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비단길에 서서

- 나의 삶 나의 문학

윤후명

다시 비단길이 내게 다가왔다. 일찍이 중국과 로마로 이어지며 비단을 비롯한 많은 문물의 교류를 도맡아 온 길이었다는 비단길, 실크로드. 그 길은 이제 관광 코스로도 개발되어 여러 사람들에게 꽤 널리 알려진 이름의 길이다. 하지만 내가 1982년에 그 길의 중심 유적지인 둔황(敦煌)을 끌어들여 소설을 쓴 뒤 한 시절이 지나기까지도 낯선, 미지의 이름이었다. 일부 알 만한 사람만이 갈망의 목을 늘이고 그 쪽으로 아득한 눈길을 보냈을 뿐이었다.

그곳에 가보지도 못한 채 나 역시 갈망 속에서 둔황에 관한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때는 둔황이 아니라 돈황이었듯이 현지의 개념은 도무지 내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죽의 장막’ 속의 일에 대해서는 거의 까막눈에 지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나는 비단길과 이어지는 우리의 정체성을 어떻게든 되살려놓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다. 나라 안에서는 독재 정권이 살벌하게 짓누르고 있었고, 나라 밖으로의 길은 족쇄가 채여 있었다. 그곳이 어디인가. 둔황은 중국 서역의 오아시스 도시로서, 실크로드에서 가장 융성했던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천불동으로 대표되는 유적이 발견된 것은 비교적 근래의 일이었다.

이 흥미로운 이야기는 여기서는 생략할 수밖에 없지만, 그때 동굴 속에서 발견된 유물 가운데 우리 신라의 혜초스님이 쓴 『왕오천축국전』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사실에서 우리가 실크로드를 오가는 고리, 나아가 세계로 이어지는 고리를 보았다. 실로 만만찮은 ‘꼬투리’였다. 그러니까 그 소설은 우리와 세계를 필연으로 이으려는 노력 아래 쓰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것은 내가 세계를 받아들이는 한편 나타내는 통로였다. 나는 막상 둔황과 실크로드를 붙잡고는 있었으나, 그것은 자료를 통한 접근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소설은 그쪽을 바라보며 서울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움직임으로 씌어져야 했다. 답답한 노릇이었다.

나는 상상 속에서 둔황으로, 비단길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도 내가 숨쉬고 있는 이 서울에 이어져 있는 길이기도 했다. 둔황은 역사에 묻힌 유적으로서만이 아니라 오늘날의 서울의 현존재이기도 한 것이었다. 내 억눌린 삶은 거기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우리의 덧없는 삶이 과거, 현재를 거쳐 미래로 가고 있음을 확인해두어야겠다는 뜻이 나를 이끌었다고도 할 것이다. 나는 애초에 비단길의 세 오아시스 도시인 둔황과 로우란(樓蘭)과 쿠차(龜玆)에서 각각 영감을 받았다. 그런데 앞의 두 이야기는 그 무렵 소설에 나타나 있지만, 쿠차는 그렇지 못 하다. 우리 음악이 쿠차의 음악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는 한 마디 글 구절에서 비롯된 숙제는 지금도 줄곧 내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소설가가 되고 나서 나는 지금까지 궁극적으로 이 세계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소설을 쓰는 근본이 여기에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내 자아의 발견이며 또한 확충을 위한 작업이다. 그러니까 그 소설 『돈황의 사랑』을 씀으로써 나는 본래 시인으로 시작한 문학적 행로를 소설가로서 다시 연 이래 비로소 내가 나아갈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고 해야 한다.

그리고 10년이 거의 다 지나서야 나는 실크로드를, 둔황의 유적을 직접 찾아갈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오늘날처럼 그리 쉬운 여정은 아니었다. 겨우 둔황에 도착한 그 날 저녁, 나는 실크로드 호텔 앞 광장에서 내 작품을 있게 해준 연기(緣起)에 몸을 떨며 마냥마냥 빠이주(白酒)에 취해갔다. 그 여행을 함께 하고 돌아와서 이경철 기자가 신문에 쓴 기사에는 낙타를 타고 그곳 명사산에 오르는 나의 사진이 실린 밑에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붙어 있었다(1991년 8월 17일자 중앙일보).

