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연 선

-금자라를 붙들었어요.

ㅂ씨의 전화를 받자 갑자기 세상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한 달 전쯤 문인모임에서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눈 ㅂ씨가 장난의 소리로 하는 것은 아닐 것 같았다. 내가 60년 동안이나 실물을 확인하고싶었던 금자라가 하필이면 시내 한 복판에 있는 그의 품으로 날아들었을까. 혹시 무당벌레를 붙들고 호들갑을 떠는지 모르겠다는 의심도 갔다. 금자라가 틀림없다면 ㅂ씨의 가게를 드나드는 손님이 붙들어왔을 수도 있지 않을까. 어서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달려가면서도 꿈이 아니길 빌었다.

가게에서 들어서는 나를 보고 ㅂ씨는 상자부터 내밀었다. 약상자로 썼던 투명상자 안에는 열무 잎이 한 줌 담겨있었다. 교외에 있는 봉선암이란 암자 부근에 묵밭을 빌려 푸성귀를 심었는데 열무를 솎아 집으로 가져와 국거리를 다듬다 발견했단다.

뚜껑을 열고 열무 잎을 뒤적이자 노란 금딱지가 보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게 꼼지락거렸다. 눈을 씻고 다시 봤다. 유년의 추억 속에 살아있던 금자라가 틀림없었다.

금자라는 딱정벌레목 잎벌레과에 속하는 곤충으로 길이가 7-8㎜밖에 되지 않는 작은 벌레다. 예전에도 보기 드물었다는데 급격히 파괴되어 가는 자연환경 속에서 멸종되었으려니 여겼다.

금자라는 내가 대여섯 살 나이에 앓아 누었을 때 어머니가 붙들어 먹이던 벌레다.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벌레를 받아먹고 그 벌레가 몸 속을 엉금엉금 기어다니며 나쁜 병균을 먹어치웠으리란 믿음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던 기억을 더듬어 <금자라 이야기>란 글을 썼다. 그 글로 수필문학계에 등단이란 행운도 안았다. 글이 발표되자 금자라의 실체를 확인해주고 학질에 먹는 민간요법으로 쓰였다는 얘기도 들었다. 다시 <금자라 이야기 그 이후>를 썼고 개작하여 <금자라를 찾아서>란 표제로 책까지 냈다. 그 글을 ㅂ씨 부인이 읽지 않았다면 금자라와의 재회는 더 늦춰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금자라가 든 상자를 안고 집으로 와서도 돋보기로 들여다보며 하루해를 보냈다. 자연계에는 미묘하게 생긴 것도 많지만 금자라처럼 묘하고 화려한 벌레도 드물다. 타원형의 투명한 등판도 예사롭지 않거니와 그 밑에 날개무늬가 꼭 네발을 움직여 기어가는 자라 모습이다. 금빛으로 찬란하게 반짝여 움직일 적마다 금붙이가 구르는 것 같다. 투명한 날개딱지를 들어 날개를 퍼덕일 때는 금가루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신기하고 기쁜 마음에 가까운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덕담까지 들려주었다. 오매불망 만나고싶어하던 금자라를 만났으니 만사가 형통할 거란다. 아무렴 만사형통은 몰라도 기적이 일어난 것이나 다름없이 예사롭게 생각되지 않았다.

옆에서 신기한 듯 지켜보던 아내가 기르겠느냐고 했다. 상자에 가둬놓고 기를 작정도 아니고 어렵게 만났는데 숲으로 돌려보내기도 아까웠다. 친구들에게 물었더니 표본을 만들어 영구 보존하라고도 하고 방생해야 한다고도 했다. 아무리 어려운 만남이었어도 생명을 빼앗아 표본을 만들어 보관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화신으로 만났으니 꼭 살려서 보내야 할 것 같았다. 두 번 다시 못 볼 수도 있으니 사진이라도 남겨 간직하고 싶었다.

