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늘 같이 다니던 아내와 떨어져서 혼자 산악회를 따라 미륵산 등정에 나섰다. 비가 올 것이라던 일기예보는 물 건너갔고 하늘은 청명하고 햇빛이 눈부신 아침이었다. 등산화에 간편한 차림으로 배낭도 없이 집을 나섰다. 바람은 조금 차갑고 꽤나 세찬 것이 몸을 움 추리게 한다. 이른 아침이어서 일까? 일요일이어서 일까? 전철을 이용하는 사람이 적다. 그러나 유난히 소란스러운 사람들이 보이는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아마 중국동포인 것 같았다. 가끔 우리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었다. 오랜만의 만남이어서 무척 즐겁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았었던 것 같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차안이 떠나갈 듯 하다. 좋은 아침이 깨질 것 같아 외면을 해본다. 공중도덕이 바로서는 사회는 아직도 요원한 것일까?

약속장소에 시간을 지켜 도착하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인사를 나눈 후 묻는 말이 왜 혼자야? 하는 것이다. 아마 나는 혼자 다닐 수 없는 못난이 취급을 당하는 느낌이다. 나는 선언하였다. ‘혼자이고 싶다고’ 모두들 웃는다. 가벼운 마음으로 버스에 몸을 싣고 확 트인 산하를 달려갔다. 결실의 계절이어서 그랬을까? 마음이 뚫리는 듯한 시원함을 가져보았다.

한 시간 여를 달려 문막휴게소에 도착하여 동료들과 차 한 잔을 마시고 빈손으로 온 것이 부담이 되어 사탕을 사고 김밥을 2인분을 사 등산 중의 먹을거리로 준비하였다. 혼자라는 생각이 이렇게 지배하는 것인가 보다. 고속도로를 나와 국도 좁은 길을 커다란 버스가 운행되는데 그 솜씨 감탄하게 한다. 정말 일류 운전기술이었다. 창 밖의 풍광이 눈에 익어 살펴보니 10년 전에 산골짜기에 지었던 김치공장이 눈에 들어온다. 이게 어인 일인가? 가는 곳이 이곳에서 건너다 보이는 산이라는 등산대장의 말이다. 인연이라는 것이 이렇게도 되는구나 생각해 본다. 쓰라린 과거 실패의 잔재를 다시 보는 아픔 그 것도 추억이었다.

목적지인 미륵산 아래에 도착하였다. 높이가 해발 650m 산을 오르는 길은 흙산이요 산 정상은 바위산이란다. 과히 높지 않은 산이지만 등산의 묘미를 모두 느낄 수 있는 좋은 산이라는 대장의 설명을 들으며 대열에 섰다. 지난번 산행 때와는 달리 나를 보호하는 사람이 많아 나의 걸음을 조심스럽게 지켜봐 주기도 하고 호흡법을 교정해 주기도 한다. 낙엽의 색깔이 자연 그대로 어우러지게 덮여 있는 폭신한 산길 구비 구비를 돌아 오른다. 숨이 차온다. 또 멈추어 서 심호흡을 하게 한다. 등줄기에는 땀이 흥건하고 이마에는 맺힌 땀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산허리 저 쪽 소나무 푸른 숲과 갈나무 오색단풍이 시샘하듯 일렁거린다. 아름다운 자연의 조화에 감탄하며 신선이 된 듯 하다

또 한참을 오르니 경사가 급하고 길이 묘연하다. 사람의 흔적을 찾으니 산악회 안내 리본이 퇴색되어 나뭇가지에서 팔랑대는 것을 발견, 바위틈을 돌아 오른다. 호랑이 걸음이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다. 누가 그랬단다. 그 기어가는 운동이 건강에 제일이라고 말이다. 한 시간 반은 오른 것일까.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이 보이고 커다란 바위 봉우리가 보인다. 저 것이 정상이라고 한다. 맑던 하늘에는 먹구름이 모이고 바람에 일렁이며 나비 같은 눈발이 날린다. 힘을 내어 정상을 향한 걸음을 옮긴다. 가파른 암벽에는 만들어 놓은 줄을 잡기도 하고 동료가 받쳐주는 발을 밟기도 하며 뜨거운 손을 맞잡기도 하였다. 정상에 올라 하늘을 우러러보고 산 아래 펼쳐진 산하의 아름다움을 가슴속에 담는다. 아! 아름다움이여!

거대한 바위 면에 새겨진 미륵 오랜 세월을 머금은 양 흔적뿐인데 이토록 우리 선 조상들이 희구했던 미륵세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미륵세상은 바로 오늘일가? 아직 오지 않은 것일까? 우수수 내리는 세월의 잔재들 버려지는 인간의 오물들이 공기와 물을 오염시키고 쏟아내며 순환의 궤도를 돈다. 인간은 자연의 품속 미물로 돌아가 미륵세상을 생각해 본다.

산을 내려오며 뒤를 돌아본다. 별 것 아닌데 저 것이 미륵산 이야 ? 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냐 오늘 산 참 좋았어. 정말 좋았어! 하는 감탄사가 들려왔다. 포근한 엄마의 숨결도 맛보았고 준엄한 아버지의 큰 얼굴도 보았으며 심술궂은 형제의 뜨거운 정리도 느껴보았다. 산 끝에 자리한 마을을 돌아 나와 지난가을 장마에 휩쓸린 자갈밭이 된 논을 본다. 앙상하게 말라버린 벼 포기들, 농민들의 탄식이다. 겨우 막아놓은 개울 뚝 저대로는 안 되는데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물 흐르듯 한다.

강원도 산 속의 오후는 왜 이리 짧을까? 길을 재촉해 돌아왔다. 혼자라는 것이 때로는 좋은 것인가 보다. 석양에 홀로선 미륵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