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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스타프 말러와의 만남 / 이경숙
  글쓴이 : 류인혜 날짜 : 05-09-21 08:02     조회 : 2396    

구스타프 말러와의 만남


이경숙/서울대 명예교수·성악


신비하고 아득한 꿈 속에서 울려 나오는 듯한 트럼페트와 호른 소리가 울린 다음 조용한 노래가 시작되었다. '문 앞에서 노크하는 사람 누구인가요?/그렇게 조용히, 너무나 조용히 나른 깨운 사람은 누구죠?'

나는 그 노래를 듣는 순간,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으로의 문이 열리는 듯 감동을 받았다. 푸른 초원에서 외롭게 잠든 젊은 병사의 영혼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온 노래이다.

1955년 가을 미국 유학시절, 유명한 베이스 제롬 하인스의 독창회에서였다. 이 날 이후 나는 말러의 가곡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의 초기 가곡부터 공부해 갔다. 1962년 다시 간 유학 길에서는 하버드대학 음악도서관에 쳐 박혀 말러에 관한 책과 문헌을 찾아 읽고 또 읽었다.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1911)는 작곡가이자 지휘자로 독일 후기 로만파를 대표하는 음악가이다. 그는 아홉 곡의 교향곡과 미완성의 교향곡 10번 또 가곡심포니《대지의 노래》와 오케스트라 가곡집《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 연가곡《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이린이의 요술뿔피리가곡집》등 그리고 가곡 작품으로 유명하다. 말러는 오페라 지휘자로 널리 알려져 유럽 각지와 미국에까지 널리 알려져 있었으나 그가 "나는 살기 위하여 지휘를 하고, 작곡을 위하여 산다"고 말하였듯이 그는 작곡이란 창작에 그의 본령을 갖고 있었다.

말러가 다섯 살 때 "장차 커서 무엇이 되고 싶으냐?"는 물음에 그는 놀랍게도 "순교자가 되고 싶다"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보헤미아에서 유대 혈통을 갖고 태어난 말러는 어려서부터 독일어를 썼고, 교회합창단원으로 기독교 찬송가를 노래하였으며, 독일정통파 음악인 베토벤·하이든 음악을 들으면서 자랐다. 따라서 말러는 유대·슬라브·게르만의 민족적·민속적 요소를 갖는 환경에서 자라난 것이다.

말러는 또 집 바로 옆의 오스트리아군 병사에서 울리는 기상나팔소리, 행진곡을 들으며 보헤미아 악사들이 손풍금으로 연주하는 전래 춤곡 등에 익숙하였고 동화나 전설 등을 많이 듣고 읽으며 그의 상상력을 키웠다. 그는 네 살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여 그의 아버지 베른하르트는 아들의 음악재질을 일찍 발견하여 적절한 음악수업을 갖도록 하였다. 말러는 소년시절부터 집에서 가까운 숲과 목장을 산책하면서 자연의 신비한 변화와 생성과 조락의 과정을 목도하면서 새소리·물소리·바람소리에도 반응을 보이는 예민하고 다감한 감수성을 길러 나갔다.

말러는 어른이 된 후 바쁜 지휘자 생활에서도 여름휴가에는 자연경관이 빼나고 조용한 숲으로 둘러 싸인 호수 가의 작은 시골집에서 창작에 몰두하였다. 그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창작의 영감을 얻었고 많은 독서와 명상으로 새로운 작품을 구상할 수 있었다. 오페라 지휘자로서의 말러는 음악에 대하여 순수하고 열정적이었으나 아집이 강하고 완벽주의자여서 극장이나 오페라 가수들, 오케스트라 단원과 알력을 일으키고 자주 극장을 사직하는 일이 생겼다.

그의 제자인 브르노 발터에 의하면, 말러는 오페라 가수에게 정확한 리듬과 다이나믹스를 요구하고 또 드라마의 전개에 맞는 극적인 연기로 오페라에 깊은 감정을 표현할 것을 요구하였다 한다. 말러가 추구한 것은 음악과 연극의 균형있는 실현이라는 오페라의 본질을 요구한 것이었으니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여러 극장의 지휘자 생활 뒤 말러는 1897년에 드디어 빈 오페라의 지휘자로 취임하여 그의 오랜 숙원을 이루었고 그 뒤 십년 간은 빈에서 지휘자로서 전성시대를 맞아 유럽에 그의 명성을 확립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말러가 "나에게는 삼중으로 고향이 없다. 나는 오스트리아인 사이에서는 보헤미아인이고, 독일인 사이에서는 오스트리아인이며 또 세계 속에서는 유대인으로서 어디에서나 침입자였고 환영하는 곳이란 아무 데도 없었다" 고 말하듯 그의 삶은 고달픈 것이었다.

빈 오페라 총감독이 된 말러는 가톨릭으로 개종하였으나 그는 진정한 19세기인으로 니체를 신봉하는 전형적인 비종교인이었다. 방황하는 유대인의 운명을 질머진 말러는 서로 상반되는 문화상황에서 살아야 할 사람이 흔히 그렇듯 정신의 불안정, 지나친 자의식, 불안감, 권태 등으로 괴로워하면서 살지 않으면 안되었다.

또 창작가로서 말러는 언제나 영원한 것을 꿈꾸고 그것으로 인한 불안과 절망으로 방황하고 있었다. 이런 복잡한 생활에 활력소가 된 것은 말러의 자연에 대한 깊은 사랑과 그 안에서 얻는 평정이었고 다음으로는 소년시대부터 좋아하던 책 읽기였다. 그는 도스토예프스키와 쇼펜하우어에 심취하였고, 쟝 폴 리히터, 니체 등의 책들 외에 뉴턴이나 훼히너의 자연과학 책도 열심히 읽었다. 근본적으로 말러는 문학적 재능도 타고 났고, 특히 시를 쓰는 능력이 뛰어나 자신의 가곡의 텍스트를 쓴다든가 다른 사람의 텍스트를 고치거나 거기에 자신의 시귀를 덛 붙여서 놀랍게 훌륭한 텍스트로 만들어 작곡하기도 하였다.

