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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최원현 |
날짜 : 03-11-25 20:51
조회 : 3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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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무지개를 보며
최원현/nulsaem@hanmir.com
무섭게 비가 내리던 뒤끝이었습니다.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하늘을 보라는 것입니다.
밖으로 눈을 돌리니 아, 거기엔 무지개가 너무도 아름답게 걸려있었습니다.
더구나 쌍무지개입니다.
어릴 적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의 일곱 가지 색깔을 외우며 무지개만 뜨면 일곱 색깔 무지개 색을 노래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무지개인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바쁜 삶 속에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사는 우리인데 이처럼 하늘을 가로질러 걸려있는 아름다운 무지개를 보게 되니 아이처럼 가슴이 두근대고 무언가 좋은 일이 막 생겨날 것 같은 예감이 들기까지 합니다.
무지개는 희망의 상징으로 우리와는 아주 친합니다.
성서에선 약속의 표가 되기도 합니다만 여하튼 무지개를 바라보는 마음은 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아름다운 기대와 함께 한껏 마음들이 밝아지게 합니다.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마음은 뛰노라
어렸을 때도 그러하였고
어른 된 지금도 그러하다
워즈워드의 시가 아니라도 우리는 무지개를 바라보면서 참 많이 가슴이 뛰는 것을 겪어온 바입니다.
오늘 내게 보여진 무지개는 어쩌면 요즘처럼 변화 없고 무덤덤하며 의욕조차 잃어버린 것 같은 내 삶에 힘을 내라는 격려인 것도 같고, 아무리 아름답고 귀한 것이라도 이내 사라지기 마련이라는 세미한 하늘의 음성 같기도 합니다.
그토록 찬란하게 아름답던 무지개는 조금 지나자 언제 그곳에 있었느냐싶게 점점 형체가 옅어지더니 이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아쉽습니다.
아름다운 이 무지개를 본 사람도 많겠지만 보지 못한 사람이 몇 배 더 많을 거란 생각에 안타까움이 더합니다.
힘든 삶의 순간에 바라본 무지개는 분명 큰 위로와 격려가 될 수도 있겠기에 말입니다.
중학교 다닐 때였습니다.
삼십여 리 길을 함께 다니던 친구가 학교를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상당히 잘 살던 집이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큰 형님이 다라 돌아가시더니 큰형수가 정신이 혼미해져 버렸습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집안이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친구는 학업을 중단하고 서울 어딘가로 돈벌이를 떠났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마지막 지점 우리 집 조금 못 미처 그네의 밭이 있었습니다.
마치 남미의 칠레 같은 기다란 밭을 지나면서 늘 그의 형님 내외가 철 따라 깔끔하게 농사를 짓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런데 형님에 이어 형수가 그렇게 정신을 놓아버리자 그 밭엔 잡초만 무성한 채 버려지게 되었습니다.
오고 가며 바라보는 마음이 여간 짠한 게 아니었습니다.
헌데 학교에서 돌아오던 어느 날 무지개가 그 밭 위로 걸려 있었습니다.
성황당이 있는 산 고개를 넘어가야 하는데 그 산 고개 너머가 바로 친구네 밭이었던 것이고, 분명히 내가 보기엔 친구네 밭에 뿌리를 박고 무지개가 서 있었던 것입니다.
그 순간 나는 그 밭과 논 사이에 있던 샘이 생각났습니다.
'그래, 틀림없이 그 샘에서 무지개가 피어올랐을 거야'
나는 걸음을 빨리 해산고개로 내달았습니다.
어떻게 넘어왔는지 모릅니다.
숨을 헐떡이며 바라본 곳, 샘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없고, 무지개는 또 그만큼의 거리로 우리 마을 맞은 편 산 뒤에 걸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망보다는 놀라움이 더 컸습니다.
아까 보았던 것보다도 더 짙게 무지개가 하늘에 걸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도 쌍무지개가 말입니다.
쌍무지개가 걸렸던 날 친구의 형수는 어디론가 집을 나갔다고 합니다.
나는 곧 졸업을 하게 되었고, 서울로 올라와 버렸기 때문에 그 이상 그곳의 소식을 듣지는 못했습니다.
얼마 후 친구를 서울에서 만났지만 차마 물어볼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그날 그의 형수는 어쩌면 혼미해진 정신 속에서도 찬란하도록 아름다운 무지개를 보자 무지개를 따라가고 싶었을 지도 모릅니다.
무지개는 어른이고 아이고, 남자고 여자고 마음을 슬프게 하는 무엇이 있는 것 같으니까요.
이처럼 누구에게나 똑같이 베풀어지는 것 같으면서도 받는 쪽에선 사정이야 어떻든 자기 것으로 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을 거란 생각도 듭니다.
내 가슴으로 조용하게 다가와 어린 날의 꿈도 살짝 들춰봐 주고 가슴 가득 희망을 안게 하는 무지개, 잠깐 보이고 만 것이지만 내 기억 속에는 선명한 모습으로 오래도록 남겨두고 싶습니다.
그래서 삶이 고달프고 힘들고 어려운 때 이 무지개를 바라보며 다시 힘을 내고 싶습니다.
그 때의 그 친구는 지금 인천에서 제법 큰 공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도 오늘 이 무지개를 봤으면 좋겠는데 아마 너무 바쁘게 사는 그이니 어려웠을 것입니다.
나라도 전화를 해줄걸 그랬습니다.
삶의 의미도 생각해 보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는 오늘 우리에게 무지개는 한번쯤 저 어린 날의 동심으로 돌아가 맑고 빛나는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섭리인 것 같기도 합니다.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마음은 뛰노라' 그런 감동, 그런 순수가 얼마나 남아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런 게 남아있지 못하더라도 가끔은 솔바람내 같기도 하고 갯내음 같기도 한 우리 삶의 내음 속에서 신의 냄새를 맡아보는 기쁨 같은 신선함으로 무지개는 우리 가슴속에 살아있는 것이 아니던가요.
무지개는 아름다운 하늘의 은총입니다.
쌍무지개가 아름다운 이 날은 축복의 날입니다.
희망입니다.
약속입니다.
행복에의 기대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오래도록 사랑하고 있다는 약속의 표입니다.
기쁨입니다.
최원현 nulsaem@hanmir.com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 회원. 한국수필문학진흥회 이사. 강남문인협회 수필분과회장.
<한국수필> 및 <월간 건강과 생명> 편집위원.
제5회 허균문학상, 제1회 서울문예상 수상.
수필집 <날마다 좋은 날>, <아침무지개가 말을 할 때>, 시집 <아름다울 수>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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