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시장에 갔다가 복구공사가 얼마나 진행 되었나 궁금해서 청계천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하늘을 가르며 무겁게 걸렸던 고가는 사라지고 고가의 높이만큼이나 깊어진 공간이 길을 따라 길게 뻗어 있었다. 개천 옆으로는 산책로가 이어져 있고, 건너편에는 바위로 조경이 되어 있었다. 다리는 물이 흘러가는 것을 내려다볼 수 있도록 바닥의 일부를 강화유리로 만들었다. 그렇게 청계천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20여개나 된다고 한다. 짐을 실으려는 트럭과 주차된 차들로 아수라장을 이루던 길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차량의 흐름이 원활하고, 사람들이 언제라도 길을 건널 수 있도록 점멸등이 여유 있게 깜박이고 있었다. 이곳이 정녕 예전의 청계천인가 싶었다.

고가를 철거할 무렵에도 일부러 그곳에 가본 적이 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이 낡은 아파트와 상가 옆으로 부셔져 내리는 철근콘크리트의 잔해는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도시의 부랑자로 살아가는 비둘기들이 영문도 모른 채 허물어진 콘크리트 기둥 위에서 불안하게 몸을 부비고 있었다. 보금자리를 철거당하고 몸 둘 곳을 잃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청계천 주변의 상가가 철시 될 때도 알려지지 않은 사연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을 것이다.

40년 전, 우리 가족은 도심에서 가까운 한남동에서 철거를 당하고, 서울의 변두리인 상계동 주택단지로 강제이주 된 적이 있다. 방 한 칸, 부엌 한 칸에 칸막이조차 없는 시멘트 블록 구조물은 난민 수용소를 방불케 했다. 그 당시만 해도 상계동은 깊은 산에서 인가로 곰이 내려오던 동네였다. 공무원이었던 젊은 아버지가 가족들과 더불어 겪어낸 일들은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에 서민들이 평균적으로 감내해야하는 아픔이었다. 그렇게 이주한 사람들이 다시 외곽으로 내몰리고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생긴 지도 꽤 여러 해가 되었다.

훗날 아버지는 정부쪽 책임자로서 시위 차 몰려온 상하계동 철거민들을 대면하게 되었는데, 그들 중 상당수가 예전에 함께 막걸리를 마시던 동네 친구였다고 두고두고 말씀하셨다. 한때 같은 처지에 있었던 이웃은 서로의 입장을 헤아리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변화가 일어나는 곳에는 늘 얻는 쪽과 잃는 쪽이 있고 이해관계가 엇갈리기에 어느 한 쪽은 억울한 심정을 갖기 마련이다. 우리도 처음으로 소유했던 집을 잃고 여러 차례 이사를 다녔지만 형편이 점점 나아져서 그 시절의 일들은 즐겨 이야기 할 수 있는 추억거리가 되었으니 다행스런 일이다.

어린 시절 맑게 흘러내리는 청계천에서 놀았다는 어머니는 누구보다 청계천이 예전 모습 되찾는 것을 기다리는 분이다. 청계천이 개통되는 날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그곳에 가보아야겠다. 어머니는 도시화가 되기 전의 청계천을 드물게 기억하는 분이고, 아마도 걸인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던 개울가 다리 밑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줄 수 있는 마지막 세대일 것이다. 70년 전에 수표교 언저리에서 놀던 어린 소녀는 이제 70대 중반을 넘어섰고, 온갖 악조건을 뚫고 살아남아 자손을 번식해온 잉어는 힘차게 청계천을 거슬러 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