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 낙

서 정 범

참으로 오랜만의 낚시였다. 배를 타고 남한강을 건너는 마음은 무척 가벼웠다.

낚시터에 이르자 노인 한 분이 있었다. 이미 대글대글한 붕어가 여나무 놈이나 낚여 있었다. 두 칸짜리 짧은 대 하나만 쓰고 미끼는 이른바 탄을 쓰고 있었다. 낚시는 한 개만 단 외낙이었다.

짧은 대 하나만 쓰고 탄을 쓰고 외낙을 쓰는 것으로 보아 낚시에는 통달한 분임을 느낄 수가 있었다. 흔히 쌍낙을 쓰는 게 보통인데 외낙을 쓰는 것은 드물다. 내가 외낙을 쓰는 이를 본 것은 나의 낚시 스승이기도 한 원 선생이었다. 그분은 목줄이 한 자나 되는 외낙을 썼다. 외낙으로도 쌍낙을 쓰고 여러 대를 차린 사람보다 언제나 성적은 좋았다.

작고한 원선생과 낚시를 차린 나는 고기를 낚는 것보다 그 노인에게 시선이 더 갔고 관심이 쏠렸다.

점심을 노인과 함께 나누며 이야기를 들었다.

최 노인은 직장에서 정년으로 물러난 후 건강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어서 낚시로 소일을 했다. 그의 아내도 낚시를 즐겨서 함께 다녔다. 북한이 고향이라 최 노인은 고향과 가까운 임진강을 자주 다녔다.

처음에는 서울서 다니다가 교통이 불편해서 아예 임진강 주변 어유지리 라는 곳으로 집을 얻어 옮겼다.

처음에는 낚시꾼을 가장한 부부간첩이라는 오해도 받았었다.

나도 어유지리 쪽에 낚시를 자주 다닌 편이기 때문에 그쪽 낚시터를 잘 알고 있다.

최 노인이 늦가을 아내와 함께 용못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아내가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 세상을 떴던 것이다.

임진강이 굽어보이고 용못이 잘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아내를 묻었다. 아내가 죽은 후 최 노인은 낚시를 한 개만 달았다. 낚시의 반려자인 아내를 잃었기 때문에 외낙을 쓰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내를 묻은 후 낚시터에 앉으면 부인이 옆에 있는 것 같고 다가오는 것 같아 거기서 더 머물 수가 없었다.

다음 해 봄에 북한강 쪽으로 옮겼다. 청평댐의 상류쪽에 집을 얻어 거기서 2년을 지냈다.

남한강에 온 지는 지난해 봄이다.

최 노인은 낚시는 고기를 낚는다기보다 세월을 낚는 것이라고 했다. 세월이란 그분의 여생을 뜻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시간을 잃고 있다. 그 잃은 시간을 다시 찾는 작업일 수도 있다.

그 후 매주 그 노인이 있는 곳으로 낚시를 갔다. 나의 아내도 최 노인이 말을 듣고 무척 관심을 갖고 낚시 가는 날이면 으레 그 노인의 점심까지 싸 주었다. 나는 낚시를 가서 고기를 낚는 것보다 그 노인을 만나는 것이 더 관심이었다.

하루는 갑자기 소나기가 퍼부어 낚시를 더할 수가 없었다. 비가 멈출 때까지 자기 집에 가 있자고 했다. 사실 최 노인의 집을 보고 싶었던 차에 잘 됐다고 여겨졌다. 훤칠한 키에 허리가 좀 구부러졌지만 걸음은 건강하다. 낚시터에 약1km 쯤 떨어져 있는 마을에 초가 한 채를 전세들고 있었다. 방은 하나고 헛간과 부엌이 있는 아주 작은 초가였다. 헛간에는 젖염소가 한 마리 있었고, 닭이 여나무 마리, 뜰에는 개가 한 마리 서성거렸다. 양젖과 기르는 닭에서 낳은 계란이 최 노인의 주요 식품이었다.

최 노인이 부엌으로 나가더니 한참만에 고구마를 쪄왔다. 갓 캔 고구마라 감칠맛이 난다. 거기에다 조금 전에 짠 염소 젖은 아주 맛이 신선하고 고소했다. 최 노인은 잡은 고기는 이웃에 나누어 주었다. 이웃에선 마늘․고추․호박 등을 갖다 주었으며 김장 때는 이웃 아주머니들이 김장감을 직접 가져와 담아 준다고 했다.

소나기가 그쳤다. 최 노인네 집을 나오니 남한강에 무지개가 서 있다.

나는 그 무지개 속을 건너오면서 누구의 구속도 받지 않고 자기의 취미를 살리며 이웃 사람들과 정을 나누며 자연과 함께 사는 그 노인의 전원적인 삶이 무척 부럽기까지 했다.

그 후 나는 구라파에 다녀오는 일이 있어 낚시를 못 갔다.

올해에도 최 노인의 소식이 궁굼해서 낚시를 가고 싶었었는데 봄을 그냥 넘겼다.

여름 방학이 되자 만사를 제치고 낚싯대를 메고 나섰다. 남한강을 건너며 뱃사공에게 최 노인의 소식을 들었더니 지난 5월에 세상을 뜨셨다는 것이다. 자식들이 와서 장사를 치렀다고 하며 장지는 임진강 근처에 부인의 무덤과 합장해 달라는 유언에 따라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했다. 내가 구라파에 간다니까 그쪽 찌를 하나 선물받고 싶어했다. 그래서 나는 파리에 갔을 때 낚싯방을 겨우 찾아서 찌를 구해 왔던 것이다. 최 노인의 무덤이 있는 근처의 지리를 내가 조금 알고 있으니 물으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 낚시는 임진강변에 있는 용못으로 가야겠다.

새로 두 칸짜리 두 대를 마련해서 새줄을 매고 쌍낙과 파리에서 사온 찌를 단 낚싯대를 최 노인의 무덤에 묻어주고 싶다. 저승에서는 최 노인의 부부가 나란히 앉아 외낙이 아니라 쌍낙으로 낚시를 할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