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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임병식 |
날짜 : 08-09-10 11:42
조회 : 3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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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거미 집을 보면서
임병식 rbs1144@hanmail.net
왕거미 집을 보면 또 다른 정치망업자(定置網業者)라는 생각이 든다. 정치망어업은 건착선처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조업을 하지 않고 한곳에 정착하여 물고기를 잡는 어로형태를 이른다. 그렇지만 이것은 물고기를 한곳으로 몰아넣어 갇힌 고기를 자루형태로 끌어내는 낭장망과는 달리 선망형태로 그물에 걸린 고기를 잡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왕거미도 다르지 않다. 정주형(定住形)으로서 나무와 나무사이에 커다란 그물을 짜서 쳐놓고는 걸려드는 먹이를 사냥하는 것이다.
엊그제 본 광경이다. 꺾꽂이를 해둔 개나리가 잘 자라나 살피려고 갔더니 두 감나무 사이에 짚방석만한 거미줄이 쳐져 있었다. 아직은 걸린 곤충이 없고, 윤기가 번드레한 것으로 보아 최근에 쳐놓은 것이 분명했다.
일정한 간격으로 잘 균형을 이룬 것이 예사로운 솜씨로 느껴지지 않았다. 언제 저것을 쳐놓았을까. 그것을 보면서 당연히 처음에는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 의문을 갖는 것이 보통이겠으나, 나는 그 점에 대해서는 의아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처음에 어떻게 시작했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거미가 집을 지을 때 막연히 나무와 나무 사이를 기어오르며 시작하는 줄 안다. 또 그렇게 쓴 글도 여러 편 보았다. 누가 어디에 발표를 하거나 알려주지 않으니 막연히 그렇게 믿고 있다.
하기는 어쩌다가 한 번씩 그렇게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목격한 바에 의하면 결코 그렇게 하지를 않았다. 바람을 이용하여 그 바람에 몸을 실어 방적돌기에서 실을 뽑으면서 다른 나무로 훌쩍 옮겨갔다. 그러면서 그 뿜어낸 실을 당겨서 거치대에 묶고서는 집을 짜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것은 실로 우연한 기회였다. 어렸을 적인데, 그날따라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흔들리는 울타리의 대나무를 보고 있는데 어떤 비행물체가 획하니 바라보는 시야를 순간적으로 가렸다. 어, 하고 눈을 깜박이면서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그런데 이때 사선을 그으며 사라진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왕거미였다. 그런 왕거미는 엉금엉금 나무를 타고 올랐다. 몸을 날릴 때 대각선으로 떨어진 것이 분명했는데 일직선으로 균형을 맞추기 위한 동작 같았다.
이를 보고서 나무와 나무 사이에 줄을 매다는 수법을 알아낸 것이다. 그야말로 운이 좋아서 목격한 것으로 순간포착을 한 것이었다.
거미는 먼저 실을 뽑아 여러 가닥의 방사형(放射形)을 만든다. 이때는 튼튼한 실을 뽑는데 끈적거리는 실이 아니다. 이 기초작업이 끝나고 나면 나선(螺線)으로 그물을 엮는다. 이때는 끈적끈적한 실을 뽑아내어 작업을 한다. 그런만큼 옮겨다닐 때는 방사선 줄을 타고 다닌다고 한다. 작업을 하면서 몸에 달라붙지 않게 하기 위해서란다.
그리고 붙잡은 먹이는 일차로 포장을 씌워서 운반을 한다. 이밖에도 거미는 특징이 많다. 다른 곤충이 머리와 가슴 배로 이루어진데 반하여 이 녀석은 머리와 몸통으로만 이어져 있다. 그래서 곤충으로 분류가 되지 않고 절지동물로 분류된다. 먹이는 잡식성으로 잡히면 먹지 못하는 것이 없는 무서운 포식자이기도 하다.
한데 이놈에게도 천적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새이다.
작가 미상의 ‘굼벙이 매암되어’라는 시에,
‘굼벙이 매암이 되야 나래 도쳐 날아올라
높으나 높은 남게 소뢰는 죠커니와
그 우회 거뮈줄 이시니 그를 조심하여라’
보듯이 조류가 천적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공작은 이놈을 좋아해서 옛날에 중국에서 보내온 공작에 얽힌 이야기도 전해온다. 녀석이 먹이를 먹지 않아 전전긍긍하던 차에 어느 대신 부인의 조언에 따라 이것을 잡아서 먹이니 금방 기력을 회복했단다.
암튼 왕거미 집을 보고 있노라니 역시 큰 덩치만큼 대인답다는 생각이 든다. 몸이 알록달록한 호랑거미는 삼중망(三重網)을 쳐놓고 마치 ‘고데구리’업자처럼 걸리는 족족 싹쓸이를 하는데 비하여 녀석은 그리하지 않고 그야말로 거미줄이 정치망 그물코처럼 듬성듬성한 것이다.
작은 것은 살려 보내고 먹이로 쓸 만한 것만 잡으려는 의도가 드러나 보인다. 하기는 허공을 깁듯이 널직한 공간에 그물을 쳐두었으니 느긋하게 기다리면 되니 먹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터이다.
그런 거미집을 보면서 세상에서 일어나는 눈살 찌푸려지는 일들과 견줘보게 된다. 요즈음은 어찌된 일인지 서민들이 개척한 업종이 장사가 좀 된다 싶으면 어김없이 기업가들이 끼어들고 있는 것이다. 문어발 같은 가맹점을 내어 서민들이 애면글면 구축해 놓은 삶의 터전을 무자비 하게 공략하는 바람에 서민들의 아우성이 높다. 실제로도 그 휴유증으로 길바닥에 나앉아 빚더미에 내몰리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이게 과연 공정한 게임일까. 여간 한심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런 건 비난받아 마땅할 것이다. 왜 덩치 큰 기업가들은 이런 왕거미에게서 먹이를 구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것일까. 작은 것들은 또 다른 힘없는 것들이 먹이로 취하도록 왜 배려를 못하는가. 그런 저런 생각에 회의가 들어서 나는 그 큰 거미집에서 쉽게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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