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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최원현 |
날짜 : 03-11-25 20:45
조회 : 2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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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빛 샘 마을 - 사랑 열매 따기
최원현 nulsaem@hanmir.com
시골에 내려갔다가 고추밭엘 나갔습니다.
몇 고랑은 고추나무를 뽑아내고 알타리 무를 심기 위해서였고, 또 익은 고추를 따내기 위함입니다.
얼른 보기에는 고추농사가 제법 되었구나 생각이 되었습니다.
헌데 막상 고추를 따려고 하니 딸 게 없습니다.
모두 벌레가 먹어 성한 것은 가뭄에 콩 나듯 하여 여간 속이 상한 게 아니었습니다.
1년 농사의 결과가 이렇게 되고 보니 참으로 허무합니다.
고추 잎을 조금 훑고 어린 약고추를 몇 개 땄을 뿐 따지도 못할 고추가 달린 고추나무를 그냥 뿌리 채 뽑아다 둔덕에 던져버리는 아픔은 차라리 원망뿐입니다.
문득 예수께서 열매도 없이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던 성서의 장면이 떠오릅니다.
여행으로 지치고 허기진 일행들과 길을 가다가 저 앞에 우람한 모습으로 서있는 무화과나무를 발견했을 때 그 반가움은 얼마나 컸겠습니까?
반가움과 희망과 기대로 모두를 들뜨게 했을 것입니다.
더구나 예수님에겐 그것이 단지 당신의 허기와 목을 추기게 되었다는 기대와 반김보다도 제자들을 비롯하여 함께 하는 일행들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다는 반가움이 더 컸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무는 잎만 무성할 뿐 열매 하나 열리지 못했습니다.
그 때의 슬픔과 절망 그것은 곧 분노가 되어 필요 없는 존재로 땅만 차지하고 있는 나무를 저주해 버리게 되었고 결국 나무는 죽고 말았습니다.
그때의 상황을 생각하면 내가 고추밭에서 맞을 수밖에 없었던 그런 절망보다도 더 큰 분노요 낙담이었을 수 있습니다.
세상일이란 꼭 마음먹은 데로만 되는 게 아니라지만 그만큼 땀을 흘리고 정성을 기울였건만 결과가 없으면 더더욱 안타깝고 서글퍼지기 마련입니다.
거기에 두 노인께서 쏟았을 그간의 정성과 애씀을 생각하면 마치 일순간에 모든 것을 도둑 맞아 버린 것 같은 기분입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고추에 무슨 죄가 있습니까.
차라리 때맞춰 농약이라도 뿌려주고 했더라면 이렇게 허무하진 않았겠는데 노인네는 자식들이 먹을 것들인데 벌레 죽인다고 사람 몸에 해로운 농약을 뿌릴 수 있느냐면서 어쩌다 한 개씩 따게 되는 고추지만 자연 그대로의 깨끗한 것만 먹게 하려는 사랑이 오히려 그렇게라도 남아준 고추에 감사하는 것 같았습니다.
며칠 전이었습니다.
갑자기 일이 생겨 택시를 탔는데 장난감 장사를 하시는 할머니가 함께 탔습니다.
헌데 그 할머니는 무언가에 몹시 서운해하고 계셨습니다.
왜 그러시느냐고 했더니 오전에 초등학교 2학년짜리 아이가 장난감을 사러 왔는데 10만원짜리 수표를 가지고 왔더랍니다.
그래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 아이에게 물어 아이의 집으로 전화를 했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10만원짜리 수표를 가지고 있다면 의당 그래봐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일부러 전화까지 해 준 그 할머니에게 아이의 젊은 엄마는 당신은 물건이나 팔면 되지 내 아이가 10만원짜리를 가져왔건 100만원짜리를 가져왔건 그것이 무슨 상관이냐며 우리 아이 기죽이지 말라고 오히려 막 화를 내더라는 것입니다.
이만큼 나이를 먹기까지 세상을 살만큼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들어선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겁부터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 말씀을 들으며 크게 공감했습니다.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참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일지 두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나는 지금 한껏 행복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은 1년간의 수고와 땀까지 벌레에게 대부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조금이라도 해로운 것을 자식들에게 먹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시는 크낙한 사랑, 그렇게 당신들의 맑은 방법으로 세상을 사시는 시골의 부모님이 한없이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사랑이란 많은 것을 주는 것보다 가장 귀하고 좋은 것을 주는 것이란 또 하나의 진리를 배웁니다.
이 가을, 아름다운 이 사랑으로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지금 고추밭에서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랑의 열매를 따고 있습니다.
 최원현 : 날씨가 쌀쌀해지고 보니 겨우살이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예전엔 연탄걱정. 김장걱정등 겨울을 시작했지요.
생활이 윤택해졌다고 해도 사람이 살아가는것은 여전히 마찬가지입니다.
무심히 지나칠 수 밖에없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또 다른 느낌과 생각으로 바라보는 글쓴이의 세심하고 따뜻한 마음이 정겹습니다.
무척 마음이 고우신 분 같습니다.
삶에 물질적인 것보다 넉넉한 마음으로 겨울준비를 해야겠어요.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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