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주 전인가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웬 개 한 마리가 다가와서 반가운 시늉을 했다. 내가 개를 키우고 있어서 그런지 냄새를 맡으며 계속해서 꼬리를 쳤다. 유심히 살펴보니 털이 엉키고 마른 풀잎과 풀씨가 몸에 잔뜩 붙어있었다. 개의 종류는 마르티스로 누군가 키우다가 잃어버렸거나 일부러 버린 것 같았다. 아직 버림을 받은 지 오래 되지 않았는지 사람을 바라보는 눈길에 경계심이 없었다.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약속 시간에 쫓겨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차에 올랐다.
하루 내내 그 일을 잊고 지내다 저녁에 집에 들어서는데 집 앞 계단에 아침에 본 그 개가 앉아있었다. 빌라의 3층 꼭대기인 우리 집 앞에 어떻게 와서 앉아있는 것일까. 늘 닫혀있는 공동 주택의 현관문이 열려있는 틈을 타서 올라온 모양인데 나가라고 해도 들은 척을 하지 않았다. 끝까지 버티다 눌러앉겠다는 심산인 듯 했다. 쉽게 나갔으면 금방 잊었을 텐데 아예 자리를 잡고 있으니 자꾸 마음이 불편해졌다. 이미 키우는 개가 있는데 떠돌이 개를 실내에 데려다 키울 수도 없고, 유기견으로 신고를 하자니 그 또한 가여운 일이었다. 먹이를 함부로 줄 수도 없는 것이 제 집인 양 정을 붙일까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식구들이 나가서 어르고 쫓다가 안 되어 애견센타와 구청에 문의를 했지만 근무시간이 끝나서 처리를 할 수가 없다고 하니 그 저녁을 그냥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밖에서 다시 개를 쫓는 소리가 났다. 출근한 경비 아저씨가 녀석을 발견 하고 나가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짖으면서 물려고 하니 함부로 손을 댈 수도 없고 결국 유기견센타에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나는 마음이 아파서 내다볼 수가 없었다. 내가 키우는 개는 애지중지 하면서 버려진 개를 거두어주지 못하는 것이 괴로웠다. 학교에 가다가 개가 끌려가는 것을 본 큰 아이는 하루 종일 그 모습이 눈에 밟혀서 힘들었다고 한다. 남편은 사료라도 먹여 보낼 걸 그랬다며 혀를 찼다. 그러나 어쩌랴.
고양이는 키우다가 집을 나가도 들로 산으로 가서 쉽게 야생으로 돌아간다고 하는데 애완견들은 그런 적응력이 없으니 주인을 잃으면 정말 불쌍한 처지가 되고 만다. 비단 개뿐이 아니고 자연 속에 던져졌을 때 스스로 살아갈 능력이 없게끔 길들여진 생명들은 다 마찬가지다. 그들은 보금자리와 돌보는 손길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가 있으며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한 때는 사랑의 대상이었다가 소외되고 버림을 받는다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리라.
얼마 전 서울역 앞 지하도를 건너다 찬 바닥에 모로 누워 있는 노숙자들을 보았다. 아이들까지 데리고 나온 데리고 나온 노숙자 가족의 모습도 보여서 어디다 눈을 두어야할 지 당황스러웠다. 날씨는 추워지는데 어떻게 그 차디찬 바닥에서 겨울을 날 것인가. 종묘나 탑골공원에 발 딛을 틈 없이 모여 있는 노인과 실업자들의 모습도 충격적이고 위협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북한을 탈출하여 외국에서 떠도는 저 수많은 탈북자들은 또 어찌 할 것인가. 생산성을 가진 청년층보다 도움을 받아야 할 소외계층이 점점 늘어나니 그들을 어떻게 도와야할 지 막막하기만 하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결핍 이후의 사회’에 부모 부양과 자녀 양육에 대해 공포심마저 느끼는 세대를 무조건 매도할 수 없는 것은 젊은 가장들의 실직과 함께 가계 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맞벌이를 해도 기본 생활비를 충당하고 아이들을 키우기가 무척 힘이 든다고 한다. 이제는 뭔가 물질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다른 무엇인가로 풀어가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그다지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노력들을 해보면 어떨까. 아침에 눈뜨면 가족들과 웃으며 눈 마주치기, 적더라도 부모님 용돈 먼저 드리기, 젊은이들은 열심히 사랑하고 둘이서 사이좋게 살기, 둘이서 잘 살다 예쁘고 건강한 아기 낳기, 아침과 저녁 식탁에서 밥 먹으며 신나는 얘기하기, 힘들고 어려울 때 도와 달라고 말하기, 맛있는 것은 옆집과 나눠 먹기, 좋은 일이 있으면 큰 소리로 축하하기, 키우던 개는 끝까지 잘 키우고 산책 하면서 개똥 잘 치우기...
문득, 명랑한 시민 생활이 도통하는 것보다 중요하다던 구상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