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은 좀 웃자랐어도 먹을만큼은 올라온 것 같은데 고추는 엉망이다. 내딴에는 무공해로 해보려고 서이장이 농약 쳐준다는 것도 말렸더니 볕이 쪼인데는 전부 벌레가 갉아먹어 열매라고 달린 건 하나같이 비틀어지고 때깔도 영 부실하다.
다행히 서이장 밭에서 자란 고추는 잘 여물어서 그런대로 김장거리 걱정은 안해도 되겠다. 서 이장은 어제 하루 종일 콤바인으로 밭벼를 탈곡했다는데 벼 스무섬은 했단다.우리 밭에서 난 콩과 깨는 서 이장과 나누고 , 나는 밭 벼와 고추를 가져다 먹기로 했다.
호박 밭을 둘러보니 애 호박은 동네 아낙들이 이리 저리 따가고 벌써 누렇게 늙은 호박이 군데 군데 달렸다. 집에 가서 호박쌈이나 먹을 생각에 쪄 먹기에 쓸만한 거로 호박잎을 조금 땃다. 늙은 호박은 서울 살림에는 손질하기도 어렵고 또 겨울까지 기다리자면 보리 파종이 어려워지니까 서 이장내 누렁이 먹이로 따다가 쓰라고 했다.
한쪽 구석에 심은 배추 밭에는 벌써 포기가 벌어진 것도 눈에 띈다. 이왕에 내려온 김에 벌어진 배추 포기를 짚으로 묶어 주었다. 비료를 준것도 없는데 저혼자 잘자라서 포기를 쥐어 보니 제법 살이 통통하다.
"여보 마누라 배추쌈에 된장 발라 꿀꺽할까 고추장 발라 꿀꺽할까, 허리 띠 풀어 놓고 하얀 이팝을 얹어 꿀꺽꿀꺽하는 소리에 배곯은 머슴놈 숨 넘어간다"
금년 겨울에는 들에 나가 서이장과 빠나에 꽁치 통조림찌게 끓여 놓고 하얀 쌀밥에 배추쌈이나 실컷 먹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