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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최복희 |
날짜 : 05-05-29 09:02
조회 :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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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갑 님은 자신이 불치의 병인 루게릭 병에 걸린 것을 알고 이태 전 반평생을 걸쳐 사랑해 마지않은 제주도에, 제주도가 아니면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트 갤러리를 하나 만들었다. 그 안에는 자신의 생명과 맞바꾼 작품들이 상설 전시되어 있다.
글- [ 그 섬에 내가 있었네(김영갑) ]에서...
들판에는 내 마음을 사로잡는 풍경이 있습니다.
마음이 불편할 때마다 찾아가 세상을 탓하고
나 자신을 탓합니다. 어린아이처럼 투정도 부려봅니다.
하지만 들판은 한결같이 반갑게 맞아줄 뿐입니다.
그리고 새들을 초대해 노래 부르게 합니다.
.....
그런 들판으로부터 받기만 할 뿐, 나는 단 한 번도
되돌려주지 않았습니다. 들판은 그런 나를 나무라지 않습니다.
대신 언제나 나에게 세상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
끊임없는 비극과 고통 속에서도 풀과 나무들은
비명 한번 내지르지 않고, 불평 한번 없이,
절대로 도망치는 법도 없이 묵묵히 새 삶을 준비합니다.
다가오는 비극과 고통이 그들을 오히려 더 강한 존재로 만들어줍니다.
나에게도 비극과 고통이 닥쳐올 때가 있습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는 것입니다.
이때 들판은 나에게 가르쳐줍니다.
어떻게 하면 시련을 성장의 또 다른 기회로 만들 수 있는지를….
그래서 나는 들판의 친구로 삽니다.
......
행복과 즐거움보다는 불행과 슬픔이 나를 더 성숙하게 만듭니다.
나의 친구, 들판은 나로 하여금 새로운 존재가 되도록 해줍니다.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아주 고요한 몸짓으로,
그렇지만 온몸으로….
산다는 일이 싱거워지면 나는 들녘으로 바다로 나간다.
산다는 것이 싱겁다. 간이 맞지 않는다.
살맛이 나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것은 마음의 장난이다.
이젠 끼니를 걱정하지 않는다. 필름값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형편이 좋아졌다. 그런데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 없다. 병이 깊어지면서 삼 년째 사진을 찍지 못하고 있다. 끼니 걱정 필름 걱정에 우울해하던 그때를, 지금은 다만 그리워할 뿐이다. 온종일 들녘을 헤매 다니고, 새벽까지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던 춥고 배고팠던 그때가 간절히 그립다.
지금은 사라진 제주의 평화와 고요가 내 사진 안에 있다.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는 나는 그 사진들 속에서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얻는다.
아름다운 세상을, 아름다운 삶을 여한 없이 보고 느꼈다. 이제 그 아름다움이 내 영혼을 평화롭게 해줄 거라고 믿는다. 아름다움을 통해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간직한 지금, 나의 하루는 평화롭다.
작고 하찮은 것은 버리기가 쉽다. 흩어진 천조각들을 모아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바느질한다. 그것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상큼해진다. 예쁜 조끼나 저고리 등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만든다. 그리고 감물로 염색을 한다. 완성된 옷을 입고 다닐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설렌다.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는 그 가슴 설렘을 기대하며 밤을 새워 바느질을 한다.
장마철이면 안개 짙은 날 치자꽃 향기에 취해 마시는 커피 맛은 유별나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날 보름달을 보며 마시는 차 맛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나만의 즐거움이다.
제주도에 정착하게 된 것은 섬에서 나만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뭍의 것들이기에 일상적인 풍경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내 사진에 표현하고 싶은 주제(마음)가 다르기 때문이다.
필름을 사고 나면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이고 보니 늘 혼자 지내는 처지다. 그래서 가끔 오해를 사는 경우도 있다. 어떤 이는 섬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잘난 척한다고 타박을 하고, 또 어떤 이는 뭍의 것이라 저희들하고만 어울린다고 손가락질을 한다.
사진은 이미지의 미라이다. 내가 원하는 사진은 박제된 동물이나 새가 아니다 새의 생김새나 크기를 설명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다. 새가 숲에서 즐겁게 노래하는 모습, 무리끼리 지저귀는 소리에 숲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그런 분위기에 빠져들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나는 그런 숲의 분위기를 사진으로 표현하려 한다.
아름다움은 발견하는 자의 몫
- 조금은 더 머물러도 좋을 세상 -
... 나의 사진 속에는 비틀거리며 흘려보낸 내 젊음의 흔적들이
비늘처럼 붙어 있습니다. 기쁨과 슬픔, 좌절, 방황, 분노…
내 사진은 내 삶과 영혼의 기록입니다.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제주의 아름다움을 모아 폐교 운동장을 정원으로 가꾸었다. 나무와 억새, 야생초를 옮겨 심고, 밭가에 버려진 돌을 실어 와서 돌담을 쌓았다. 꾸미지 않은 듯 꾸며서 제주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정원의 모습이었다.
< 겅북 영천에서 천연 염색을 하는 어느 지인의 편지>
김영갑, 이 문디 자슥!
보고 오면 속 터져서 다시 안 봐야지….
저 죽을 줄 모르고 왜 자꾸 일만 벌이노!
몸뚱어리, 지금 이 상황에 몸뚱어리보다 더 중요한 게 뭐 있다고 자구 부수고 옮기고 그러냔 말이다.
