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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수필 6

장군과 졸병

류인혜


소문을 듣고 궁금했던 소설인『칼의 노래』를 요즘에야 읽었다. 거북선을 만든 주인공인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기초로 한 것이다. 장군은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그렇게 일기를 꼼꼼히 적어 후세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심정을 알리며, 당시의 일을 바로 전해 주었다. 잘 안다고 여겼던 사람에 대해서 쓴 글을 읽으며 선입견에 조금의 혼돈이 온다. 그래도 오래 전에 살다가 간 개인이 처한 시대상황과 인간적 고뇌를 소설로 꾸며 감동을 주니 멀리서 보던 사람을 가까이 대하듯 반갑다. 또 작가의 산문집을 읽어서 문장의 흐름을 익혔던지라 마음과 정신의 미묘한 조화를 만나 기분 좋은 소설이다.
이순신은 나이 54세에 이 세상을 떠났다. 지금의 내 나이와 같다. 가끔 내 나이가 몇 살인지를 잊어버리기에 필요할 때면 이렇게 손가락을 꼽아서 나이를 알게 된다. 온 국민이 존경하는 이순신 장군이 지금 내 나이 적에 나라를 위해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전사했다는 등의 비교가 될 만한 무엇인가를 만나면 살아온 날의 무게를 달아볼 수 있어서 반갑다.

학교에 다닐 때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며 나라가 초토화되다시피 기나긴 싸움이던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었던 장군에 대해서 얼마나 깊은 존경심을 가졌던가. 더구나 싸울 수 있는 군함도, 무기도, 군사도 부족했던 패전의 참혹한 현실에서 다시 군사들을 독려하여 어려운 싸움을 이끌어 갔던 사람이 아닌가. 그를 존경하던 대통령에 의해서 현충사가 지어지고, 광화문 네거리에 장군의 동상이 우뚝 설 때도 당연하고도 마땅하게 생각했다.
장군이 지은 시는 우리나라에서 공부를 하며 자라난 모든 학생들이 외우며 기억하고 있다. '한산섬 수루에 홀로 앉아 긴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끓나니'를 읽을 때마다 '긴 칼'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 얼마나 긴 칼이었을까, 늘 궁금했다.
광화문의 동상도 갑옷을 입고 칼을 옆에 찬 모습인데, 소설가 김 훈은 이순신과 칼을 오묘하게 어울려 놓았다.

임진왜란 당시의 해전에서는 포로 격침되지 않은 적군의 배에 올라가서 상대를 칼로 베어냈다. 싸울 무기가 부족하여, 좋은 칼이 무기가 되었기에 무기를 잘 만드는 사람들을 모아서 칼을 만들었다. 칼을 만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이순신 장군에게는 감사의 뜻으로 특별히 좋은 칼을 만들어 주었다. 혼자서도 공기를 가르면서 날카롭게 우짖는 칼이었다. 장군은 그 무섭고도 무거운 칼을 잘 다스렸다. 그래서 군인의 목적인 승리를 이루었다.

장군이 아닌 나는 칼이 싫다. 부엌에서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칼을 사용하면서도 칼이 무섭다. 조리용 칼도 다스리지 못하여 자주 손을 베어 일회용 반찬고가 손에서 떠나지 않았다. 생각해낸 방법이 칼 대신 가위를 쓰는 것이다. 가위를 사용하고부터는 베이는 일이 없어졌는데, 덕분에 날이 갈수록 칼을 다루는 솜씨가 무디어 진다. 가끔 가위로 해결되지 못할 때는 난감하다. 가끔 TV에서 주방장 모자를 높이 쓰고 나와서 처음에는 야채 써는 법부터 배웠다며 숙달된 칼 솜씨를 발휘하는 사람을 보면 주눅이 든다.

몇 년 전 일본 여행 때, 선물이라고 칼을 사온 남편의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한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일행이 '좋은 칼이다' 하며 적극 권해서 따라 샀다고는 하지만, 더구나 일본산이 아닌가! 칼은 용도에 따라 모양이 다른데, 남편이 사온 칼은 일반적으로 쓰이는 주방용이 아닌가 보았다. 그 칼의 날이 의외로 물러서 쉽게 망가져 잘 되었다하며 미련 없이 내버렸다.

만약 이순신이 명예심을 가진 자들에게 모함을 당한 것 같이 부엌에서 칼을 잘 다스리는 다른 여자에게 모함을 당하는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묵묵히 부엌의 자리를 내주고 백의종군을 하는 여유를 부릴 수 있었을까? 이런 망상까지 생기는 것이 조리를 하는 주부에게 가장 중요한 도구인 칼을 무서워하고 있기에, 그 자리를 잘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는 자격지심에서다. 음식에 까다로운 남편이 요리를 잘하는 마누라를 간절히 원하기에 부엌에서의 해방을 바라는 마음이 잠재되어는 있지만 솔직히 위기감도 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즘 칼에 대해 좋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호감이란 딱 부러지는 단어로 아직 느낌이 모아지지는 않아도 신문과 함께 넣어진 전단에서 여러 개의 칼을 꽂아놓은 칼꽂이를 보자 그 모양이 마음에 들었다. 칼자루가 품위 있게 나란히 정리되어, 칼이 칼로 보이지 않고 긴요한 부엌의 생활용품으로 보였다. 칼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여 이제야 주부가 될 자격을 갖추어 가나보다.
어느 사람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무사의 도구인 긴 칼을 휘둘러 싸우다가 목숨을 내던진 나이에, 주부의 도구인 부엌칼과 겨우 화해의 인사를 나누게 되려는 것이다.
이제 신병(新兵)이 칼을 잘 다스려서 무엇을 만들어 낼지 무척 궁금하다.(200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