는 그 일을 막아내는 일에 남은 생애를 바쳐달라는 간곡한 편지를 쓰겠다.
어쩌면 하나님의 마지막 사랑이 나에게 이러한 생각을 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차라리 세상을 볼 수 없는 눈이 되곺은 나의 마음을 누가 이해해 줄 것인가. 나는 뜨거운 사랑의 결정체로 태어난 생명이곺으다. 그런 아빠 엄마의 생명의 싹이곺으다. 필요하면 무엇이든 교체가 가능한 기계같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안타까워하는 수많은 눈과 가슴들의 배웅을 받으며 숨지는 그런 인간이고 싶다. 진짜 인간이고 싶다.
월간 <건강과 생명> 2001년 3월호/특집 복제인간/
최원현
작가. 칼럼니스트.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 회원. 한국수필문학진흥회 이사, 강남문인협회 수필분과회장이며, 제5회 허균문학상. 제1회 서울문예상을 수상함. 수필집 <날마다 좋은 날>, <아침무지개가 말을 할 때>, <살아있음은 눈부신 아름다움입니다>, 시집 <아름다울 수>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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