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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김주안 |
날짜 : 07-08-16 21:26
조회 : 2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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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상상의 세계
하 재 준
Ⅰ 머리말
수필에서의 상상의 세계는 너무 진부하리만큼 문학 세미나에서 많이 다룬 문제다. 그러나 오늘 또 다시 이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하고 확고한 결론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작품 속에 상상의 세계가 존재하느냐, 않느냐에 따라 수필이 문학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가 분명히 판가름되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많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데 문제는 허구와 상상을 동일시 보는 차원에서 파악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그간 허구와 상상을 동일시 보는 관점에서 수필을 놓고 양론이 팽팽히 대립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수필도 허구의 세계를 다룰 수 있다. 라고 주장하는 이론과 다루면 아니 된다. 라고 하는 이론의 주장이 기를 쓰고 맞서왔었지만 끝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오늘에 이른 것이다.
‘수필도 문학이기에 허구의 세계를 다룰 수 있다’라는 이론에 반대론자들은 이 이론에 반박하기를 ‘수필에서 허구를 다룰 양이면 소설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차라리 소설을 쓰지 구태여 수필이란 이름으로 쓸 필요가 있겠는가? 하여 은연 중 수필은 문학이 아니다. 라는 결론으로 유도하고 있고, 찬성론자들은 수필은 ‘사실의 기록이라 할지라도 진정한 문학작품으로T서 구성을 하기 위해서는 다소의 허구가 스미지 않을 수 없다.’는 이론을 전재하면서 ‘다른 문학 장르도 현실을 토대로 하여 허구가 필요하듯 수필 역시 다소의 허구가 필요하다고 주장, 허구의 존재론을 강하게 주장해 왔었다.
Ⅱ 허구와 상상의 세계에 대하여
1. 허구와 상상은 진정 동일한 것인가
허구와 상상은 진정 동일한 것인가? 이러한 이론이 강력히 대립되었던 그 원인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문학은 상상의 세계다.”라고 정의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문학은 상상을 통하여 그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예술이다. 그래야만 감동과 효과가 증폭되어 예술의 영역을 이룬다.
그런대 우리가 쓰는 수필은 기본적 형태만으로 본다면 상상의 세계가 아니라 사실의 세계를 기록한 글이기에 앞에서 제기한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수필을 제외한 모든 문학은 기본적 형태가 상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은 허구로 이루어졌고, 시 역시 허구와는 상관이 없을지라도 상상력으로 이루어진 허상의 세계를 그려놓고 있다.
그렇다면 수필은 상상의 세계가 존재하는가?
물론 존재한다. 그것도 풍성히 존재한다. 단 허구 즉 픽션(fiction)이 존재하지 않을 뿐이다. 비록 수필의 형태가 사실의 세계를 기록한 글이라고 정의한다 해서 상상의 세계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상상과 허구를 동일한 의미로 인식’하였거나 아니면 ‘상상에 대하여 크게 오해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렇게 발하면 이 이론에 반대하는 자들은 허구와 상상이 분화되기 이전 상태 즉 원형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자고 하며 이 이론을 굽히지 않을 것이다.
물론 허구에 해당하는 영어의 fiction과 상상에 해당하는 고대라틴어 fiogo는 동일한 의미로서 무엇을 ‘빚어낸다.’는 뜻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말로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 교리인 성경 구약 창세기를 예로 들고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주를 창조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을 다시 말하면 혼돈에서 우주를 빚어낸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창세기 초기 영어 번역을 보면 maker 혹은 poet라 하였다. 본래는 같은 의미의 말이었듯이 허구와 상상도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세분화된 오늘의 현실에서 허구와 상상의 으ㅟ미는 분명히 밝혀졌고, 그를 증명해볼 필요가 있기에 오늘 세미나에서 “수필과 상상의 실제”라는 제목으로 발표하게 된 것이다. 우선 허구와 상상을 사전적 의미에서 찾아보도록 한다.
허구는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꾸며낸 것을 의미하며,
상상은 이미 있는 사실이나 관념을 통해 미루어 짐작하거나, 새 관념을 만들어 내는 작용을 일컫는 말이다.
그렇다면 문학에서 볼 수 있는 상상의 세계를 자세히 살펴보면서 결론을 맺고자 한다.
다음은 문학작품 속에서 담고 있는 상상의 세계를 편의상 4가지로 분류하여 살펴보았다.
