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未堂) 질마재로 가다"라는 속보가 매 뉴-스 시간 때마다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내가 살고 있는 고창읍에서 정(正) 서쪽으로 삼십여 리 떨어진 곳에 미당 선생님의 생가 터, 질마재 마을이 있다. 오늘은 선생님을 뫼신 운구(運柩)차가 이곳으로 오신다 하니 태어나셨던 마을 산(山)으로 다시 돌아오신다는 날이다.

아침부터 서둘러 선생님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한다는 장례식(葬禮式) 현장에 갔다. 늘 소슬바람과 솔바람을 이 마을 앞에 보내곤 한다는 질마재 고개에서도, 안개 낀 갯내바람 마을 고삿길까지 뒤적이게 하던 갯벌에서도 그 서둘던 자진바람 다 잠재우고, 간밤에 내렸던 잔설(殘雪) 더미 기워 소복(素服)해 입은 듯, 온 산야만 하얗다.

질마재 고개와 갯벌 길과 엉켰던 옛 추억의 일이 불현듯 떠오른다. 내가 태어난 마을은 질마재 사람들이 긴히 찾아오곤 하던, 알미라는 장터마을이었다. 장터마을은 이곳에서 채 두 마장도 못 되는 가까운 곳에 있다. 그래서였던지 질마재 사람들은 새벽 댓바람으로도 곧잘 오곤 했다. 고운 꽃소금도 지고 오고, 숭어횟감도 잡아오곤 했다. '맛'이라는 조개는 우리집 온 식구가 좋아하는 별미였는데 그것도 숱하게 캐다주곤 했다.

질마재 사람들이 다시 마을로 돌아설 때는 성냥이며, 비누 등 생필품을 필히 사가기도 했다. 이렇게 늘 만나 뵙기만 하던 마을 사람들의 고장, 그 질마재 마을을 처음 본 것은, 초등학교 입학 후 첫 나들이 소풍 길을 그 마을로 정해서였다. 재를 넘고 마을을 지나 끝도 없는 갯벌을 처음 만나기도 했다. 소금을 굽는다는 소금막은 너무도 신기하기만 했다.

그 후 다시 오 년이 지난 다음, 육학년 때의 일이다. 가을 운동회를 며칠 앞두고 총연습하던 날이었다. 달음질 경주 차례가 있었는데 요행 내가 일등을 했다. 그때 내 이름을 부르면서 아주 잘 했다하며 환호하는 소리가 어둔하면서도 요란하게 들려왔다. 뒤돌아보니 점쇠가 와 있었다.

점쇠는 내게 고종사촌형이 되는데 저능아(低能兒)인 셈이다. 그런 형이 있다는 게 창피했다. 마구 등 떠밀었다. 어서 가라고 구박했다. 그래도 꿈쩍 않고 히히 웃기만 하더니, 이내 슬그머니 일어서 돌아섰다. 그게 마지막 본 점쇠형의 모습이다.

그 해 가을 내내 우리 집 산에서는 벌목(伐木)일 하느라 분주했었다. 산의 위치는 질마재 고개 넘어가기 목전에 쇠정골 마을이 있는데 그 마을 뒷산이었다 그 날 아침에도 점쇠형은 여느 때나 다름없이 벌목일 하러 가는 사람들을 따라나섰다. 가는 도중 학교 옆을 지나치자 운동회 연습이 한참이었다. 그걸 구경하고 싶다며 주저앉았다고 한다. 함께 가던 일행들은 구경하다 되돌아가겠거니 여기며 무심했었다 한다. 전에도 따라오던 중도에서 되돌아가던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따라 점쇠형은 되돌아가지 않았다. 산을 찾아 다시 산 쪽으로 나섰던 게 잘못이었다. 내게 등 떠밀렸던 소외감이 그를 그렇게 내몰리게 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던 간에 가다가 쇠정골이 나오면 그곳 뒷산을 탔어야 했는데 무작정 곧장 갔으니 점쇠형은 질마재 고개를 넘은 것이다. 고개를 넘으면 마을이 있고 갯벌이 나온다. 갯벌에도 길이 있었다.

