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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비게이션(Navigation)

오늘은 10년 무사고로 서울 서부면허시험장으로 2종 면허를 1종 면허로 바꾸러 가는 날이다.
1종면허를 받는 것이 감개 무량한 데에는 슬픈 역사가 있어서다. 그 감정을 이렇게 시로 노래한 일이 있다.

참회록(懺悔錄)

낯선 이 태워 주며 우리 되거나

초면(初面)과 흠뻑 취해 허허롭던 기쁨이
일순의 만용(蠻勇)에
차도
면허도
돈도
그 알량한 체면마저
일순간에 다 날려 버리고
그리고 그리고도
나를 잃었다.
그 대신에
회한(悔恨)과
불편과
위로를 얻었고
가해와 구속과 허영에서 해방되었다지만
용서할 수 없는 슬픈 자아와
밤마다 꿈마다
자결(自決)을 모의한다.
-을해년 잔인한 4월을 보내며

그때 잃은 면허를 다시 따고 지금까지 10년 동안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운전대에 앉아 본 일이 없다. 그래서 1종운전면허가 나에게 특별한 감회를 주는 것이다.

일주일 전에 바꾼 새 차에 소원하던 네비게이션을 어제 구입하여 장착하고 그 안내 따라 면허시험장을 가고 있다.
네비게이션(Navigation)이란 영어로 ‘항공’, ‘항해’란 뜻이지만, 우리가 말하는 네비게이션이란 차량용 항법 시스템을 차량에 적용하도록 설계된 제품을 말한다. 이러한 차량항법을 위해서는 GSP(Global Positioning System)이라는 위성 위치 확인하는 시스템이 필요하여서 그 안테나를 차의 앞 유리창 가에 장착하여야 한다.
GPS는 원래 미 국방성이 군사의 목적을 위하여 개발한 것으로, 24개의 인공위성을 이용하여 날씨의 영향에 구애되지 않고 24시간 동안 지구상의 어떤 물체든지 그 위치, 속도와 시간 측정을 가능하게 해주는 첨단 항법 체계를 말한다.

차가 출발하기 전에 운전자가 네비게이션 스위치를 누르면 GSP를 통하여 인공위성이 24시간 동안 차의 위치를 파악하고, 가고자 하는 목적지의 명칭이나, 주소나, 전화번호(공공건물에 한함)를 입력하고 확인을 누르기만 하면 각종 화살표와 음성으로 길을 안내해 준다.
좌회전 화살표 그림과 함께 '1 km 앞에서 좌회전하세요.', U턴 화살표와 함께 '300m 앞에서 U턴 하세요.' 하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음성으로 목적지까지 친절히 길 안내를 해 준다.
차는 삼각형의 화살표가 되어 네비게이션 액정 화면의 지도 위를 달리는데 목적지까지 가는 도중의 도로명은 물론 주위의 주요 건물명과 목적지의 거리, 남은 거리, 걸리는 시간까지 표시하여 준다.
차를 100km로 몰았더니 '삑 삑' 경고음이 들린다. 과속이란 신호였다.
'앞 500m지점부터 제한 속도 90km입니다.'는 멘트가 있어서 속도를 줄였더니 '딩동'하는 신호음이 들려온다. 속도 감시 카메라 위치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이 GPS가 전국의 모든 속도 감시 카메라의 위치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네비게이션을 처음 사용하는데다가 동작이 민첩하지 못한 나이라서 그냥 지나치거나 좌 우회전을 혼동하면, 하나의 짜증도 구박도 없이 자동으로 수정하여 그곳의 위치를 다시 탐색하고 가는 길을 거기서부터 다시 바로잡아 준다.

가스를 가득 채우고 다니라는 이웃의 말이 생각나서 LPG충전소가 있나 두리번거리다가 '주변검색'에서 '충전소'를 클릭하니까, 그 길을 화살표와 음성으로 거리까지 가르쳐 준다.

'아아, 내가 이렇게 편리한 세상에서 살고 있구나!' 하는 탄성이 나오면서 한편으로는 두려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차를 몰고 서울 서부운전면허장을 가고 있는 것을 인공위성이 저 하늘 위에서 순간순간 놓치지 않고 지키며 살피고 있으니 말이다.

편리한 각종 시설을 갖추고 있는 집이 좋은 집인 것처럼. 이 네비게이션도 길 찾기 등의 기능에다가 동영상을 통한 영화 감상, MP3 듣기, 주소록, 차계부에 게임 기능까지 더하였다.
그 부가기능 중의 하이라이트가 바로 지상파 방송이라는 DMB다. 무료로 볼 수 있는 차량 중심의 방송서비스로 지금은 KBS, MBC, SBS, YTN, CBS 등 7개 방송을 시청할 수 있지만 더 확대될 전망이다.
위성 DMB도 있다. 위성을 지상파 DMB보다 특화된 서비스를 주는 대신 유료다. 실시간 교통정보나, 날씨, 증권 시세 조회 등도 있는데 유료인 모양이다.
우리 아들은 GPS가 내장된 전용 휴대폰을 이용해서 운전하며 목적지까지의 경로를 안내 서비스를 받고 있었는데 적지 않은 돈이 드는 것 같았다.
'내 위치보기'가 건당 150원, ‘지도 이동’ 건당 50원, ‘음성 목적지 검색’ 건당 700원, ‘음성 교통정보 검색’ 건당 900원 등이었다.

어떤 네비게이션은 전국의 모든 산악정보가 탑재되어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정상까지 남은 거리, 현재까지 올라온 높이, 나침반 기능 등이 표시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산악인들이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으며 산에 오르는 날이 머지 않을 것 같다.

버스에서 전화를 주고받는 사람을 보고 놀라던 때가 그리 먼 옛날은 아니었는데, 그때 부자들만의 전용물이었던 핸드폰이 오늘날의 서민까지 확대가 되듯이, 지금은 생소하기만 한 네비게이션과, 이를 소개하고 있는 나의 글이 누구나 다 갖고 있는 것을 말하는 평범한 이야기가 되는 날이 머지않을 것 같다.

전국이 내 네비게이션 속에 있으니. 봄이 좀더 깊어지면 미수(米壽)가 가까운 우리 장모님 모시고, 아내와 함께 저 남쪽 나라로 네비게이션의 안내 따라 벚꽃 구경을 떠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