요즘에는 흔한 게 사진인데 내겐 어머니의 독사진 한 장 없다. 생시에 사진을 찍자고 하면 쭈그렁밤송이가 다된 모습을 찍어 뭐 하느냐고 했다. 날받아 분단장 곱게 하고 찍겠다고 벼르시다 병석에 누워 돌아가셔서 기회를 잃고 말았다. 당신의 볼품없는 모습을 남기기 싫으셨는데 그 갚음으로 금빛 찬란한 금자라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은 아닐까.

상자를 안고 사진관을 찾았다. 작은 곤충은 접사렌즈로 특수촬영을 해야 한다고 했다. 수소문해서 찾은 사진관에서는 처음 보는 곤충이라며 신기해했다. 유리판에 올려놓았더니 벌벌 기어다니는가 하면 날개를 파닥여 날아오르려 했다. 초점을 맞출 수 없도록 움직였다. 움직임을 멈추려면 마취를 시켜야하겠는데 마취를 시켰다가 다시 깨어나지 못하면 낭패가 아닌가.

담배 연기로 잠시 질식시키기로 했다. 담배 갑의 투명한 껍질을 벗겨 그 안에 넣고 담배 연기를 뿜으니 움직임이 조용해졌다. 사진을 다 찍었는데도 금자라는 꼼짝도 안 했다. 질식한 게 아니라 생명을 잃은 게 아닌가하고 겁이 났다.

금자라를 상자에 담아 가지고 급히 집으로 왔다. 열무 잎을 물에 적셔 상자 안의 습기를 올려주고 깨어나기만 빌었다. 밤이 깊어 가는 데도 깨어나지 않았다. 사진 몇 장 갖겠다고 생명을 빼앗은 것 같아 죄스러웠다. 베란다에 내놓고 프라스틱 뚜껑을 열어 망사 조각으로 덮개를 덮었다. 신선한 바람을 쐬어주며 밤이 깊도록 들락거리면서 들여다봤다.

어머니가 금자라를 타고 하늘을 나셨다. 하얀 치마 자락을 펄럭이며 나를 돌려다보고 웃으셨다. 꿈이었다. 환하게 밝아오는 아침이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베란다로 뛰어나가 상자를 들여다봤다. 금자라가 보이지 않았다. 망사 구멍으로 빠져 나갔나하고 찾다가 열무 잎을 뒤적이자 잎에 붙어있었다. 꼼짝 않고 바닥에 굴러다니다 열무 잎에 기어올랐으니 살아난 게 분명했다. 손으로 건드리자 벌벌 기어다녔다.

원기가 회복된 것 같아 붙든 곳에 놔주기 위해 봉선사를 찾았다. 새로 생긴 조그만 암자였지만 때마침 부처님 오신 날이라 신도들이 북적댔다. 열무 잎이 든 상자를 옆구리에 끼고있는 행색이 이상했던지 스님이 들여다봤다. 금자라에 얽힌 얘기를 했다. 스님과 신도들이 신기한 듯 들여다봤다. 금자라를 만나게된 것도 반가운 일이고 암자 부근에 귀한 벌레도 살고 있으니 경사스런 일이라고 했다.

ㅂ씨 내외도 달려왔다. 그가 가꾸는 채소밭은 음습한 계곡의 소나무 숲 사이에 있었다. 밭둑에 올라서서 상자뚜껑을 열고 열무 잎을 꺼내 흔들었다. 잎에 붙어있던 금붙이가 굴러 떨어지는가 했더니 금가루를 쏟아놓듯 날개를 퍼덕였다. 황금날개를 활짝 펴고 창공으로 솟아올랐다. 인사하듯 내 주위를 한바퀴 선회하곤 숲으로 곧장 날아갔다.

-안녕히 가세요. 또 오세요.

귀한 손님을 환송하듯 손을 흔들었다. 박수 소리에 놀라 돌려다보니 암자의 신도들도 몰려와 손을 흔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