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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선 대표작 /이비(耳鼻) 에 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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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임병식 |
날짜 : 08-09-10 11:48
조회 : 2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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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비(耳鼻) 에 관한 단상
임병식 rbs1144@hanmail.net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눈으로 보아 무섭거나 혐오스러운 것은 금방 알아낸다. 0.01초도 안 되는 순간 눈에 들어온 영상이 대뇌에 즉각 전달되어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 소리나 냄새로 인식하는 것은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 아니니 순전히 후천적인 학습에 따른다. 만약에 그로 인한 것을 어디서 볼 수 있다면 그것은 철저히 학습 된 결과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 좋은 예로는 우선 두 가지가 생각난다. 그것은 각각 냄새로 인식하는 것과 말소리로 전해진 것이다. 먼저 냄새로는 호분(虎糞)의 위력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말소리로는 '애비' 또는 ‘에비야’를 들 수 있다.
먼저 호분 이야기이다. 언젠가 TV에서 본 것인데 어느 산골마을은 동물원에서 호랑이 똥을 가져와 밭두렁에 뿌려두고 있었다. 어떻게나 멧돼지와 노루가 출몰하여 농작물을 망쳐놓던지 고심을 하던 끝에 착안한 것이었다. 저녁이면 밤잠을 자지 않고 소리 낼 수 있는 기구를 동원하여 두들겨도 보았으나 백약이 무효로 허사였다.
낙심천만, 퇴치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마을의 한 노인이 제안을 했다. 백수의 왕인 호랑이 똥을 구하여 한번 뿌려보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제안이 받아들여지고 그렇게 해보게 되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이후로 멧돼지는 물론 고라니도 얼씬하는 일이 없었다.
한반도에서 야생 호랑이가 사라진 지는 이미 50여 년 전이다. 6.25 종전 무렵 전남 영광불갑사 부근에서 포수에 의해 사살된 것이 마지막 기록으로 남았다. 그렇다면 지금의 들짐승들은 호랑이를 보았을 리가 만무한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지금의 짐승들 DNA속에 공포로 각인되어 있지 않고서는 설명이 안 되는 일이며 이해하기가 어렵다.
또 다른 예도 마찬가지다. '에비야'라는 말인데, 얼핏 들으면 아무렇지도 않는 말인 것 같다. 아니, 다른 민족이 들으면 그냥 평범한 말로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렇지 않다. 오싹 소름이 돋는 공포의 말로 인식하고 느끼고 산다. 오죽하면 우는 아이를 달래거나 고집피우는 걸 못하게 할 때면 ‘에비야-’라고 여전히 쓰고 있을 것인가.
이것은 알고 보면 슬픈 역사와 닿아있다. 400여 년 전 정유재란이 일어나면서 우리 백성들은 재침한 왜적으로부터 코와 귀를 도륙 당했던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과를 눈으로 확인하고자 지시한데 따른 만행이었다. 그는 구체적으로 방법까지 제시하며 소금에 절여 단지에 담아 보내라고 했다.
그 바람에 아비규환 속에서 백성들의 코와 귀가 잘려나갔다. 반항하면 살육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에비야'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이 말은 귀와 코를 지칭하는 것으로 '에'자는 귀 '이(耳)'자가 세월이 지나다보니 변용된 것이다.
대저 얼마나 치가 떨리고 공포감이 들었으면 그런 말이 오늘에 이르도록 퍼진 것일까. 그리고 칭얼거리는 아이나 위험한 짓을 못하게 할 때면 무의식중에 쓰는 것일까. 왜군은 정유재란을 일으키면서 주로 호남곡창지대를 유린했다. 그 바람에 주로 피해는 남녘. 그중에서도 남원고을 주민이 많이 입었다.
왜적은 도공 납치를 노리는 한편, 백성들 코와 귀를 베기에 혈안이 되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어린 아이까지도 그냥 두지 않았다. 그 바람에 왜군이 들이닥친 고을에는 통곡소리가 넘쳤다고 충무공 진중일기에는 당시 참상을 상세히 전하고 있다.
이런 짓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얼굴 훼손은 단순히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뭉개고 혼과 얼을 난도질을 한 것이다. 이목구비가 무엇인가. 한사람의 인격이면서 식별의 부위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목숨부지하며 산다한들 죽은 것이나 무엇이 다를 것인가.
우리의 아픔이 이러한데, 그들은 그것을 모아서 자랑스럽게 전승의 무덤으로 조성해 놓고 있다. 교토를 비롯하여 여러 곳에 무덤을 조성해놓고는 이총(耳塚)이라며 구경거리로 삼고 있다. 안내판에는 차마 자기들도 잔인하다 생각했는지 이비총(耳鼻塚)이라고 써놓지 않고 가로로 비(鼻)자만 넣어 병기를 해놓고 있다.
졸지에 코와 귀를 잃은 백성들은 그 상처를 감추기 위해 안대처럼 만든 헝겊으로 코 부위를 평생 가리고 살았다고 하니 생각만 해도 피가 거꾸로 치솟아 오른다. 산천을 떠돌며 지새운 그 피울음소리는 얼마나 처연한 것이었으랴.
우리는 그 아픔을 한시도 잊지 못하는데 그들은 또다시 수 백 년이 지난 뒤에 침략하여 고통을 주었다. 우리나라를 강제로 합방 시킨 후 독립군의 목을 베고 그 시체 옆에서 웃으며 담배까지 꺼내 피우기까지 했다. 그리고 독립 운동가를 잡아들여 마루타로 생체실험을 자행했다. 생각하면 여간 가증스럽지 않고 상종하기도 싫은 그들이다.
새삼 ‘에비야’의 슬픈 유래를 떠올려 본다. 뼈 속 깊이 새겨진 공포의 DNA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얼마나 그 말이 치를 떨게 만들었으면 왜란이 일일난지 수백 년이 되도록 지금도 아이들의 울음을 뚝 그치게 만든 것일까.
생각하면 이 말은 잊어서도 아니 되고, 가슴속에 담아두고 새겨야 할 일이 아닌가 한다. 그나저나 기억의 대물림이 면면히 이어지는 건 마음을 무겁게 하고 슬프게 한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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