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샘

한 설문지에 이런 질문들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당신을 흥분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했는가.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해보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앞으로 6개월만 살 수 있는 시한부 인생이라면 무엇을 하겠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내 안에 봉해져 있던 간헐천이 차고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덕구 온천의 발원지인 응봉산은 찰바위로 이루어진 계곡이 장관이다. 아름다운 계곡을 따라 4킬로미터쯤 올라가면 하루에 4000톤의 온천이 솟아오르는 샘의 근원이 있다. 그 물은 직경 50센티미터 정도의 원통형 파이프라인을 통해 산 아래까지 끊임없이 흘러내리는데 데우지 않고 식히지 않은 채 바로 쓸 수가 있다. 덕구 온천의 물은 여러 가지 질병에 효험이 있고 수질이 좋기로도 유명하다. 만약 나에게도 그와 같은 열정의 샘이 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깨끗이 씻어주고, 따스하게 하고, 말끔히 치유할 수있을까.

맹인이면서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헬렌 켈러는 설리반 여사의 헌신적인 지도로 그녀 안에 있었던 깊은 샘을 발견하고 재능을 계발하여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그녀가 비장애인들보다 더 열정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남과는 다른 크기의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 며칠이라도 장애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있다면,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고, 미술관에 가서 화가들이 그려낸 색채의 향연을 누리고, 극장으로 달려가 오페라 가수들의 몸짓과 목소리를 마음껏 감상하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것은 얼마나 소박하고도 격조 높은 선택인가. 무엇인가를 바라고 기대하는 것은 마음속에 이미 그런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비록 그녀는 오래 전에 하늘나라로 돌아갔지만 가슴 가득 가졌던 소망의 횃불은 다른 사람들에게 옮겨져서 머잖아 장애인들의 꿈이 실현될 수있다니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 일인가.

마음속에 좋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뜨거운 샘과 같은 열정을 품는 것이라기에 나도 그런 꿈을 가져보기로 했다. 우선 헬렌 켈러가 꿈꾸던 모든 것들을 이미 누리고 있으니 감사한 일이요, 어쩌면 나는 그녀보다 훨씬 더 큰 꿈을 이룰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가장 흥분시키는 것은, 좋은 글을 쓰고, 특수교사와 상담사로서 준비해온 일을 하며, 예술문화 분야에 아낌없는 지원을 하는 일이다. 그 일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그래서 밤잠을 설쳐가며 시간을 축적하고 일에 집중하고 있다. 5년, 10년, 20년의 시간은 어김없이 그 열매들을 품에 안겨주었다. 이렇게 파이프라인을 묻어가며 샘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머잖아 뜨거운 열정의 샘이 터져 나오는 날이 있을 것이다. 그날에는 벗들을 불러 모아 풍성한 꿈의 열매로 향연을 벌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