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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의 에밀
강범우(문학평론가 ․ 수필가)
라틴어에, 책을 읽는 것을 ‘legere'라고 한다. legere의 어원(語原)은 ‘거둔다’ ‘수학한다’는 뜻이다.
좋은 책을 읽고, 그 가운데서 인간정신 속에 싹튼 가장 아름다운 관념들을,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가장 아름다운 대화들을 거두어내는 일은 책을 선택하는데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하늘에 있는 별보다도 더 많은 이 세상의 책들 중에서 꼭 한 권의 책을 권해달라는 편집자의 청(請)이다. 참으로 어려운 이야기다. A.토인비가 <세계사>에서 한 말이다. “인간의 지성(知性)은 전경적(全景的)으로 총체를 이해해낼 능력이 없다. 선택은 불가피하며, 그것은 또한 본의 아니게 자의적인 것이 되어 있다. 선택할 정보의 양(量)이 크면 클수록 조사자의 선택은 더욱 논란의 여지를 남기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꼭 한 권의 책을 권해 달라고 한다면, 18세기의 최대의 사상가이며, 문학인 루소(J. J. Rousseau)의 <에밀>(Emile)을 권하고 싶다.
18세기에 생산된 수 많은 책 가운데 단 한 권의 책을 고른다면, 아무래도 루소의 <사회계약론>이나 <에밀>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세간에 이 책을 흔히 <교육서>라고 하는데, 오히려 이 책은 위대한 <인간론(人間論)>이며, <문학서>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전편을 통하여 시인적(詩人的)인 격렬한 감정과 상상에 불타는 작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루소는 프랑스의 쥬네브에서 태어난 18세기 계몽문화의 선구자이며, 낭만주의 사상을 불러일으킨 선구자다.
일찍 어머니와 사별하고 아버지 밑에서 자라나다, 16세 때에 파리로 나와 바렌스(F. Warens)부인을 만나 카돌릭으로 개종했다. 29세 될 때까지 이 부인의 신세를 지며 지냈다. 그 사이에 프랑스의 대표적인 계몽주의자이며 철학자인 볼테이르(Voltaire), 사상가이며 문학인 디드로(Diderot) 등 과 사귀면 <백과사전> 편찬에 가담했다.
1749년 친구 디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 그를 만나러 가는 도중에 갑자기 소나기를 만나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을 때, 비에 젖은 낡은 신문에 <학문과 예술이 인간의 심성에 영향을 미쳤는가>라는 학술논문 현상광고를 보고 새로운 충격을 받았다.
다음해인 1750년에 <과학 및 예술에 대한 논쟁>이 아카데미에 당선되면서 활발한 활동이 시작되었다.
1755년에 제2의 학술논문 <인간 불평등 기원론>이 발표되었고 1762년에 불후의 명저 <사회계약론(Coutrat Social)>과 여기에 소개되는 교육소설 <에밀>이 나왔다.
<사회계약론>은 그 뒤 프랑스혁명의 지도원리서(指導原理書)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 정치론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그중, <에밀>은 발간된 지 20일 만에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당시 고등법원은 체포령을 내렸다. 그는 피신하여 도이취에 넘어 갔다가 다시 런던으로 옮겼다. 거기에서 역사가이며 철학자 흄(D. Hume)을 만나게 되어 그의 후원을 받게 된다. 1766년에는 그의 자전적 소설 <참회록>을 기고했다. 1770년에 다시 파리에 돌아와 8년을 지내는 사이에 <참회록>이 탈고 되었다. 1778년 7월 2일 아침 갑자기 파란 많은 생애의 막을 내렸다.
그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란 직관으로 글을 썼다. 그릇된 사회적 통념을 혐오하고 속된 제도를 무찌르는데 전 생애를 바쳤다. 자연을 옆에 하며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다.
<에밀>은 전 5편으로 구성되었다. 이 책은 그의 <참회록> 제8권에서 말한 것과 같이, 20년 간의 사색과 3년에 걸쳐 씌여진 노작(勞作)이다. 제1편에서는, 어린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한 사람의 이상적인 교사가 지정되어 있다. 그리하여 그후 <에밀>(주인공 이름)이 25세가 되기까지 더 나아가서는 그의 한 생애를 그 한사람의 제자를 위해 교육을 전심한다는 조건이 먼저 약속되어 있다. 다음으로 <에밀>의 출생에서부터 5세까지, 신체의 단련을 중심으로 성장케 하는 이상적인 교육방법이 제시되어 있다.
제2편에서는 <에밀>이 5세에서 12세까지 감각기관을 통해 받아가져야 할 교육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제3편에서는 <소유와 노동에 관한> 루소의 이상이 제시되어 있다. 특히 12세에서부터 15세까지 사이에는 직업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제4편에서는 15세에서부터 20세까지의 교육내용이 담겨져 있다. 여기에서는 도덕교육과 신앙교육이 전개된다. 그의 종교관은 <사보아 사제의 신앙고백>이라는 형식을 빌어 서술되어 있다. 파리의 고등법원에 의해 이 책이 판금과 구속이 되는 직접적 동기가 된 부분이다.
제5편은 장차 <에밀>의 결혼 상대자가 될 아가씨, <쏘피>가 받아야 할 여성교육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다. 22세의 결혼 전인 <에밀>은 장차 맞이할 결혼 상대자 <쏘피>를 동반하고 여러 나라를 여행한다. 여러 나라의 정부조직, 공중도덕, 민족관에 대하여 보고, 듣고, 연구한다.
