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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김영월 |
날짜 : 17-07-24 18:13
조회 : 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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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의지
김영월
다시 새해가 밝아 온다. 이제 메모로 까매진 묵은 달력을 뜯어내어 가차 없이 쓰레기통으로 보낸다. 생생했던 현장의 삶은 바람이 되어 멀리 날아간다. 살아 온 만큼 무덤 앞으로 다가서지만 다시 희망찬 삶을 꿈꿀 수 있기에 행복하지 않으랴.
36세. 젊은 의사가 아내와 8개월 된 딸을 두고 눈을 감는다. 그는 미국 스탠퍼드대학 신경외과 의사로 레지던트 마지막 해 (7년차)를 마치고 폐암 말기로 아까운 죽음을 맞았다. 유능한 의사로서 죽음에 직면한 환자들을 살려내고 치료하던 그가 자신이 불치병에 걸려 투병 생활하는 심경이 어떠했을까. 이러한 모순적 상황 속에서 그는 자신의 죽음을 직시하며 온전히 살아있고자 애썼다. 그가 원하는 것은 가능성 없는 완치가 아니라 목적과 의미로 가득한 날들을 추구했다. 암이 뇌까지 전이되는 절망적 상황에 이르자 그는 더 이상 식물인간 상태에서 받게 될 치료를 거부하고 가족들 옆에서 자발적 죽음을 선택키로 한다. 그는 동료 의사이기도 한 아내와 합의하여 인공수정을 통해 딸아이까지 얻는다. 귀엽고 사랑스런 혈육이 그가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맛보게 된 기쁨과 위안이 아닐 수 없었다.
폴 칼라니티(1977년 - 2015년) 는 ‘숨결이 바람될 때’라는 회고록에서 위와 같이 밝혔다. 책 제목은 영국 시인인 그레빌 남작(1554년- 1628년)의 ‘카엘리카’라는 시에 나오는 다음 구절을 인용했다고 한다.
-죽음 속에서 삶이 무엇인지 찾으려 하는 자는
그것이 한 때 숨결이었던 바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옆에서 남편의 죽음을 지켜 본 아내는 저서의 에필로그에서 날로 악화되는 암으로 살인적인 피로를 느끼면서도 제일 신경 썼던 건 집필에 필요한 정신력의 유지였다고 한다. 어떻게든 죽기 전 글을 쓰겠다는 그의 의지가 굳건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절망적이고 귀찮게 여겨질 터인데 그는 자신의 회고록을 끝까지 집필코자 마지막 희망을 불태웠다는 것에 대해 같은 작가로서 더욱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없다. 3년 전에 갑작스런 심근경색으로 나는 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생과사의 갈림길을 만났다. 같은 병실의 환자들은 거의 가래 끓는 소리, 주렁주렁 매달린 링거병, 산소호흡기등 침대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마치 시체 같은 어두운 일상이 계속 되었다. 의식을 회복한 유일한 환자인 나는 시간 나는 대로 병상일기를 적어나갔다. 아마 이것이 나의 마지막 기록인 듯. 그 중에 한 편은 이러했다.
팔다리가 파편을 맞은 듯 / 수없는 주사바늘로 흉터투성이가 되었다
혈관을 못 찾아 핏물이 배인다 / 이리 쑤시고 저리 쑤시고
환자는 아예 제 몸을 맡기고 만다 / 주인의 잘못으로
온 몸이 학대를 받는 것 같아 / 그저 미안한 마음뿐이다.
-졸시. 병상일기 6 전문
폴 칼라니티의 회고록을 통해 다시 한 번 인간의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해 되돌아보게 한다. 몇 년 전에 뇌종양으로 돌아가신 지인은 병원 측의 수술 권유를 받고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은 채 덜커덕 수술을 마친 채 침대에서 꼼짝도 못하고 약 일 년 만에 하늘나라로 향했다. 병문안을 가면 사람을 알아보되 입술이 안 열리고 두 눈만 겨우 깜빡거릴 뿐이었다. 그런 부작용이 있는 수술을 미리 알았더라면 수술을 거부하고 그대로 지내다가 돌아가시는 길을 택하지 않았으랴. 마지막 시간을 가족과 대화도 나누고 버킷리스트도 작성해 이루어 낼 수 있었으리라고 여겨진다. 92세의 노모는 비교적 건강하게 노후를 지내시던 중 갑자기 뇌출혈을 일으켜 입원하셨다. 담당의사는 뇌수술을 권유했지만 가족회의를 거쳐 안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약 열흘 만에 노모는 가족들 모두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편안한 표정으로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다. 의사의 지시를 그대로 따랐다면 노모가 뇌수술 후 병원침대에서 식물인간으로 오랜 투병생활을 하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이 어디에도 없는 듯 했다.
폴 칼라니티가 의사로서 아무리 수술이 잘 됐다고 하지만 고통을 이겨내고 회복하는 일은 결국 환자의 몫이라고 얘기했다. 그는 수술 뒤에 일어날 부정적 증상에 대해 충분히 환자에게 얘기해 주고 잘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유능한 의사들이 죽음과 맞서 싸우려 하지만 현대의학의 한계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은 물론 가족들이 암 말기 같은 불치병에 걸렸을 때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가 의사로서, 환자로서 입장을 바꾸어가며 36세의 짧은 생을 그대로 끝냈다면 단순히 바람에 날리는 슬픈 죽음이었으리라. 그의 아내는 ‘그이는 글을 쓰면서 희망을 품을 수 있었고 그 덕분인지 마치 섬세한 연금술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마지막까지 유려하게 글을 써내려갔다’고 기록했다. 그는 ‘성경보다 시(문학)에서 더 위안을 얻었다’고 말한 적이 있고, 그러한 문학에 대한 사랑이 이러한 회고록으로 탄생하여 전 세계 독자들에게 많은 감동을 선물하는 게 아닐까. 다시 한 번 그가 남긴 메시지를 음미해 보며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북돋고 싶다.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 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나는 죽어가는 대신
계속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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