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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이 완성되면 지은이 가나다 순서로 정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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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임병식 |
날짜 : 04-11-25 12:15
조회 : 2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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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울음 울기 좋은 곳
임병식
가을은 울음울기에 좋은 계절/백발성성한 억새가 서로 등을 부비며 울듯이,/ 그렇게 울기 좋은 계절/그리고 가을은 눈물 흘리기 좋은 계절/신열 앓은 대지가 /새벽마다 울어 울어/풀 섶에 이슬을 달아놓듯이/그렇게 눈물 흘리기 좋은 계절
자연도 이러한데 어찌 희로애락의 감성을 지닌 사람이 울고 싶지 않을 때가 있을까. 나도 사람인지라 때로 울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서푼어치도 안 된 알량한 체면 때문에, 더러는 울고 있으면 청승맞아 보일 것 같아 서, 스스로 더욱 비참해 질 것 같아서 억지로 울음을 참아낸다. 아니, 그보다는 고조된 감정이 더욱 격화될 게 뻔해 억지로 자제한다. 이즈음의 나의 심사이다.
울고 싶을 때 울지 않는 것이 이상할 것이다. 흔히, 말해 남자의 눈물은 헤퍼서는 아니 된다고 말 하지만, 왜 남자라고 울 일이 없을 것인가.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울어야 하고 만에 하나 자식을 앞세우는 참척의 경우라도 생긴다면 울지 않는 부모가 더 이상할 것이다.
일찍이 연암(燕巖) 선생은 중국 사신 길에 올랐을 때, 드넓은 요동 땅을 지나면서 '이곳이야말로 통곡하기 좋은 곳'이라고 술회한 적이 있다.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었기에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울적한 마음이 어떤 조건에 이르게 되면 자연발생적으로 터져 나오지 않던가.
수일 전에 인기리에 방영된 '황진이'란 드라마에서도 그런 대화가 나오고 있었다. 화담 선생이 자기를 찾아온 황진이에게'무슨 일로 왔느냐' 고 물으니 그녀는'울 곳을 찾아왔다'고 했던 것이다. 그걸 보면서 새삼스레 우는 일도 '때'에 못지않게 '장소'가 필요함을 알았다.
아무튼 내가 보기에 연암선생이 광야에서 울고 싶은 충동을 느낀 건, 우국(憂國)의 마음이지 싶고, 황진이가 울 자리를 찾아온 건 자기의 마음을 알아주는 정인(情人)의 곁에서 거칠 것 없이 울고 싶어서 그러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저러한 사연으로 찾게 되는 울 자리. 그런 장소라면 우리 집도 한사람쯤 족히 울만한 장소가 있다. 식구가 단출하다 보니 집안이 늘 텅 비어 있는데, 서재며 거실이며 하다못해 화장실까지도 방해받지 않고 울기에 안성맞춤이다.
한데, 나는 그렇게 까지 절심함을 느끼지 못하다가 어제는 정작 울컥하고 눈물을 쏟을 뻔 한 일을 겪고 말았다. 투병중인 아내가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갑자기 물을 마시지 않겠다고 거부를 했기 때문이다.
당황하여 물으니 밤중에 소피보는 것이 두려워서 그런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납덩이에 가위 늘린 듯 답답해지더니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소피야 본인이 보는 것이지만, 부축은 내가해야하니 그것은 곧 나를 배려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심히 마음이 흔들렸다.
지금 아내의 건강은 매우 위중하다. 혼자서 앉고 눕고 하는 일상의 상주좌와(常住坐臥)는 물론, 혼자서 식사도 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중풍으로 쓰러진 후유증 때문인데, 전에는 그런 대로 거동이 가능했으나 재발이 된 뒤부터는 그것마저도 못하게 되어 버렸다. 병원에서 퇴원 후는 간병 일을 하는 아줌마의 보조를 받았다. 그런데 그 일도 3D업종에 속하다 보니 한두 달 하다가 그만 두기 일쑤였다. 해서 이제는 내가 혼자서 직접 돌보고 있다.
거기다 물리치료까지 겸하니 하루해가 언제 가는 줄 모르게 지나간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자연스레 나의 일과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이다. 틈틈이 시름을 달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나 잠시도 환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갇혀 지내는 신세이다. 이런 처지다보니 외출은 꿈도 꾸기 어려워 대인관계가 당연히 소원해진다.
아내는 지금 벼랑 끝에 위태로이 서있는 나무와도 같다. 감기만 들어도 거센 바람에 넘어질 듯한 모습을 보여서 애를 태우게 한다. 몸 상태가 그야말로 뿌리 한 가닥이 간신히 둥치를 지탱하고 있는 형상인 것이다. 그런데도, 아내는 내게 조금이라도 짐을 덜어주려고 아파도 안 아픈 척 용을 쓰고 참아내고 있다. 그런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무시로 찾아오는 불안과 허탈감과 자괴감을 묵묵히 견디어 내고 있는데,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억장이 무너진다.
그런 때문인지 최근 들어서 나는 급속히 신체의 변화를 겪고 있다. 그중에서도 뚜렷한 증상은 날로 심해지는 변비와, 고갈되어 가는 삭막한 마음이다. 하지만, 변비는 좋다는 약을 찾아먹으면 될 것이나, 날로 황폐해져 가는 감정변화는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걱정이다.
