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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김주안 |
날짜 : 07-08-14 21:08
조회 :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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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알 하나 닮은
한 영 자
1. 고독한 탐색 작업
한 편의 참신한 수필창작을 위해 붓을 드는 순간, 나는 인생의 과감한 탐험자, 예리한 공예가 또 연출자가 된다.
평소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는 늘 남모르는 봇짐을 메고 다녔다.
인생 골목마다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눈에 뜨이는 수필 제목들을 모아 담은 사색의 봇짐을 풀고 들여다본다. 다행히 쓸만한 소재들이 가득 담긴 날은 가슴이 뿌듯해진다. 제재들을 이것저것 뒤척이며 작품구성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그 소재를 처음 만났을 때 찡~하고 가슴을 울렸던 기억을 다시 되듣는다. 그리고 그 울림의 소리로 내 마음속을 또 한 번 울리게 해 놓고 한쪽 귀를 연다. 울림의 목소리가 들리는 귀의 반대편에다 내 소리를 튕겨본다. 그 다음에 양쪽의 소리들을 나의 가슴의 체온으로 합해서 녹인다. 소재는 반죽이 된다. 따뜻한 체감으로 적당히 융화된 제재를 가슴 한편에 푹 묵혀 두고 나는 일단 방관자로 물러선다.
제3의 새로운 목소리를 뽑아낼 준비운동을 하기 위해서다.
그 후부터 시간은 일정치 않으나 얼마가 지난 뒤, 나는 잠시 관심 밖으로 묵혀 둔 소재를 재검토한 다음에 적당히 삭혀진 듯하면 다시 작업을 착수한다. 마치 병리실에서 현미경으로 세균들을 관찰하여 병균을 발견하듯이 제목과 제재를 찾는 눈이 밝아야 한다. 잘 발효된 소재를 심미감 짙게 투시된 관조적 시각으로 소재 형태의 속성, 혹은 특성을 낱낱이 파헤쳐가며 그 속에서 인생의 진한 의미를 캐어낸다.
반짝하고 교감종이 울리기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나의 강렬한 영감의 빛을 발사하다가 어느 순간 새 진리의 종이 빗발치는 그 찰라, 재빨리 그것을 포착해 낚아야만 한다. 그것은 매우 긴박감으로 나를 초조하게 만든다.
이렇게 탐지된 미완성 작품을 놓고 나는 다시 공예가의 자세로 그것을 어루만져 다듬어야 한다. 거칠게 두드러진 부분은 깎아내고 너무 움푹 들어간 데는 좀 더 손질하여 메운다.
그리고 적당한 무늬도 그려놓는다. 작품의 품위에 손상을 주는 부분을 감추기도 하고 전체적인 균형을 살리기 위해서 색체의 미감을 좀 더 강렬히 또는 좀 연한 색감으로 문지르기도 한다. 이렇게 손질이 다 끝나면 도자기를 굽듯이 작품을 구어내야 한다. 고귀한 철학적 불꽃, 하나님의 신령한 진리의 불꽃. 죽기까지 인류를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뜨거운 사랑의 불꽃으로 활활 불태워 굽는다. 드디어 고대하고 바라던 작품이 완성되어 출토되는 날. 나는 진실로 환희감에 들뜬다. 요행히 수필이 문학적 높은 수준의 글로 완성되어 나올 때는 하늘을 나는 기쁨으로 충전되어 모든 피로가 씻은 듯이 풀려버린다. 그러나 그렇게 온갖 정성 다 드린 공은 어디로 가고 보잘것없는 졸작으로 전락되었을 경우, 나는 그만 그것을 와르르 부수어 내동댕이친다. 다시는 붓을 들지 않으리라 마음먹는다. 이런 날은 내 마음에 기쁨이 사라진다.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래도 다소 쓸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 완성되면 나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내놓는다. 마치 무대 위에 내어보내는 연출자의 심정으로 마음이 조마조마 하다. 관객들의 표정이 어떤가 눈치를 살핀다. 관객이 한 사람도 없든지 조용하면 나는 직감한다.
그것은 쓴잔을 마신 패배의식 같은 것이다. 온몸에 힘이 쭉 빠진다. 그러다가 어느 날, 뜻밖에 많은 관객들이 몰려들어 박수갈채가 터지는 날이면 나는 그때가 수필로 인해 흘린 나의 땀방울이 진주빛 무드에 여물어가는 꿈을 꾸곤 한다.
2. 主題와 소재선택
소재는 우리 주변 어디에나 굴러다닌다. 반드시 소재가 고상하거나 보편타당성 있는 귀중품이라야 할 것도 없다. 하지만 미천한 것이건, 훌륭한 소재건 간에 그것이 너무 흔한 것이거나 가치성이 희박하면 창조적인 좋은 작품을 생산하기 어렵다. 따라서 주제 역시 산뜻한 아름다움이나 생명력 있는 진실이 결여된 초라한 글로 맥락이 흐트러져 버리기 일쑤다. 그러니까 작품 성패의 첫째 조건은 소재 선택에 있다.
그 다음 작품구상 과정을 제목, 주제, 소재 순으로 선택될 때도 있고, 소재 속에서 주제를 건져낸 후, 끝으로 제목을 달기도 한다. 또 제목, 노래, 주제로 수필의 맥락이 이어지기도 한다. 집을 짓거나 공예품을 만들거나 우선 재료가 좋아야 한다. 소재가 건축자제건 공예재료건 간에 소재를 건물의 대들보로 치자면, 주제는 그 예술성 높은 작가사상 여하에 따라 수필의 승부가 결정된다. 그래서 나는 좋은 소재를 만나고도 심도 짙은 주제가 잘 떠오르지 않으면 으레 내 자신을 점검한다. 작가의 인격형성이 바로 설 때 영상화로 승화된 주제를 건져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나의 문장수련 부족을 절감하게 된다. 보다 많은 수련의 글이 익숙되지 않고서는 그 글이 내포하고 있는 진실이 읽는 이에게 선뜻 와 닿지를 못한다. 뼈대 있는 글 속에서 번뜩이는 한줄기 불빛 그 애정이 흐르는 인간애에 문득 치솟아 오르는 눈물이 없는 수필은 문학이 아니라 잡문에 불과하다. 무미건조한 이야기나 알맹이 없는 수필은 차라리 쓰지 않는 것만 못하다.
이따금 나는 수필을 삶의 진주로 빚고 싶다. 시공을 초월한 아름다움과 영원불변의 진리로 빛나는 값, 진실, 또한 티끌만 한 죄로도 때 묻지 않은 순결의 결백을 지닌 진주.
평생에 이런 진주알 하나 닮은 수필을 남길 수만 있다면… 하는 염원으로 붓을 드는지도 모른다. 진주를 잉태한 조개는 얼마나 오래도록 고뇌하였는가. 편안한 잠, 풍요로운 향유의 삶을 포기한 채, 살이 찢기는 아픔과 고충을 스스로 남모르게 인내하는 세월.
어린 진주가 자신의 뼈와 살을, 아니 사랑을 녹인 진액을 겹겹이 앗아가고 남은 빈 껍질로 늙어가도 슬기로운 자태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아야만 한다. 이리하여 끝내 고통 중에 승리자가 낳는 진주야말로 다시없는 보물, 값비싼 진주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하다못해 청자빛 감도는 영롱한 한 알의 진주는 저토록 오묘한 신비감으로 하여 보는 이마다 가슴 젖게 하는 매력을 지녔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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