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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 로렌스 《 채털리 부인의 사랑》/ 김옥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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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운영자 |
날짜 : 03-11-25 19:58
조회 : 2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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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따뜻한 피의 교감
_ D.H. 로렌스 《 채털리 부인의 사랑》_
김 옥 분
진정한 삶의 가치를 밝힌 육체적 화합
대부분 여자들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행위인 성 문제에 접근하면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거나 난처한 지경에 빠져 수치감마저 느낀다. 성행위를 은밀한 어둠 속에 가두어 가십이나 추한 농담의 소재로 삼는 사회적인 습성 때문일 것이다. 여성들에게 끊임없는 정신작용을 통해 성은 불결하고 두려운 것으로 여기게 하고 남성들에게는 성 지식을 인식시켜 여성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한 남근적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로렌스는 여성의 관능적 행복인 오르가즘을《채털리 부인의 사랑 》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그는 성이 '남성의 지배와 여성의 복종'이 아니라 서로의 애정을 평등하게 실현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즉 "성은 정신과 육체의 조화 가운데 있고, 둘 간에 자연스런 균형이 있고, 정신과 육체가 서로를 존중 할 때 삶이 살만하다"고 말한다.
데이비드 허버트라는 이름이 싫어서 D.H. 로렌스라고 한 그는 섹스를 지나치게 강조해서 비판을 받지만 당대의 물질 문명은 인간마저 사물화시키는 소유지향성을 극복코자 노력한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는 일생동안 성적 관계에 기초한 진실한 남녀 관계의 삶을 탐험하면서 사상적 변화와 발전을 도모했다. 처음에는 남성우위의 이상향을 건설하려고《아론의 지팡이》《캥거루》《날개돋친 뱀》을 통해 시도했지만, 참다운 창조적인 삶을 이끌수 없다고 인정하기에 이른다.
대담한 성애 묘사 때문에 타이피스트가 정서하기를 거부한《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로렌스의 말년에 쓴 작품으로 남성우위에서 벗어나 남녀간의 따뜻한 화합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가치라고 역설한다.
-우리들의 시대는 본질적으로 비극의 시대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시대를 비극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미래를 향하는 평탄한 길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길로 돌아가기도 하고 장애물을 넘어 기어오르기도 한다. 어떠한 재난이 닥치더라도 우리는 살아남아야 한다. 이것이 대체로 콘스탄스 채털리의 경우였다.-
이 작품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콘스탄스 채털리(코니)는 전쟁의 부상으로 하반신 불구가 된 남편(클리포드 채털리)과의 결혼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녀의 타고난 용모와 성격은 전통적인 여성의 모습에 가까웠지만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유스러운 환경에서 반인습적인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그녀들은 남자들과 대등한 위치에서 생활했다....... 완전히 자유였다. 자유! 그것은 참으로 위대한 말이었다.-
이미 결혼전에 독일에서 자유연애를 경험하면서 마음에 드는 남자들에게 선물처럼 베풀 듯이 성관계를 가졌다. 그녀는 성행위에서 기쁨도 흥미도 느끼지 못하면서 주위의 사회풍조에 휩쓸렸다.
그런 자유연애를 거치고 자기보다 상류계급인 클리포드와 결혼을 하지만 한달 뒤에 남편은 전쟁에 나가 하반신이 불구가 되어 돌아온다. 그 이후로 그녀는 남편을 도와 문필가로 명성을 떨치게 하지만 자신은 반처녀가 되어 시들해져 가는 몸뚱이를 쳐다보며 생명력을 상실해간다.
클리포드는 자기 계급이외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나 거만하게 굴었다. 아내와 성관계를 맺을 수 없는 남편으로서의 무능에 대한 소산처럼 그가 쓰는 소설은 잘 팔렸지만 장인의 입을 빌리자면 "텅 비었어."로 표현된다. 당시 지식인들의 공허한 삶을 암시한 것으로 구체적인 현실에서 인간이 몸으로 느끼는 진실을 쓰기보다는 머리에서만 나온 관념 속에서 글을 썼다는 것이다.
로렌스는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서 진실한 감정 없이 이루어진 연애는 공허할 뿐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코니가 처녀시절의 성행위와 날이 갈수록 남편의 협소해 가는 인생관을 받아들이며 고독을 절감 할 때 접근해 온 마이클리스와의 만남에서 밝혀진다.
클리포드와는 달리 자신에 대한 환상에 빠져 있지 않고 허풍스럽지도 않은 마이클리스의 반사회적인 모습에 매력과 순수성을 느끼고 성관계를 갖는다. 그러나 그의 남성 우월적이고 수동적인 태도에 실망한 코니는 우울증에 빠진다.