특히 글을 써야하는 입장에서는 감정조절이 관건인데, 평상심 유지가 어려우니 여간 난처한 일이 아니다. 거기다 무시로 울컥울컥 펌프 물이 넘치듯이 감정이 격해오니 심란한 마음을 어쩔 수가 없다. 하여 요즘 나는 서재에서나 화장실에 들어 망연히 넋을 놓고 있을 때가 많다. 울 채비를 마련하려는 예비동작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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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지사지
林秉植
요즘 나의 머릿속에는 화두하나가 뱀이 똬리를 틀듯 자리를 잡고 있다. 뭔고 하니 역지사지 문제이다. 그런데 이 말이 한자표기로 이만큼 헷갈리게 하는 말도 없다. 사전을 찾아보면 7할은 易地思之’로 나와 있고, 나머지 3할은‘易之思之 로 돼있기 때문이다. 후자의 대표적인 예는 삼성출판사 발행, 우리말 큰 사전과 인터넷 사전이며 그 밖의 사전들은 대부분 전자를 따르고 있다. 하나, 내가 이렇게 서두를 꺼냈다고 해서 하려는 말이 결코 그 표기에 있는 건 아니다.
정말로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헤아려보고 그렇게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요즘 나는 통 다른 것은 관심이 없고 오직 이 문제만을 놓고 정신을 몰두하고 있다. 그래서 일 테지만 어젯밤에 본 연속극의 대화가 귀에 번쩍 들렸다. 주인공인 혜인이 아버지가 장기웅 이라는 청년에게 '자네는 남을 도와주기를 그렇게 좋아 하나?'고 물으니 그의 대답이 다음과 같았던 것이다.
"네 저는 무슨 일이 일어나면 일단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한 겁니다."이건 다른 것이 아니다. 폭발사고현장에서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구조에 매달리느라 옷가지가 엉망이 된 모습을 보고 '굳이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물음에 대해 답변한 것이었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이 되고 있는 '별난 여자 별난 남자'라는 드라마의 대화이다.
내가 이 역지사지의 문제를 골똘히, 그러면서도 절실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다. 어떤 광경을 목격했는데,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 일은 며칠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 산책을 나가면서 보니 마을 어귀에 웬 낯선 건물이 한 채가 보이고 그 전면에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그걸 보고 나는 건물주가 자축의 의미로 내걸어 놓은 줄 알았다. 그런데 적힌 글을 읽어보니 그런 게 아니었다.
'우리 주민은 절대로 농아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쓰여 있고 그 밑에 누구 혼자의 의견이 아니라는 듯 '마을주민 일동'이라고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농아시설이 들어선 걸 탐탁지 않게 여긴 마을 주민들이 입주를 반대하는 시위 품이었다. 그 걸 보니 그간에 진행되던 일련의 일들이 떠올랐다. 몇 차례 지나면서 보니 처음에는 닦여진 부지위에 '다용도주택'이라는 푯말이 꽂힌 것이 보여서 그때는 그냥 그런 게 있나 보다 하고만 지나쳤다. 주변에서 수화로써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보였으나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러데 그 다음 지나 갈 때는 조금 떨어진 마을회관 앞에 주민들이 모여서 웅성대고 있었다. 그러면서 얼핏 들으니, "마을을 버리는 거요. 절대 못하게 막아야 돼"하는 게 아닌가. 그러니까 당시는 몰랐는데, 마을 주민들이 그 ‘다용도건물’이라는 게 무슨 용도인지를 이미 알고는 대책을 강구중인 것 같았다.
한데, 그때까지도 무슨 행동을 보이지 않았는데, 마침내 건물이 완공되니까 드러내놓고 거부감을 표출한 것이 분명했다. 건물 앞에는 사람도 한사람 보이지 않았다. 다만, 건물 유리창 문 안쪽에 다소 겁먹은 표정의 눈동자들이 바깥을 내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묻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만 했다. 보나마나 처음 수화를 하고 있던 그 사람들일 것이다.
그 모습은 마치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들이 임시 보호소에서 대기하면서 잔뜩 긴장하며 호기심 반 우려 반으로 외부의 동태를 살피는 모습과도 흡사했다. 자기들이 장래가 향후 어떻게 될지 몰라 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나는 바깥의 상황을 살피는 눈동자를 보자 안쓰러운 마음이 밀려왔다. 그러면서 저들이 자기들을 배척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원망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의기소침해 있는 사람들인데, 자괴감은 또 어떨 것인가 하는 생각도 떨칠 수가 없었다.
제삼자의 입장이지만 꼭 이래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압박해 왔다. 농아 자들이 아무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면 모를까, 그 들이 뻔히 보는 앞에서 벌리는 이런 시위가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문득, 법구경(法句經)의 한 대목이 뇌리를 스쳤다.'거친 말을 하지 말라. 그 말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온다. 악(惡)도 화(禍)도 모두 오고가며 보복의 지팡이는 네 머리를 내리 친다' 이건 다른 것이 아니다. 사람은 입(口)으로 짓는 업(業)이 있는데, 이 구업(口業)의 악업(惡業)중에서도 제1 악구((惡口)가 험한 말을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펼침막 이야말로 악구 중 악구가 아니고 무엇인가.
생각해 하면 이곳에 터 잡고 사는 사람들도 그들을 괄시할 입장은 아니다. 자기들도 외곽지대에 밀려나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 왜 역지사지를 생각해 보지 않을까.
그런 안타까운 마음 때문에 요즘 내게는 이게 화두가 되어 가슴을 무엇에 짓눌리는 듯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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