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 오늘 방문자수 |
    |
| 어제 방문자수 |
 |
| 최고 방문자수 |
 |
| 방문자수 누계 |
|
|
|
|
|
|
|
|
|
|
|
|
|
|
| 글쓴이 : 류인혜 |
날짜 : 03-11-25 22:09
조회 : 4311
|
|
|
|
나무 이야기(2) - 나무 친구
류인혜
고향으로 내려가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고, 다시 서울에 온 것은 1965년이다.
같은 학교로 유학 온 친구가 용두동에서 잠시 살았기에 그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종로를 통과하여 동대문까지 다니는 전차를 이용했다. 살고 있던 영천(현저동) 전차 종점에서 전차를 타면 서대문 로터리를 거쳐 광화문을 지나갔다. 그 넓은 네거리가 대번 마음에 들었다.
서울의 지리에 조금 익숙해지자 광화문을 중심으로 돌아다녔다. 시청으로 향해 걷다가 서울신문사 자리에 있던 신문회관에서 전시회를 구경했고, 덕수궁에도 가끔 들렸다. 어떤 날은 반대쪽으로 걸어 국립박물관이 있는 경복궁에도 자주 갔었고, 경복궁의 담을 한바퀴 돌아 삼청동 길을 걷기도 했다. 청와대 앞을 통과할 때는 부동자세로 서있는 사람들에게 지레 겁이 나서 오금이 저렸다.
또 화신 백화점과 신신 백화점이 있었고, 길옆의 가게들을 구경하는 재미로 다녔던 종로의 길과 시청을 지나 북창동의 다른 전시관으로 가는 길의 중심이 되었던 광화문은 문화를 찾아다니는 활동의 본거지라 친근해졌다. 그리고 화재로 새 건물이 생기기 전의 시민회관 앞길에는 영화 촬영도 자주 있었다. 호기심이 많던 시절에 많은 시청각 교육이 그곳에서 이루어졌다.
광화문에 대한 정겨움으로 어린 시절의 추억이 많이 있는 서울이 더 정다워졌다. 그런데 특별히 그 길을 많이 지나다닌 것은 그림을 구경하기에 좋은 전시회장이 있었던 탓도 있지만 생각해보니 나무를 만나려 다닌 것이다.
고향에서는 눈만 뜨면 집 근처에 있는 산으로 올라갔었는데, 그 많은 나무를 보고 자라난 감성이 나무들을 찾아 나선 것이다. 덕수궁의 은행나무들, 경복궁의 잘 다듬어진 정원과 가로수가 좋은 시청주변 길을 배회한 것은 나무를 가까이 하고 싶은 마음이 잠재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즘의 광화문 네거리 근처는 동아일보의 사옥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서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세월에 따라서 많은 건물이 재개발되어 다시 세워졌고, 유명한 국제극장도 없어졌다.
교보빌딩이 그곳에 자리잡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자주 다니는 곳에 큰 서점이 들어서 책을 마음대로 볼 수 있는 것도 환영할 일이지만, 건물 뒤편에서 로비로 통한 공간에 있는 크고, 천장이 높은 온실에 관심이 있었다. 처음 온실이 만들어졌을 때, 신문에서 기사를 읽어 키가 큰 식물도 실내에 심을 수 있다는 새로운 온실 구경을 하고 싶었다. 식물원을 내려다보고 싶어서 일삼아 로비에서 은행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내렸다.
건물 밖에는 봄이면 라일락이 만발했다. 그곳의 라일락 나무는 멋지게 다듬어져 있다. 친구네 집 정원에 심겨진, 가지가 무성한 라일락이 부러웠던 때, 따로 꽃밭을 가꿀 수 없던 처지에 교보빌딩의 라일락 나무는 하나의 위안으로 다가왔다. 이곳 저곳을 다니지 않아도 그곳으로 가면 나무를 만날 수 있었기에 자주 가서 나무를 보고 향기를 맡았다. 나무들은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 많은 말이 없어도 자연에 대한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경기도로 이사가 결정되자 서울을 떠나면 광화문에 자주 나오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일부러 그 나무를 보러갔다. 친구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간 것이다. 마침 종로로 가는 버스를 만나서 그것을 타고 종로 일가에서 내렸다. 교보빌딩까지 천천히 걸었다. 나무 친구는 그곳에 있을 것이다. 약속시간을 정하지 않아도 언제나 기다려주는 편안함에 걸으면서 노래까지 부르고 싶어졌다. 언제부터는 늘 서둘러 그곳을 통과하였기에 아쉬웠는데, 중요한 것을 아끼듯 만나려 가는 시간을 즐겼다.
건물 앞쪽으로 돌아가는 모서리에서 먼저 만난 라일락 무더기에 눈인사를 한다. 여전히 둥그런 몸가짐으로 제 자리에 앉아서 묵묵히 바라본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가지 사이를 얽어놓은 대나무가 생소하다. 이제는 나무의 나이가 많아져 가지들이 서로 대나무에 의지하여 수형을 지탱하고 있다. 뿌리에서 올라오는 나무의 줄기가 차지하는 땅이 좁다. 뻗어나간 많은 가지가 중심으로 모여 서로 껴안고 있는 듯 큰 원형을 이루고 있다. 같은 땅에 심겨진 나무 가족이다. 사람들이 한 가족으로 어우러져 사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건물 앞의 버스 정류장에 일렬로 도열하듯 심겨진 느티나무에도 인사를 했다. 도심에 있는 공원처럼 광화문에서 만나서 정을 나누었던 오랜 나무 친구들을 눈으로 더듬어 본다. 이제는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은 아쉬움으로 작별을 했다. 나를 데려다가 키워주고 정신의 양식을 채워주던 서울을 떠난다.
2001년 11월 23일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