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LAY::한국의 아름다움 미술로 읽기 9-(문예비전 31호 수록)

자유로운 마음으로 아름다운 질서를 찾아낸 한국의 꽃담

심 영 옥/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겸임교수

가을이 되면 고궁이나 옛집에서 담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돌담길을 따라 낙엽 밟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진다. 또 어떤 사람은 돌담길에 얽힌 추억담을 늘어놓으며 남모르는 우수에 젖기도 하고, 즐거운 표정을 짓기도 한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돌이나 흙으로 소박하고 질박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담장을 만들어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고 즐겁게 해 주었다. 담장을 쌓는 사람은 돌 크기나 흙 양을 미리 계산하지 않고,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쌓는 동안 질서를 찾아가며 담장의 아름다움을 표현하였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질서가 없는 재료로서 질서를 창출하는 지혜와 멋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원하는 문양을 만들어 낸 것이 바로 꽃담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담장은 한국인의 정서와 잘 어울려 소박하면서도 분방한 듯한 추상적인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 쌓은 돌 사이사이에는 사람들의 추억도 묻어주면서 욕심 없이 쌓은 돌들이 은근한 멋을 느끼게 해 준다.
우리나라의 담장은 욕심 없는 민족성과 은근한 미의식, 해로운 것들로부터의 방어와 공간 구성을 위한 실용성 등 우리 민족의 슬기와 미적 감정을 알게 해 준다. 대체로 담장치레만 보더라도 그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만큼 꽃담은 궁궐과 민가의 얼굴 역할을 했다.
옛 궁궐의 꽃담은 화려한 듯 하지만 야하지 않아 선비 같은 은근한 멋을 풍긴다. 이에 반해 일반가옥의 꽃담은 질박하면서도 분방한 멋을 느끼게 하는데, 깨진 기왓장을 이용하여 투박한 솜씨로 토담에 꾹꾹 박아 놓은 기와담장이나 흙담장, 돌담장 모두 구수한 한국인의 심성이 그대로 배어 있다.
이와 같은 뽐내지 않고 순수한 한국적 아름다움을 간직한 우리의 꽃담을 살펴보는 것은 오색단풍과 잘 어울린 가을 꽃담이 우리의 아름다움을 배가시킬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1) 삼국시대부터 가꿔 온 담장치레

꽃담은 집의 벽이나 담에 여러 가지 무늬를 놓아 장식한 벽면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꽃담의 치장은 돌로 벽면을 쌓거나 흙담에 기왓장으로 원과 곡선을 자유자재로 구사해 무늬를 만들어 넣거나 흙을 구워 전돌을 만들어 담을 만들었다. 꽃담은 크게 벽체와 담장 두 종류로 나누는데, 주로 담장을 지칭하는 말로 많이 쓰인다. 그림과 무늬로 모양을 냈다고 해서 그림담 또는 무늬담이라고도 불린다. 즉 꽃담은 담장을 치레한 것을 말하므로 굳이 꽃담과 담장의 의미를 구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꽃담은 삼국시대부터 이미 시작됐다고 본다. 그 이유는《삼국사기》권33, 옥사(屋舍)에 보면, “진골 계급 주택의 담장은 석회를 발라 꾸미지 못한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왕족인 성골은 석회를 발라 집을 치장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전통이 발전하여 고려시대에는 민가의 꽃담이 궁궐의 꽃담보다 화려했으나, 조선시대에는 검소한 것을 숭상하는 풍조가 생기면서 수수하고 은은한 꽃담이 많아졌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는 경제 사정이 매우 나빠져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소박한 재료만으로도 꽃담을 꾸몄다. 그러나 이런 재료로 담을 쌓더라도 그냥 쌓지 않고 거기에 기와 조각이나 돌이라도 박아 예쁜 무늬를 놓으려고 했다. 시골 집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흙이나 돌, 기와나 그 파편들로 무늬를 만들어 그것을 보며 즐길 줄 아는 높은 미의식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시작하라고 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살아오던 우리 조상들의 미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런 꽃담에는 그 지역의 특성이 잘 나타나 있어 돌이 많은 제주도에는 돌담이 많고, 돌을 구하기 힘든 곳에서는 토담이나 토석담, 그리고 중부지방에는 토석과 전돌로 담을 쌓았다. 흙이 많은 지역에서는 흙담이 주저앉지 않도록 중간 중간에 돌만 박다가 때로는 깨진 기와도 섞어 담을 만들면서 무늬를 넣었다. 그리고 거기에다 여러 가지 의미를 상징하는 글자나 꽃, 동물 등의 무늬를 놓아서 주변의 건축이나 자연과 조화가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토담은 토담대로, 돌각담은 돌각담대로 표정이 있고 그 집 어른의 마음과 개성이 담겨 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꽃담들도 옛 주인들의 멋을 그대로 간직하며 가을이면 어김없이 우리의 감성을 북돋아 주는 것이다.
한옥의 담을 보면 담을 쌓을 당시 그 집안의 사정도 알 수 있다. 마을사람들이 함께 담을 만들며 자식이 부족한 집에는 다산(多産)을 기원하는 포도 무늬를, 즐거움이 가득하길 바라는 집에는 囍(희)자를 넣으면서 그 속에 축복의 마음을 담았다.