문명 사회의 절망적 폐허감의 보상 심리로서의 문학적 상상력의 뿌리를 이곳에 둔 그는 돈황에서 막무가내로 술만 마셔댔다.

그랬었다. 나는 그 어떤 감회에 ‘막무가내’였다. 왜 그랬었는지는 굳이 부연할 필요도 없겠지만, 북받치는 감정을 견딜 수 없었다. 오랜 세월 동안, 마치 전생의 머언먼 언제부터인가 그곳을 향해 낙타처럼 걸어왔다는 느낌을 가졌다면 지나치다 할 것인가. 막막한 그리움의 신기루가 바로 옆에 다가와 속삭이는 소리에 나는 혼몽한 정신을 가누기 힘들었다. 가누려는 의도도 없었다.

그 뒤 어느덧 다시 1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이 여름, 나는 다시 실크로드로 향했다. 한국현대소설학회의 학술대회가 중국 시안에서 열렸는데, 그 발표 가운데 ‘한국 현대 소설에 나타난 돈황’이라는 주제가 있어서 따라 나섰던 것이다(발표자 김명석 명지대 교수). ‘『돈황의 사랑』은 한국 현대소설사에서 윤후명이란 작가의 탄생을 선언하는 의미와 함께 돈황이란 상징적 지점을 향한 자아 탐색의 여행을 형상화하는 일군의 소설의 탄생을 예고하는 작품’이라는 발표에 이어 내게도 몇 마디 말을 할 기회가 주어졌고, 나는 작품을 쓸 때를 새삼스레 돌아보기도 했다.

여행은 시안에서 회의가 끝나고 란초우, 둔황, 투르판, 우름치로 연결되었다. 희미하게 바래져가는 유적과 유물들은 그러나 내게는 여전히 감동과 충격을 주었다. 우리들 인간은 그 아래 서서 지금 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존재가 분명했다. 나는 사막을 바라보며 내가 혹시 잘못 오지는 않았나, 문학의 지평을 확인해보려 애썼다. 내게 앞으로도 가야 할 저 길이 있는 한 나는 잘못 온 것은 아니었다. 누구나 길을 확인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아무리 험난하고 막막할지언정 잘못은 없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내년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돈황의 사랑』을 영어로 번역하여 내놓게 되어 있기에 여러모로 뜻깊은 길임을 마음속에 새겼다. 시안을 떠나 란초우로 가서 새로 개방된 병령사 석굴사원을 갈 때부터 예전과는 다른 여정이었다. 그리고 열차를 타고 밤을 도와 덜컹거린 끝에 도착한 가유칸의 흙성벽 위에 올라 ‘이 성 밖에서부터 서역(西域)’이라는 말을 들을 때,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막한 사막이 내게 주는 삶의 의미를 심도 있게 응시하는 자세를 언제까지나 잊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서역이라는 곳은 내게는 오랫동안 신비와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 서역을 대신하여 내 앞에 나타난 사막은 광포하고 괴기스럽다. 그 성밖 사막 어귀 땡볕 아래 현지인들이 낙타떼에 손님을 태우려고 무작정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결코 ‘진달래 꽃비 내리는 서역 삼만리’(서정주의 시)의 그런 서역은 아닌 것이었다. 물론 그곳 오아시스 도시들에는 향기로운 모래대추꽃과 달콤한 포도와 큼직한 ‘하미과’와 그밖에도 복숭아, 살구, 자두, 토마토, 참외, 수박 등이 있다. 꽃들은 원추리, 메꽃, 톱풀, 접시꽃, 장구채, 별꽃 등 우리 것들과도 다를 것이 없다.

우름치 근교의 요지연에는 애기똥풀꽃이 샛노랗게 피어 그곳에 어린 서왕모의 전설을 친근하게 해주었다. 모래바람 속에 고비사막을 달려 둔황에 도착하여 밤을 보내고 맞은 새벽은 여러 발의 총소리에 잠을 깨면서 시작되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차량들이 행렬을 지어 달려가고 있었다. 그것이 그쪽 사람들의 장례 의식임은 나중에 안 사실이었다. 그 장례식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한 해에 고작 서너 번밖에 오지 않는다는 비가 웬일로 내리고 있었다.