첫째 : 소설에서 보듯이 작가가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허상의 세계, 곧 상상의 세 계.
둘째 : 작가는 어디까지나 독자에게 상상의 세계를 펼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해 주는 그러한 상상의 세계.
셋째 : 과거형과 미래형 어미를 통하여 비유법을 사용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얼 마든지 상상의 공간을 만들어 내는 그러한 상상의 세계.
넷째 : 작가는 사실만 나열했을 뿐 아무런 논평을 하지 않고, 독자에게 이의 판단 을 맡기므로 상상을 펴게 하는 그러한 상상의 세계.
이상 네 가지 상상의 세계를 살펴볼 때 첫째는 소설에서 주로 쓰는 상상의 세계라고 한다면 둘째와 셋째, 그리고 넷째는 수필에서 주로 사용하는 상상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2. 수필에 상상의 세계가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그러면 수필에서 상상의 세계가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가를 살펴보기 위하여 그 예를 이 시대의 원로작가인 김형석 수필인 “죽음”이란 작품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죽음
김형석(철학자, 수필가, 연세대 명예교수)
맑은 아침이다. 밀렸던 원고를 처리하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이게 웬일일까? 약 먹은 쥐를 먹은 모양이지? 저걸 어쩌나?”
걱정하는 소ㅓ리가 문 밖에서 들려왔다. ① 아마 나에게도 들려주어야겠다는 심사인 것 같았다. 방문을 열고 뜰로 나갔다. 제법 토실토실 자랐고 며칠 전부터는 낯선 사람을 보면 짖어대기까지 하던 강아지가 거품을 흘리며 비틀거리기 시작한다. ② 나를 본 강아지는 반가워해야 하는 의무라도 있다는 듯이 꼬리를 흔들며 몇 번 다리에 기어 올라보려고 하더니 그만 뜰 한편 구석으로 달아나버린다. ③ 몹시 고통스럽기 때문에 견디어낼 수가 없는 모양이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뜻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속히 비눗물을 만들어 입에 퍼 넣어 주기 시작했고 어린 것을 불러 약방으로 달음질치도록 부탁했다. 강아지는 약간 긴장이 풀리는 듯이 햇볕이 쪼이는 담장 밑에 누워 버렸다. 아무래도 고통스러움을 견디어 내지 못했던 모양이다.
강아지 때문에 휴강을 할 수 없었다.
④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히지도 못한 채 학교로 달려 한 시간 강의를 끝냈다. 강의하는 동붕에는 잊고 있었으나 강의가 끝나니 강아지 생각이 물밀 듯 솟아오른다. 다행히 가까운 거리였기에 달음질치다시피 집으로 돌아왔다.
“강아지가 어떻게 되었지요?”
“글쎄 아무래도 죽으려는 모양이다.”
그때까지 지키고 계시던 어머니의 말씀이었다. ⑤ 행여나 기다렸던 마음에 적지 않은 충격이 찾아드는 것 같았다. 누워있는 강아지 옆으로 가 앉았다. ⑥ 거품을 물고 허리가 끊어지는 듯이 괴로워하던 강아지가 그리도 주인이 옆에 왔다는 것을 의식했던 모양이다.
겨우 일어나서 꼬리를 두세 번 흔들어 보이더니 그만 자리에 누워 버렸다. ⑦ 마치 ‘주인께서 돌아오셨는데 영접을 해야지… 그런데 왜 이렇게 뜻대로 되지 않을까? 스스로 원망이라도 하고 있는 모습 같았다.
나는 애처로워 그대로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버리고 도망갈 수도 없는 일이다.
품에 안아 보았으나 고통은 여전한 모양이다. 다시 땅에 내려놓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무척 괴롭고 답답한 모양이었다. ⑧ 그 두 눈은 나를 어떻게 해 주세요. 죽음이 엄습해오는 고통을 덜어주거나 어떻게 좀 살려 주세요. 왜 그리도 가만히 보고만 계시는 것입니까? 묻는 것 같기도 했고 애원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한참 뒤 누운 채로 꼬리를 약간 흔들어 보이더니 더 견딜 수 없는 모양이었다. 눈의 빛깔이 점점 더 희미해지기 시작하고 전신이 가벼운 경련을 일으키더니 그만 몸의 긴장을 푸는 것 같았다.