그놈의 갤러리 확 태워버렸으면 싶다. 내 동생 같으면 장작개비로 늘씬하게 패주겠구만!
영갑이!
아무래도 죽고 싶어 환장했다 싶은 맘밖에 안 듭니다. 내 생각만 그런 게 아니라 주변 사람 모두 다 그럴 겁니다. 지금은 최고로 잘 먹고, 아니 몸뚱어리에게 잘 먹이고 천하태평 같은 마음으로 살아도 위태위태한데 어쩌자고 온몸, 옴 마음 다 그 집덩어리에다 쏟아붓고 그런답니까?
멀쩡한 사람도 집 한 채 짓고 나면 심신이 지치는데 도대체 댁은 무슨 배짱이요? 힘들다는 말 듣고 찾아간 사람마다 “진짜 힘들겠다. 저러면 못 고친다. 좀 말려달라.” 한결같은 소리를 합니다. “밥 해주고 신변 챙겨줄 사람을 붙여줄 수도 있고, 쌀 살 돈이 없다면 자존심 안 건드리고 도와줄 수 있지만, 저렇게 벌려서 일하는 상황에선 앞이 안 보인다” 다들 그럽니다.
왜 그리 갤러리에 집착하는지, 몸뚱어리 좋아지면 저절로 될 일들을, 왜 계속 자신을 혹사시키면서 그러지요? 솔직히 답을 듣고 싶어 제주에 한번 내려갈까 벼르고 있습니다. 제발 십만 원, 만 원… 이제 다른 데 쓰면 안 됩니다. 여태까지 몸뚱어리 혹사한 것도 모자라 지금도 그러면, 당신을 아끼고 인간으로 사랑하는 우리는 정말 슬퍼집니다.
영갑 총각!
지금 무슨 생각하며 살지요? 브레이크 안 밟고 운전하는 것 같은 이 상황, 그리고 그 한계를 보여주는 건 모두에게 고문입니다.
- 2003년 4월에서 5월까지 생각, 생각하다 쓴 글.
나에게 내일이란 기약할 수 없는 시간이다.
허락된 것은 오늘 하루, 그 하루를 평화롭게 보낼 수 있으면 된다.
병원에서 루게릭 병 진단을 받고 내 생의 유효 기간이 정해졌을 때, 머릿속에 맨 처음 떠오른 것은 그동안 찍어둔 사진과 필름들이었다. 내가 죽고 나면 그것들을 나만큼 사랑하고 아껴줄 사람이 어디 있을까.
밤이 되면 갤러리는 적막하다. 적막함을 즐기며 홀로 정원을 걷는다. 몸이 피곤해지면 편안한 상태로 침대에 눕는다. 건강이 나빠지지 않았다면 밤늦도록 사진 작업에 매달렸을 테지만 이젠 한가로운 일상에 익숙해졌다. 루게릭 병이 내게 준 선물이다
나는 먹을 복이 없다. 먹을 것이 넘쳐나도 이제는 먹을 수가 없다. 섬에서 사는 동안 끼니 문제는 나를 내내 괴롭혔다. 건강할 땐 없어서 못 먹었고 지금은 있어도 먹지 못한다. 날씨 따라 기분 따라 먹고 싶은 게 많아도 이제는 코로 먹고 눈으로 먹어야 한다. 건강할 때 맛있게 먹었던 기억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몸은 점점 굳어가도 해야 할 무엇인가가 있는 하루는 절망적이지 않다.
설레는 가슴으로 내일을 기다리면 하루가 편안하게 흘러간다.
... 기적은 내 안에서 일어난다.
내 안에 있는 생명의 기운을, 희망의 끈을 나는 놓지 않는다. 사람의 능력 밖의 세계를 나는 믿는다.
갤러리 둘러보기(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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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안 |
04-11-30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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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복희 선생님, 이제 제대로 잘 보입니다. 그림이 너무 좋습니다. 인터넷 매체는 사진이나 그림이 있어야 이해력이나 설득력이 더 있는 듯 합니다. 잘 감상했습니다. -[05/29]<br>- <hr size=1 color=#eeeeee width=95%>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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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04-11-30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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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과사의 갈림길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예술의 세계를 엮어가신 김영갑님께 찬사를드리며, 여기 글과 좋은 그림 올려주신 최복희 선생님 너무나 고맙습니다. 날씨는 점점 더워져 가건만 시원한 글 그림 대하니 마음까지 새로워집니다. 감사합니다. -[05/29-19:26]<br>- <hr size=1 color=#eeeeee width=95%>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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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04-11-30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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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김영갑님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05/31-22:06]<br>- <hr size=1 color=#eeeeee width=95%>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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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림 |
04-11-30 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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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복희 선생님, 오랜만입니다. 일요일 일하는 곳에서 잠시 짬을 내어 선생님의 마음자취를 눈으로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바쁜 중에 여유를 느꼈습니다. -[06/05-11:11]<br>-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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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복희 |
04-11-30 08: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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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홈을 방문하는 분들과 함께 보고 싶어 '다래마을'카페에서 퍼다 옮긴 그림입니다.다시 지위지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먼저 그림은 왜 다운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두 팔과 두 다리가 성한 나는 위의 갤러리를 감상하면서 행복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합니다. -[05/29-09:18]<br>- <hr size=1 color=#eeeeee width=95%>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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