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대학교 적 친구들과 만나 바람의 파이터를 보고 왔습니다.
그냥 만나 식사만 하기보다는 우리도 문화생활 좀 하자고 해서
한 친구가 여러 개의 제목 중 골라서 표를 산 게 그거였습니다.

젊은이들로 차있는 틈에 앉아서 영화를 보면서
뚜렷한 주제 의식이 없는 것 같아 엉성한 구석이 있구나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참 선이 굵은 젊은 템포의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만화를 영화화 했다는 데 흥미가 있었고
최배달이란 인물의 삶에서 자긍심과 민족혼 같은 게 아쉬운 점으로
지적되면서도 끊임없는 힘의 수련과정을 보며
인간 극복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느껴졌고
작게나마 어느 부분에선 의리를 지켜보려 애쓰는 주인공 최배달의
양심과 뚝심을 보며 영화를 만들며 노린 게 그 작은 것에 나타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좀처럼 영화를 보지 않다가 보아서 그런지
영화 자체는 잘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기자가 쓴 평이 내 생각과도 일치하는 점이 많기에 옮겨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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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불평]서커스가 된 ‘소뿔꺾기’

<scRIPT language=Javascript src="http://img-media.hanmail.net/_ams/news/culture/03I31.js"></scRIPT> 힘자랑과 의협심의 경계는 어디인가. 깡패의 공명심과 무도인의 윤리는 어떻게 다른가. 양윤호 감독의 ‘바람의 파이터’의 주인공은 최배달(본명 최영의, 1922∼94)이다. 일제시대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어 일본으로 밀항했지만 일본인들의 멸시를 받았다. 스스로를 연마해 강해진 끝에 세계 전역의 고수와 대결해 언제나 승리했다. 60마리의 황소와 맞서 47마리의 뿔을 꺾어냈다는 전설 같은 일화도 들린다. 영화는 “나는 싸우는 것이 두렵다. 맞는 것이 두렵고, 지는 것이 두렵다”는 최배달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문제는 언제나 ‘왜?’다. 그렇게 싸우는 것을 두려워한 사람이 왜 끝없이 싸우려 드는가. 방학기의 원작 만화를 읽은 사람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영화를 통해 최배달이란 인물을 처음 접한 사람에게 그는 무지막지한 힘자랑을 하고 싶어 안달난 사람처럼 보일 뿐이다. 영화 속 최배달이 싸워야 하는 그럴듯한 이유를 하나씩 짚어보자. 혹시 ‘산이 거기 있으니 산에 오른다’는 산악인들의 오랜 현답을 빌려 ‘고수가 거기 있으니 그와 싸운다’고 대답하려 한다면 오산이다. 등산은 웅대한 자연에 대한 도전정신, 침묵 속에 펼쳐지는 자기극복의 과정이다. 하지만 최배달은 기껏해야 한 판의 두목을 깨면 다음 판으로 넘어가 더 강한 적을 이겨야 하는 컴퓨터 게임의 캐릭터처럼 보일 뿐이다. 게임 속 캐릭터는 게이머의 손에 의해 조작될 뿐 아무런 자의식이 없다. 감정을 가진 로봇을 다룬 영화에도 익숙해진 판에 카메라 뒤의 감독이 시키는 대로 주먹만 휘둘러대는 텅 빈 인간에 감동받을 관객은 많지 않을 듯하다. 만일 한번도 지지 않았다는 최배달의 삶을 통해 시대의 왜소해진 남성성을 일깨우려는 의도였다면 더욱 한심한 일이다. 물리력으로 타인을 제압하고, 패자가 승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것에서 기쁨을 찾는 일은 전근대 사회, 혹은 미성년의 세계에나 통하는 미덕이다. 동네 골목대장, 영역 확장을 꾀하는 조폭이 아니라면, 물리적 폭력에 기반한 남성성을 신봉하는 일은 시대착오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마땅하다. 마지막으로 추정되는 이유는 민족주의에 기반한 자존심과 분노다. 극중 최배달의 스승인 범수는 일본인들에게 처참한 죽음을 당한다. 그 뒤로 최배달은 산속으로 들어가 일종의 ‘지옥훈련’을 거친다. 일본인들에 대한 복수심, 한민족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 일본인들과 싸운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정작 최배달이 결투 중 한민족으로서의 자의식을 내비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일본 무술인을 이기거나 소뿔을 꺾음으로써 한민족의 우수성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럽다. 그런 일은 개인의 완력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줄 뿐 민족의 우수성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결국 영화 ‘바람의 파이터’에서는 원작 만화가 보여줬던 최배달의 자기 한계 극복 과정과 고뇌는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아무리 무도인의 윤리라고 포장해도 ‘바람의 파이터’가 보여주는 최배달의 마음가짐은 동네 건달의 힘자랑과 공명심이다. 그것은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를 할 때나 발휘해야 할 미덕이다. 〈백승찬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