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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박하향 |
날짜 : 03-11-25 18:35
조회 : 2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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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송정 푸른 솔 같은 김학철 선생의 삶
-<우렁이 속 같은 세상>을 읽고-
말로만 들어왔던 김학철 선생의 글을 처음으로 읽었다.
산문집 <우렁이 속 같은 세상>을 읽으면서 과연 이 분의 나이가 85세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유인즉슨 시종일관 어느 한편의 예외도 없이 글 전체에 노익장의 관록보다는 오히려 탱글탱글한 젊은 기운과 싱싱한 겨레사랑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평등한 뽀뽀'-외다리 할아버지(항일투쟁으로 한쪽다리를 잃었다)에게 다가와 한쪽다리를 들고 입을 맞춘다는 귀염둥이 손녀의 이야기.
'오후 2시의 사랑'-황혼의 사랑이 아니라 오후 2시의 사랑으로 비유한 부부애.
우스꽝스러운 나팔수'-선생이 신봉하던 사회주의 사상의 모순에 대한 고백.
'독립운동사의 과대망상증'-항일무장투쟁 사료의 엄청난 부풀리기를 현장의 산증인으로 지적. 등등...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조국의 광복과 조선조 봉건사회의 질곡과 모순을 함께 해결코자 고뇌했던 일본유학생들이나 이 땅의 젊은 지식인들은 대개는 유행처럼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 되었다. 당시만 해도 유럽이나 미국의 자본주의는 너무나 멀었고, '칼 맑스'로 대변되는 사회주의 사상은 거의 유일한 대안처럼 보였다. 짜르 체제의 종말을 가져왔던 러시아혁명은 전제군주정치나 봉건제도의 모순을 인민의 힘으로 해결한 사회주의 혁명의 유일한 교과서처럼 비쳐졌을 것이다.
김학철 선생도 조선의용단의 일원으로 중국 땅에서 항일무장투쟁에 헌신하면서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하였다. 해방 후 월북, 북한에서의 인민일보 기자, 중국 망명, 문화혁명 당시 반동분자로 투옥, 10년 수감생활 후 복권 등...격동의 세월동안 한번도 소외(?)받지 않고 철저히 고통의 중심에 서 있었다. 우리는 곧잘 일제 치하에서 조국의 광복을 위해 헌신한 선열 중에서 만약 어느 분의 사상이 사회주의였다면 그 분의 고귀한 희생은 아랑곳없이 간단히 고개를 돌려 외면을 해 왔다. 이제서야 이런 분들의 희생에 대한 평가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은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산문집에서 선생의 철학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 중에 가슴에 메아리로 남는 몇 구절을 옮겨본다.
'...편안히 살려거든 불의에 외면을 하라
그러나 사람답게 살려거든 불의에 도전을 하라.
나의 이 모토의 유효기간은 죽는 날까지다.'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한 국내의 관심을 촉구하면서,
'..........무자비한 억압이 무덤처럼 조용한 땅을 만들고 있는데도,
우리더러 풍월이나 읊조리고 있으란 말인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 갈 길을 가야한다. 남들이야 무어라든간에.....'
책의 속표지에 나와있는 선생의 약력을 옮겨보면,
선생은 1916년 함경남도 원산태생으로 보성고보 재학 중 상하이로 건너가서,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한 후 조선의용대에 입대했다, 1941년 태항산 전투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 부상으로 포로가 되어 일본 나가사끼 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1945년 조선독립동맹에 참여했고, 1946년 월북하여 <로동신문> 기자로 일하다가 1950년 주욱으로 망명하였다. 문화대혁명 와중에 <20세기의 신화> 필화사건으로 10년간 옥고. 1980년 복권되어 창작활동 재개하고, 현재 중국 연길시에 거주.
장편소설 <격정시대>, <20세기의 신화>, <해란강아 말하라>, 소설집 <무명소졸>,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 등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 분을 키운 것은 분명 자유 민주주의나 자본주의가 아니라 큰 나무로 키우기 위해 온갖 박해를 가하고도 끝끝내 살려주었던 사회주의 사상이었다는 점이다.
오! 미워할 수 없는 사회주의여!!! 하, 하, 하...
나라 밖에 있는 조선 토종 소나무, '일송정 푸른 솔'을 연상케 하는 팔순의 지성이 살아있고,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크나큰 행운처럼 느껴진다. 그 동안 이 핑계 저 핑계로 밀어두었던 김학철 선생의 노작들을 차근차근 읽어보아야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기자기하고 소담스런 이야기들로 채워지던 이 수필사이트가 어느새 비방과 허욕이 난무하는 공간으로 변한 것이 안타깝다.
수필을 쓰거나 읽는다는 것은 결국 우리들 각자의 마음거울을 닦는 일이다.
자기 거울은 물론 남의 거울까지 흐리게 하는 일은 제발 삼가고 삶의 향기를 나누던 이 샘이 하루빨리 본래의 모습을 찾는데 우리 모두의 지혜와 성원을 보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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