2) 자유로운 마음으로 아름다운 질서를 찾아 낸 꽃담

꽃담은 울타리를 치는 것에서 비롯되어 발전하였다. 울타리는 사람이 사는 집 둘레에 둘러친 것으로 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원래 ‘울’은 우주를 의미하여, ‘한울’하면 ‘큰 울’ 즉 끝없는 무한대의 우주를 가리켰다. 그래서 옛날에는 울타리는 하늘의 마음을 나타낸다고 생각하며 만들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그 역할이 바뀌게 되고, 대신 그 담에 우주를 상징하는 해와 달과 별을 무늬 놓아 꾸미기도 했다.
담의 기능은 공간을 나누거나 안과 밖을 구분 짓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전에는 사나운 짐승을 막기 위해서나, 계급사회에서 권위의 상징으로 만들기도 했다.
이 같이 울타리가 집을 보호하는 구실을 하게 되면서 강하면서 튼튼한 담으로 변하였다. 이런 담이 생기면서 점점 복잡하고 많은 사연들이 생겨나게 되고, 그 사연의 내용을 무늬로 표현하거나 다른 의미의 무늬로 부드럽고 아름답게 꾸미려는 노력도 함께 하였다. 이러한 행위는 단순히 담을 보호의 역할보다 대자연 속에서 하늘의 마음을 닮고자 하는 기원의 뜻을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이처럼 한국의 담은 위험으로부터 자신이나 가족을 보호하는 목적보다는 조형적인 목적이 더 컸기 때문에 위협적으로 높게 쌓지 않고 대개 아담하고 아름답게 장식을 하였다.
우리나라 꽃담은 하나의 경계나 단절이 아니라 자유로운 마음으로 자유분방한 재료를 이용하여 친숙하고 정감어린 자연의 일부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인간세계와 자연을 담으로 단절시키지 않고 담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교감하며 아름다운 질서를 찾으려는 의도를 담에 표현한 것이다.
이런 의미는 질박하고 텁텁하게 표현되긴 했지만 역시 서민들의 담장치레에서 더 진하게 느낄 수 있다. 흙으로 쌓아올린 담장에 깨진 사기그릇 파편과 조각난 기왓장을 꾹꾹 눌러 박은 소탈한 치장은 자유로운 추상미까지 느끼게 한다. 뿐만 아니라 화려한 듯하면서 튀지 않고 수수하면서도 정교하여 세련된 아름다움이 있는 궁궐의 꽃담도 현란하지 않게 주변 경관과 어울리도록 은은한 멋을 풍기게 하였다.

돌이든 흙이든 전돌이든 또 다른 어떤 재료든 간에 자유로운 마음으로 장식한 무늬들에 의미를 담고, 모양에도 의미를 담아 질서를 만들어내는 특별한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꽃담을 만들었던 것이다. 꽃담의 무늬는 풍요와 행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많이 담았고, 밝은 황토색 전돌과 그을린 황토색 전돌로 표현한 직선과 점선 무늬 그리고 네모와 벌집을 흉내 낸 육각, 자경전 합각의 세모까지 잘 짜인 천처럼 조화의 극치를 이루어냈다.

3) 의미를 새겨 넣은 궁궐의 꽃담 무늬

우리나라 궁궐의 꽃담은 그 건축의 모양새와 멋들어지게 어울려 후원과 자연, 인공과 자연을 적절히 구분하여 아늑함을 더해주고 인공미를 살려준다. 화려한 무늬로 장식된 꽃담은 주로 궁궐에서 찾을 수 있는데, 직선과 곡선을 치밀하게 구성하고 질서 있게 무늬를 배열하여 미감을 높이는가 하면 왕실을 상징하는 용과 봉황으로 위엄을 갖추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