나는 두 분을 살그머니 감겨주었다. 몇 분이 지났다. 강아지는 곱게 반듯이 누워버렸다. 꼭 잠든 것 같았다. 가볍게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 흡사 ‘세상은 너무 괴로웠다고’ 호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오후에는 강의가 있었다. 그러나 강아지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마음은 쉽게 가라앉질 않았다. 온 가족들의 생각이 꼭 같은 모양이었다. 새삼스럽게 인간이 얼마나 무능한 것인가를 느끼는 순간이다. ⑨ 작은 강아지의 생명을 어떻게 하지 못하는 인간이 철학을 논하고 예술을 말하며 과학의 위대성을 말하고 있는가.
이 작품은 일상적인 생활을 소재로 하고 있는 사실의 기록이다. 조금도 허구가 스며있지 아니하다.
그런데도 상상은 너무나도 풍부하게 작품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하여 어느 문학에 비해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상상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음을 수필 “죽음”의 작품에서 넉넉히 볼 수 있다.
그러면 위 작품 중 밑줄 친 ① ~ ⑨까지 어떻게 상상의 세계를 펼치고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① 작가인 자식은 어머니의 마음을 상상해 보고 있다.
② 작가는 강아지의 마음을 상상해 보고 있다.
③ 작가는 고통스러워하는 개의 모습을 상상해 보고 있다.
④ 작가가 강아지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독자에게 상상해보도록 하고 있다.
⑤ 작가는 어머니의 마음을 상상해 보고 있다.
⑥ 작가는 강아지의 심리를 상상해 보고 있다.
⑦ 작가는 강아지의 모습에서 그의 심리를 상상해 보고 있다.
⑧ 작가는 강아지의 애원하는 심리를 상상해보고 있다.
독자는 작품을 통하여 강아지의 고통스러워하는 심리를 상상해볼 수 있도록 쓰여 있다.
⑨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단정 지어 말하지 아니하고 독자의 상상에 맡기고 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수필에서도 상상의 세계가 이같이 풍부하게 펼쳐지고 있음을 보는데 소설에서 전지적 작가시점과 같은 상상의 세계가 이 작품에서 많이 펼쳐졌음을 보게 된다.
Ⅲ 맺음말
오늘에 있어 우리의 수필은 어떠한 모습일까
솔직히 말하여 수필의 정체성을 벗어난 신변잡기이거나 인쇄공해를 불러들이는 철학 없는 수필의 남발이 아닐까. 혹시라도 이런 글을 쓰는 수필작가가 있다면 수필의 위상을 ‘여기문학’으로 전락시키는 요인들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수필은 우리의 현실 즉 우리의 삶 속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슬픔과 고통과 갈등으로 인한 괴로움, 그리고 고독과 절망과 허무로 인한 아픔을 여과 없이 글로 표현해 놓은 넋두리의 글이 결코 수필이 아니다. 그 글이 잡문일지언정 진정 수필이 될 수 없다. 필자는 이런 의미에서 수필은 어디까지나 영혼에 희망과 기쁨과 의욕으로 승화시켜주는 내용이어야 한다고 이론을 제기하면서 위의 작품 “죽음”이 좋은 그 예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한 편의 작품 속에서 인생의 진솔한 참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삶에 지혜와 의욕과 용기를 일으킨다. 이 감동이야말로 영혼에 참다운 희망과 기쁨과 의욕을 주는 일이 아닐까? 이것이 진정한 문학의 가치이며 격조 높은 수필이라 여겨진다. 진정한 수필문학은 다른 장르에서 볼 수 없는 진한 감동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꼭 알아야 한다. 허구적인 삶을 그려내 놓은 문학과 현실 속에 이루어진 우리의 삶 속의 이야기 중에서 똑같은 감동이 이루어질 때 어느 편이 더 많은 감동을 주는 것인가를 조용히 따져 봐도 넉넉히 알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는 소설의 형태가 있으니 이가 바로 팩션(faction)이다. 즉 허구보다 사실 편에 더 치중한 형태의 소설이다.
이제 끝을 맺으면서 수필의 상상적 세계를 통하여 수필이 21세기의 문학을 주도해 가리라 믿는다. 일찍이 아나톨 프랑스는 “19세기는 소설의 시대요, 20세기는 온 문예를 흡수해버릴 수필의 시대가 올 것”이란 말을 했다. 이 말이 진정 실감할 수 있는 우리 문학의 현실로 다가왔음을 보면서 수필은 이 시대를 주도할 수 있는 문학임을 다시 한 번 더 강조하는 바이다. <문예비전 34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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