그 당시는 도보를 이용해서 거의 걸어다니는 세상인지라 그곳 사람들은 단연 갯벌 길을 통해 근동 마을은 물론 뒷개포도 가고, 상포며, 줄포며, 다 다녔다.
길을 잃은 점쇠형은 우리 집이 있는 알미장터 마을을 찾아야 했었는데도 엉뚱하게도 고부(古阜) 가는 길을 물었다는 것이다. 실은 점쇠형이 사는 골이 고부였기 때문이다. 고부에서 사는 인연도 알고 보면 지겹도록 눈물겨운 일이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가 젊어서부터 고부에서 살고 계셨는데 점쇠 어머니가 시집에서 버림받다시피 된 신세가 되어 점쇠를 데리고 친정살이하는 삶이었기 때문이다.
그 해 가을, 할아버지께서는 벌목일 감독하시겠다며 한철 내내 우리 집에 계실 작정을 하시고 오셨으며 오실 때 점쇠가 따라오고 싶다고 해서 데리고 온 처지인 것이다.

그날 따라 할아버지께서는 미리 산(山)을 둘러 볼 일이 있어 여느 날보다 일찍 산에 가셨었다. 점쇠가 보이지 않자 집에 있겠거니 여겼었다 한다. 그런데 점쇠는 길을 잃고 헤맸던 것이다. 길을 잃은 점쇠의 당황한 마음은 갈수록 낯선 마을만 나오니 더욱 겁이 났었을 것이다.

그 급변상황은 본능 돌출이 되어, 자기 엄마가 계시는 곳, 자기 살던 의지처, 본거지가 절실했을 것이다. 그래서 질마재 마을에서 고부 가는 길을 찾았으니 갯벌 길로 건너가는 줄포행 길을 가르쳐 주었을 것이다. 줄포가 나오면 고부가 바로 이웃 면이니 찾아가는 방법이야 제대로 알려준 것이다.

그런 갯벌 길을 건널 때는 물때를 맞춰 가는 게 중요하다. 썰물일 때를 이용해서 재빨리 가야하며 만약 가는 도중에 밀물 때가 되어 물 밀려오는 상황을 맞이하면 황급히 피해야 한다. 그런 요령을 점쇠형이 제대로 터득할 리 없었다. 무작정 갯벌 길을 따라가다가 몰려오는 물살에 변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어린 내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다. 그 날 내가 등 떠밀며 어서 가라고, 구박 주지만 안 했다면, 운동회 구경 끝날 때까지 지체했을 것이며, 질마재 고개 넘는 일 없었을 것이며 … 그게 다 나 때문에 비롯된 일인 듯 싶어 어찌할 바를 몰라 했는데, 할아버지께서는 땅을 치셨다. 그 바보 천치가 따라오고 싶다해도 그냥 두고 왔어야 했었는데 애시당초 데리고 왔던 내 불찰이었다 하시며 통곡하시고 또 하셨다.

그때 우리 할아버지의 여운소리와도 같은 구슬픈 곡소리와 함께 미당 선생님의 운구(運柩) 차가 도착되었다. 질마재 고개를 넘어들어 왔어야 했었는데, 연락에 착오가 생겨 선운산 쪽으로 돌아오느라 질마재 고개와는 정 반대방향으로 들어오셨다. 함께 모시고 온 문우(文友)들마다 질마재 고개를 넘어 왔어야 했었는데…. '시집', '질마재 신화'를 낳은 '원명' 질마재 고개인 질마재를 확인하고 싶다했지만 나는 지긋이 눈을 감아버렸다. 점쇠형의 환영이 다시 어른거려서였다.

바보야 하아얀 민들레가 피었다
네 눈섶을 적시는 용천의 하늘밑에
히히 바보야 히히 우습다

잠시 잠깐 다녀왔다 간 듯한, 점쇠형의 짧은 생애는 선생님의 시구(詩句) 속에 긴 시(詩)가 되어 있었다. 천사가 되어 있었다. 각인되어 있었다. 히히 웃는 모습 질마재 신화 속의 작은 거인이 되어 있지 않으신가.

선생님의 영전(靈前)에 큰 절 올려드렸다.
오래 오래 명복(冥福) 빌어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