말러는 훼히너의 영혼의 불멸과 재생, 정관(靜觀)에 대한 이론에 깊이 감명을 받고 말년에 그가 인생의 가장 힘든 고비에 이르렀을 때에는 결국 중국의 당(唐) 시집에서 발견한 동방의 사생관과 자연관에서 마음의 위안과 평화를 찾기에 이른다.

나는 1964년 1월에 서울시립교향악단과 말러의 심포니 4번을 협연하게 되었다. 그 때 나는 심포니 4번이《어린이의 요술뿔피리》에서 영향을 받아 작곡되고 내가 노래하는 제4악장은 어린이의 순수한 음성으로 그가 본 천국의 생활을 노래하는 장면임을 알게 되었다. 이 때 나는 독일 민요 설화집《어린이의 요술뿔피리》에 가깝게 다가 설 수 있었다. 시인 하이네가 이 시집을 가리켜 "이 노래에서 우리는 독일인의 심장의 동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 것을 알고는 더 깊은 관심을 갖고 그 시를 공부하였다. 그리고 1968년에 나는 산문집을 내면서《대지의 노래》라는 책제목을 붙였다. 말러에 대한 나의 사랑의 표현이었다. 또 1978년에 가진 독창회에서 나는〈어린이의 요술뿔피리〉가곡을 노래하였다. 이와 같이 말러에 대한 나의 관심은 1995년에 나온 나의 가곡론《예술가곡서설》에 <말러의 삶과 어린이의 요술뿔피리가곡집>라는 장을 쓰게 하였다.

말러는 1901년 11월 7일에 아름답고 재능을 가춘 운명의 여인 알마 쉰들러를 만난다. 말러는 알마에 대하여 "그대는 광명과 환희 속에서 태어났다"는 찬사로 깊이 사랑하게 되어 넉달 뒤인 1902년 3월 9일에는 빈의 카알교회에서 결혼하였다. 그들은 큰 딸 마리아 안나와 둘째 딸 안나 유스티나를 낳고 행복하게 지낸다. 그러다가 1907년 여름에 큰 딸 마리아 안나가 성홍열로 갑자기 죽으며 비극이 그 집안을 찾아왔다.

말러의 중기의 작품인 뤼케르트의 시에 붙인 다섯 곡의 가곡은 말러의 예술가곡의 진수를 보여 주고 그 가운데서도 <세상은 나를 잊었네>는 인생에 대한 담담한 체념을 그리고 있어 내가 사랑하는 곡이다. 또 다른 뤼케르트 시에 작곡한 오케스트라 연가곡집《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는 말러 자신의 불행과는 상관 없이 그전에 뤼케르트가 자기의 두 아이를 갑자기 잃고 고뇌와 상실감에 빠져 있을 때 깊은 공감을 느낀 말러가 작곡한 오케스트라 연가곡집이다.

우리는 말러를 심포니 작곡가로 불멸의 경지를 이룬, 특히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위대한 음악작업을 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는 밧흐에서 바그너에 이르는 독일의 음악을 이어 받았고 동시에 20세기로 가는 길목에서 쇈베르크, 베베른, 브리튼 같은 작곡가들에게 길을 열고 큰 격려를 준 음악가이기도 하다. 말러 음악의 부활과 재평가에 크게 공헌한 지휘자 레너드 번스틴은 말러의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거인의 모순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말러의 음악은 모두가 자기자신에 대하여 쓴 것이고 그 안에는 유대인 대 기독교인, 확신자 대 회의론자, 순진·무구한 사람 대 세련된 사람, 시골 보헤미안 대 빈 상류사교계 인사, 파우스트적 철학자 대 동방적 신비주의자 등 모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런 모든 모순이 그의 음악을 오늘날 세계인을 사로잡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나도 너무나 인간적인 이런 모순 때문에 말러에게 더욱 끌리고 있다.

말러의 여러 작품 가운데 가장 나를 매료하는 것은 무엇 보다《대지의 노래》이다. 말러가 사랑하는 딸을 잃고 또 자신이 심한 심장병에 걸렸음을 알게 되었고, 빈 오페라를 떠나야 했고 암울했던 1907년에 그가 죽음을 극복하고 삶을 갈망하며 삶에 대한 찬미를 노래한 이 가곡심포니《대지의 노래》는 말러의 위대함을 표출한 걸작이다. 말러는 쇼펜하우어·니체·훼히너를 읽으면서 고민하고 그다지도 찾고 원하였던 죽음에 대한 대답을 동방사상에서 발견한 것이다.

중국 당(唐) 시집의 번역본에서 말러는 동방적 사생관을 읽을 수 있었다. '내 마음 고요하고 그 때를 가다리고 있소!/사랑하는 대지 어디서나 /봄엔 꽃 피고 다시 푸르름으로 가득하리!/언제나 또 영원히 아득히 먼 곳도 밝고 푸르게 빛나/영원히 … 영원히 … ' 말러는 왕유(王維)의 이 시를 읽으며 자연의 영속성과 그에 대비되는 인간 삶의 일회성을 깊이 관조하였고, 그에게는 영원히 푸르른 평화의 지평선이 열려진 것이다. 그는 마음의 평화를 찾은 것이다. 그가 덧붙인 '영원히 … 영원히 … '를 들으면 말러의 마음을 읽게 돼 가슴이 아려옴을 느낀다.ㅂ


부싯돌 2002년 가을 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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