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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류인혜 |
날짜 : 03-11-25 22:20
조회 : 2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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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이야기 - 느티나무와 느티나무
류인혜
버스가 잠깐 머문 사이에 차창으로 나타나는 글씨를 무심히 읽었다.
<수령 400년> 느슨해 있던 자세가 가다듬어지며 긴장이 된다. 버스가 출발하여 고개를 뒤로 젖히고 더 읽은 글자가 <느티나무>이다.
나이가 400살이나 먹은 느티나무를 만난 것이다. 400년이란 숫자가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그 많은 세월동안 저 곳에 서 있었다니, 그런데 이제야 만나게 되다니...
집으로 돌아가면서 다시 그 나무를 찾았다. 불행하게도 오래 묵은 나무를 보호수로 지정은 해놓았는데 영 마땅찮다. 먼저 나무가 서 있는 자리가 이해하기 어렵다. 나이든 정자나무라면 마을 입구의 넓은 장소의 여유 있는 공간에 우뚝 서야 되는데, 휴게소라는 간판이 붙어있는 낡은 건물과 꼭 붙어 있다. 오래 전에 휴게소를 지을 때 나무의 그늘이 필요해서 나무 곁에 건물을 지었는데 세월에 따라 나무는 늙고 건물도 낡아서 함께 고단한 세월을 겨우 지탱하고 있는 듯 보인다. 주변이 지저분하고 너무 어수선하여 보호수라는 명분이 무색하다.
또 아무리 보아도 400년이나 살아온 나이로 보이지 않는다. 길가에 서있는 나무가 지나다니는 자동차의 매연에 시달려서 자라다가 만 것인지, 고목이 아니라 몇 십 년쯤이나 될는지 싶은 중년의 나이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오랜 세월의 자취가 궁금해져 시간을 내어서 가까이 가서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 나무를 가까이 보기 전에 다른 곳에서 350년이 된 느티나무를 보았다.
거기에서는 나무 주변을 깨끗이 단장하여 오래된 나무를 보호하여 나이 대접을 제대로 해 주고 있었다. 넉넉한 자리에 서 있어 그런지 나무 가지의 뻗은 모습이 넓고 우아했다. 또 영양이 많고 튼튼한 줄기가 힘을 주고 있어 넓게 뻗어나간 가지도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나이 먹어도 노쇠한 티가 나지 않고 세월의 깊음 속에서 나무의 연륜이 아름다움으로 베여있다. 사진을 찍으며 남양주 어느 길가에서 먼지를 쓰고 있는, 그 나무보다 50년의 세월을 더 살아 이제는 살아있기가 힘에 겨운 느티나무를 생각했다.
바로 곁에 있는 집으로 인하여 지붕과 붙어 있는 공간의 옹색함으로 가지가 비틀어지고 줄기의 연약함이 도저히 400년의 연륜이 느껴지지 않는 나무와 산비탈의 편안한 자리에 어느 것에도 방해를 받지 않고 마음껏 가지를 펼치고 서있는, 주변도 말끔히 단장되어 있는 나무의 형편을 비교해 본다.
본래 나무는 스스로 그 옹색한 자리에 서 있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에 의해서 심어졌거나 옮겨져 지금의 위치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닌가. 어찌 할 수 없는 환경의 지배를 받아 넉넉하지 못한 모양새로 변해버린 느티나무에 연민이 간다.
사람도 어찌할 수 없는 자리에서 일평생 동안 고단한 삶을 살게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삶에도 무엇인가 나이만큼의 이루어진 것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나무가 아무리 볼품이 없는 모양새라도 여름이면 나름대로 시원한 그늘을 이룰 것이 아닌가, 기대해본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 의젓하고 넉넉한 인품으로 노년을 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이든 욕심이 권위를 만들어 남에게 대접받기만을 바라고 있는 사람도 있다. 전혀 나이 값을 못하여 옹색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노년도 있다.
나이가 들어서야 바쁘게 돌아가는 주변이 자신의 살아온 내력을 알아주도록 기대하기 전에 자신의 설자리를 미리 준비하여, 노년이 되어서는 무수한 인생의 열매를 맺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젊은이들에게 나누어주는 여생을 살아가야 되지 않을까.
두 느티나무는 내 노년의 모습을 먼저 바라보는 거울이 되었다.
2002년 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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