여기에서 루소는 교육에 있어서 여성 교육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했다. 자녀들의 교육에 있어서 남성보다 여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것은 성장기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어머니와 같이 있게 된 생물학적 근본원리를 발견 지적했다. 하나님이 남자보다 여자에게 교육의 책임이 더 있게 만든 것은, 아이의 귀중한 식량인 젖(乳房)을 두 개 다 어머니에게 주었다는 것부터가 여성은 어린 아이의 교육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았다고 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중요한 아기의 식량을 하나는 아버지에게 또 다른 하나는 어머니에게 주었을 것이 아닌가? 고 반문하고 있다.
자연은 아이들이 어른이 되기 전에 아이들이기를 바란다. 이 자연의 순서를 그르치게 되면, 아이들은 부패해서 문드러지는 과실(果實)이 되고 말 뿐이라고 했다.
사회가 갖고 있는 권위, 편견, 필요성, 습관, 습속, 제도들이 아이들의 내적세계(內的世界)로서의 자연을 파괴한다. 좋은 교육은 이 악교육(惡敎育)을 바로잡는데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교육목적은 어떤 일정한 경우에 적용되도록 강제되고 왜곡된 인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속에 살아있으면서도 사회에 의해 비뚤어지지 않는 자연그대로의 인간, 자연인을 만드는데 있다고 했다. 여기에 참다운 의미에서의 자유와 행복이 있고, 유덕한 인간이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그는 ‘남여우월론’이나 무차별적인 ‘남녀평등론’에는 반대했다. 성(性)을 바탕으로한 성질의 상위를 강조했다. 이 성질은 사회의 진화단계에 따라 남성중심, 가정중심적 교육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의 원리는 자연에 의해서 직접 부여된 것이므로, 교육은 자연이 가르치는 방법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자연주의 교육론을 제창했다.
교사의 역할에 대하여서는 매우 소극적인 교육을 주장했다. 교사의 역할은 학생에게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알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게 하여 진리를 발견케 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주입식 교육의 폐단을 극구 반대했다.
그의 교육방법은 자연주의의 교육이다. 교육의 원리는 자연에 의하여 부여된 것인만큼 “자연의 법칙에 거역하지 말라” “자연의 교육에 따라서 교육시키라”고 주장하고 잇다.
<에밀>에서 보여진 바와 같이 루소의 <교육론>은 아동 중심의 교육론이다.
인생의 모든 시절, 모든 생태에는 각기 고유의 완성과 성숙이 있다. 따라서 미래의 행복을 위해 어린이의 현재 행복을 희생시키는 교육을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상과 같은 루소의 사상형성을 이루기까지 영향을 준 사상가로서는 플라톤, 부르다아크, 세네카, 몽테뉴, 로크 등을 들 수 있겠다. 그 중에서도 특히 ‘몽테뉴’나 ‘로크’의 교육사상을 많이 받았다고 볼 수 있겠다.
루소 연구가 ‘지막크’의 주장을 보면 <에밀>의 제2편의 <체육에 대하여>서는 ‘몽테뉴’를 세 번이나 암시하고 있다고 했다. 상세히 검토해 보면 ‘로크’의 <교육론>에도 ‘몽테뉴’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몽테뉴 연구가 뷜레의 주장을 빌린다면, “교육사상에 있어서는 로크나 루소는 모두 몽테뉴가 만들어낸 자식들이기 때문에, 이 세 사람이 공통성이 많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루소는 그의 출세작 <과학 및 문예에 대한 논쟁>에서부터 <인간불평등기원론>, <에밀>에 이르기까지 몽테뉴를 자주 인용하고 있다. 그 외에도 후기의 작으로 <참회록>, <대화>,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등에서도 군데군데 몽테뉴적인 사상적 흔적이 보인다. 더욱이 <에밀>에서 몽테뉴적 사상적 흔적이 짙게 보이는 것은 뛰어난 문장력에서 더욱 그렇다. 표현의 다채로움, 박력있는 표현력 등은 실로 대단한 문학적 자질을 보이고 있다. 몽테뉴는 강인한 논리의 산문가인데 반하여, 루소는 섬세한 시인적 재질을 보인 점이다. 두 사람 다 낙천적 자연주의 인간성에 대한 깊은 신뢰, 열렬한 행복에의 희구 등은 서로 상통하는 점이 많다. 종교적 견해는 공통된 자연종교이기는 하지만, 전자는 합리적이며 회의적 태도를 보이는데 대하여, 후자는 타오르는 신비적인 신앙적 태도는 대조적이다.
한 쪽은 유적한 가정에서 자라서 유능한 법관, 귀족으로 어려운 시대에도 능란하게 사회적, 정치적 역할을 다해가며 만년까지 불후의 명저(名著)를 남긴 행운아인데 대하여, 다른 한쪽은 혁명전야인 혼돈한 사회 속에서 최하층의 방랑인으로 출세하여, 불합리한 사회제도 때문에 추방되고 쫓겨다니는 모순과 대결하여 이름을 세상에 알린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 반생은 쫓겨다니는 망명생활을 보내지 않으면 안된 생활의 패배자였다.
루소는 몽테뉴보다 약 2세기 늦게 태어났지만, 민주주의 사상이나 자연설의 발전에 크게 영향을 주었으며, 르네상스와 종교개혁기의 사상은 그에 의하여 집대성되어 다음에 오는 데카르트나 파스칼의 시대에 계승되었다고 할 것이다.
어쨌든 <에밀>이 오늘에도 우리 독자들 가슴에 영원히 뜨겁게 불을 붙여놓는 원동력은 전편을 통하여 아이들을 위하여 감동적인 찬가(讚歌)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책 중에서 우리는 가는 데마다 인간에 마주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들 독자는 살아있는 인간을 만나게 된다. 그것이 나중에는 자기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여기에 <에밀>의 영원한 생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