이윽고 막고굴의 천불동에서 다시 만난 벽화들과 불상들 앞에 선 나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다른 나라 것과는 구별된다는 우리 장구가 그려진 149굴의 벽화와, 새 깃털 모양의 관으로 알 수 있다는 신라 사신이 그려진 237굴의 벽화를 본 것도 수확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마치 영원 회귀의 한 표상처럼 그 앞에 서 있는 것이 신기해서 나는 가슴이 저렸다. 그동안 나는 여러 곳을 여행했고, 또 어려운 삶의 고비도 겪을 만큼 겪었는데, 그렇게 그곳에 와 있는 것이었다. 전날 저녁에 <신용문객잔>이라는 영화를 찍었다는 ‘고창 고성’의 세트에서 양고기를 뜯어먹으며 내 길을 확인한 고마움에 얼마쯤 망연해 있었던 순간도 되살아났다. 옛날 『서유기』의 길이자 『왕오천축국전』의 길이 또한 내 길임을, 문학을 향한 구도(求道)와 같은 열정을 되새겨볼 기회였다. 그것은 스스로 이름붙여 ‘비단길의 나 - 자아의 발견과 확충’에 값하는 일이었다.

둔황에서 투르판까지는 또 밤열차의 길이었다. 그곳 베제클릭의 동굴사원은 오래 전부터 꼭 가보리라 벼르던 곳이었으나, 너무도 철저하게 훼손되어 마음만 상했을 뿐이었다. 그 상한 마음에 누군가 뜻밖에도 로우란 포도주를 한 잔 따른다. 로우란이라니! 누란이라니! 내 입에서 갓 배운 위구르 인사말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약시무스!”

안녕하세요. 공연히 감정이 북받친다. 내가 『누란의 사랑』을 쓰기 얼마 전에 그곳에서 한 여자의 미라가 발견되었다. 그녀를 감싸고 있던 비단천에는 언제까지나 사랑을 변치 말자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만든 포도주가 내 잔에 따라지고 있었다. 나는 사막과 오아시스에도 언제까지 변치 않을, 변치 못할 사랑의 말을 던진다. 그리고 인사한다. 약시무스! 밤열차를 타고 사막을 지나며 아직도 내 안에 식지 않은 열정을 확인할 수 있었던 실크로드. 그동안 내가 쓴 『협궤열차』나 『여우 사냥』이나 『가장 멀리 있는 나』 같은 소설들도 모두 그 열정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할 때, 나의 모습은 일목요연하다. 나는 이야기를 펼쳐 보이기보다는 하나로 모으기 위해 얼마나 고심참담해 왔는가. 협궤열차는 결국 실크로드 열차였으며, 러시아에서의 여우 사냥 길에서처럼 가장 멀리 간 나는 결국 실크로드 위에 구도자로서 서고 싶었던 염원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던가.

아울러 둔황 벽화와 옛 무덤 속 벽화에 그려져 있던 앵무새를 생각한다. 『삼국유사』의 어느 장면이 떠오른다…… 신라 시대에 중국에 사신으로 갔던 사람이 앵무새 한 쌍을 가져왔다. 그런데 그만 암컷이 죽어버려 수컷이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임금이 거울을 그 앞에 가져다놓게 하자 수컷은 자기 짝인 줄 알고 좋아하다가 마침내 아닌 것을 알고 슬피 울다 울다 죽어버렸다…… 나는 실크로드의 벽화에 그려진 앵무새에서 언제까지나 변치 않을 사랑의 의미를 발견하고 싶었다. 그것이 내 문학의 한 원류에서 나를 인도해 갈 비천녀(飛天女)의 모습이기도 하리라고 나는 상상의 날개를 폈다.

하루하루 덧없이 흘러가는 게 우리들 삶이지만, 인류의 장구한 역사 속에서 빛날 사랑을 구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그리하여 문학은 저 무한 공간에까지 우리의 이상을 구현할 메시지를 얻지 않으면 안 되리라고

- 대산문화 2004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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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후명 : 소설가, 한국소설학당 대표. 1946년생. 소설『돈황의 사랑』『협궤열차』『여우 사냥』『가장 멀리 있는 나』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