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나는 아파트 단지내 상가에 가게를 내었다. 학생들이 주고객인 내 가게는 아담하면서도 활기가 넘쳤다. 손님으로 오는 학생들의 꾸밈없는 웃음과 이야기는 나에게 큰 즐거움이 되었다.

햇살이 따사롭던 어느날 아침에 출근을 해보니 가게안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진열장 위에는 누군가가 왔다간 흔적이 역력했다. 어림잡아 계산을 해도 천여만원이 넘는 게임기와 CD등 고가품의 물건들이 없어진 것이다. 주변사람과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최군이라는 학생에게 심증이 갔다. 최군은 평소에도 문제가 있는 아이라고 주변사람들이 귀뜸해 주었다. 나는 최군을 만나보려고 이리 저리 수소문해 보았지만 헛수고였다.

그러던 차에 최군은 내가 잃어버린 물건과 유사한 제품을 내게 팔러 왔다. 쌍둥이라 해도 부모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듯이 내 것이라고 쓰여 있지는 않았지만 내 물건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바른대로 얘기해 주면 용서해 준다고 하니까 최군은 자초지종을 술술 털어놓았다. 물건을 훔쳐간 행위보다 순순히 자백하는 순박함이 단단히 죄값을 물리고 싶었던 내 마음을 누그러뜨리게 했다.

나머지 물건을 회수하기 위해 최군의 어머니를 만났다. 그러나 최군 어머니는 사과보다는 나를 거꾸로 몰아 붙였다. 물건을 훔친 사람이 잘못이 아니라 훔칠 수 있는 물건을 파는 사람이 잘못이라는 것이었다. 몇 가지의 물건을 찾은 것으로 이 일을 덮어두려 했지만 최군의 어머니로 인해 일은 더 악화되었다.

결국 최군은 경찰서까지 가게 되었고 나와 최군의 어머니도 함께 갔다. 신원조회 결과 최군은 놀랍게도 이런일이 처음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최군 어머니는 이제 자신의 아들을 몰아 붙였다. 나는 최군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짐작이 갔다.

형사는 정상참작은 하되 전력이 있어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순간 최군은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떨구었고 나 또한 죄인이 된 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제서야 최군의 어머니는 형사와 내 사이를 오가며 선처를 호소했다.

최군의 어머니를 보고 있으려니 시조 하나가 떠오른다.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낸 까마귀 흰 빛을 새올세./ 청강에 조히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옛날 정몽주의 어머니가 지었다는 이 시조에는 자식이 나쁜 곳에 빠질까 염려하고 경계하는 어머니의 사랑이 깃들어 있다고 하겠다. 한 인물이 충신이 되기까지는 어머니의 애틋한 사랑의 울타리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최군의 어머니와 충신을 키운 어머니의 단적인 면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최군은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최군을 가두어둔 싸늘한 분위기의 경찰서를 나서려 하니 웬지모를 무거운 구름이 밀려와 눈시울이 젖어 왔다. 어쩌면 최군은 먼지로 흐려졌을 분 닦으면 맑아지는 거울일지도 모른다. 아이의 운명은 어머니가 만든다는 나폴레옹의 말이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차라리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경찰서까지는 오지 말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내가 최군만 하던 학창시절은 어려웠다. 그러나 겨울이면 따뜻한 난로가에서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을 데우며 정을 나누었고 별명을 부르며 웃음꽃을 피웠었다. 그 도시락 속에는 자식이 반듯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와 사랑이 들어 있었다. 어려웠던 학창시절을 모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기도와 사랑을 고루 섭취할 수 있어서였다는 생각이 든다.

서정범 선생님의 수필에 ‘밤송이의 가시는 어머님이 자식을 키우시느라고 험한 가시밭길을 걸어온 뜻이요, 껍데기는 그 험한 가시밭길에서도 자식들을 사랑으로 감싸려는 의자라 하겠다.’라는 글귀가 있다. 껍데기 안의 튼실한 알맹이를 만들어내기 위해 어머니는 사랑의 울타리로 세상의 모든 풍파와 대항했을 것이다. 어쩌면 법의 심판대로 가야할 사람은 따뜻한 난로가의 도시락의 정과 험한 가시밭길을 걸어온 어머니의 사랑을 잊고 사는 우리들이 아닐까.

이번일을 계기로 나는 아이에게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잘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사소한 것에도 상처를 받는 아이에게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누가 되어 밖으로 나돌게 한 적은 없었는지, 좀 더 사랑하고 이해하도록 노력했는지 두루 되돌아보게 된다.

내 아이가 최군의 자리에 선다면 나는 어머니로서 어떤 모습일까. 과연 최군의 어머니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최군의 어머니도 방법이 다를 뿐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었는지도 모른다. 최군과 그의 어머니에 대해 좀더 관대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아이들은 좋은 어머니를 필요로 하지만 정작 좋은 어머니의 역할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새삼 깨닫는다. 나이 사십이 넘어서야 나를 낳아 키워주시고 사랑의 울타리가 되어주신 어머니가 얼마나 훌륭한가를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