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낫을 잡고 한참을 구슬 땀을 흘리다 보니 허리도 아파오고 허벅지 근육도 땡긴다. 벌써 낮 참 시간이 되었는지 이장 어머니가 밀가루 빈대떡하고 막걸리를 가지고 오셨다. 이장네 하고는 아무런 이해 관계도 없는 가을 걷이인데 이렇게 챙겨주시니 이게 시골인심 같아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에라 체면 불구하고 일단 먹고 보자 . 낫을 한쪽에 던져 놓고 참 바구니쪽으로 다가가서 자리 잡고 앉았다.

“여름내내 놀고 자빠졌다가 때가 되니까 슬그머니 나타나서 뭐 쳐 먹을게 있을까 하고 낫들고 덤비는것 보고 콩대가 욕해 이 건달 농사꾼아..히히 ” 할머니가 나 들으라고 욕하신다. 콩밭을 한번이라도 제때에 매어 주지도 않고 알곡이나 건져 먹을 생각이나 하니 욕 먹어도 싸지 암. 하하

오후들어 서이장까지 논 일 마치고 와서 일손을 거들어 주는데 서이장은 나하고는 일하는 차원이 다르다. 내가 콩대 한 줄 벨때 서이장은 열 줄을 베니 서이장이야말로 일당 백의 잰 솜씨이다. 그렇게도 줄지 않던 면적이 서 이장이 손을 대자 순식간에 벌판으로 바뀐다. 저녁 6시쯤 되어 어둑어둑해질 무렵 콩대 베는 일을 모두 마칠수가 있었다.

천막을 이어 붙인 넓은 갑빠를 끌어내어 한쪽에다 넓게 펴놓고 콩대 벤것들을 그 위로 모아 놓았다. 내일부터 며칠동안 햇볕에 바싹 말린다음 털기만 하면 된다. 이젠 가을이 제법 깊었는지 몸이 으스스한 것 같다. 낮 참으로 먹다 남은 막걸리나 비우자고 했더니 서이장은 이왕이면 햇콩이나 구워 먹자고 한쪽 모퉁이에 불을 지핀다. 그 위에 바싹 마른 콩대 몇 개를 골라 올려 놓고 조금 기다리니 구수한 콩이 톡 톡 튄다. 모닥불 온기도 있고 막걸리 한잔 들이키니 어...취기가 도네. 콩볶은것 요렇게 먹어 보니 별미로다.

비록 건달 농사를 지었어도 대여섯 가마는 족히 나올것 같다하니 이리 저리 나누고도 겨우내내 청국장은 끊이지 않고 먹을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