-공허! 인생의 커다란 공허를 감수한다는 것은 삶의 종말처럼 느껴졌다. 분주하고 중요한 자질구레한 일들이 쌓이고 합쳐져 공허의 총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래그비 저택에서 남편과의 숨막히는 생활로 코니는 점점 더 쓸쓸해지는 나날을 보낸다. 그럴 때마다 숲이 가진 생명력은 코니의 숨통을 트여준다. 꽃이 피고 지고 열매를 맺으며 동물들이 새끼를 품고 보호하는 모습에서 자연의 섭리를 느끼고 동경한다.
-그는 등을 구부리고 거품이인 대야 물 속에 머리를 담그고 기묘하게 흔들고 있었다. 그것은 족제비가 물장난을 하듯 재빠르고 뛰어난 솜씨였으며, 몹시 고독해 보였다.........자기도 모르게 그녀는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결국 한 남자가 몸을 씻고 있을 뿐이다. 극히 평범한 일이 아니겠는가. 사실이 그러했다. 그런데도 그 광경은 그녀의 눈에 묘하게 새겨져서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몸의 한가운데를 꿰뚫린 듯한 기분이었다................코니는 눈으로 들어온 그 충격을 자궁 속에서 받았다. 그것은 육체의 내부에 머물렀다.-
관념적 성의식을 타파한 로렌스의 성애 묘사
남편의 심부름으로 간 숲 속의 오두막에서 산지기 멜러스의 목욕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의 노동자다운 신체적 건강함과 성적능력을 갖춘 원시적인 모습에서 본능적인 생명력과 정감을 눈으로 보고 자궁에서 인지해 몸 가운데를 치는 것이라 한다.
광부 집안에서 태어난 로렌스는 생명력을 상실한 중산층의 경박한 거짓 자부심을 늘 경계했으며 그의 계층이 가지고 있는 열정적인 의식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의미에서 멜러스는 로렌스의 진정한 대변자인 셈이다.
채털리가의 산지기인 멜러스는 원래 총명한 젊은이였지만 정신적인 관계만을 요구하는 여성들과 색녀인 아내 때문에 겪은 깊은 상처와 문명사회의 환멸을 느끼면서 오로지 고독만을 바라게 되었다. 그는 인텔리적인 박식과 세상의 본질을 훤히 알고 있는 듯한 달관적인 자로 마지막 피난처를 숲 속으로 정했지만 코니와의 만남으로 세상에 대한 희망을 새로이 갖게 된다.
그들은 숲속 오두막에서 자연을 통하여 생명의 신비에 공감하듯 결합한다. 코니는 멜러스와의 관계에서 생명을 잉태하고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하디의 《테스》가 아주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동기는 분명치 않으나 로렌스의 여주인공들은 코니를 비롯해 인생의 방향을 자기 자신들의 선택과 결정에 따르는 것을 보여준다.
클리포드는 자식의 필요성을 느끼는 코니에게 아이를 물건 취급하며 '그것'으로 일컫고, 다른 남자의 아이라도 자기 집에서 키우면 자기 것이라는 소유 욕망을 나타낸다. 그는 피의 생명창조를 무시하며 성은 단순한 우연이거나 종속적인 것으로 우연한 성관계는 같이 사는 오랜 세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클리포드를 토지자본의 구귀족, 현대작가, 광부업주로서의 산업자본가 등으로 다양하게 변모시키며 인간성이 박탈된 성격파탄자로 그렸던 작가의 의도는 도전이다. 그는 하나의 살아있는 인물이기보다 당시 영국 지배층의 변모를 보여주며 그 가치들을 폭로하기 위한 도구적인 인물로 설정되었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서의 성행위 묘사를 당시 형사 재판소의 검사는 발작이라고 주장했으나 작가는 거침없는 성애 묘사를 통해 관념적인 성의식을 타파하고 성을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여기는 대신 가치 있고 소중한 것으로 여길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코니와 멜러스가 계급적 차이를 넘어 완전한 결합을 위한 준비로 서로 헤어져 있어야 할 불모의 겨울을 견디고 봄에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는 모습은 희망을 말한다.
그것은 로맨스적 도피가 아닌 현대적인 문명과 인습, 그리고 낡은 윤리의식까지도 극복하는 것이다. 그 결합은 인간성 회복을 위해 세상과 싸워 이기는 것이지 '성' 그 자체이거나 성의 환상이라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성문제는 아주 단순하면서 복잡 미묘하다. 인간 본연의 자세에서 성이란 존재는 의식적인 받아들임과 조정의 문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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