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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임병식 |
날짜 : 08-09-10 11:54
조회 : 3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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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골삼천(踝骨三穿)
임병식
조선 후기 귀양 와서 강진고을에 머문 다산 정약용선생에게 가르침을 청한 젊은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대부분 받아들여졌고 그 중에는 고희를 넘겨서 까지 배운 황상(黃裳)이라는 제자도 있었다. 그에게 사람들이 물었다.
“당신은 벼슬도 할 사람이 아니면서 공부를 10수년이나 계속 할 것은 뭐요” 이에 황상이 답했다.
“스승은 과골삼천 하도록 글을 쓰셨다네.”
과골삼천((踝骨三穿)은 여기서 비롯했다고 한다. 즉 복사뼈가 세 번이나 구멍이 날 정도로 서상 앞에 앉아서 집필활동에 매진했던 것이다. 이 말을 떠올리면 <몰두>와 <정진>이 그려진다. 이 말은 전자가 붙박여서 무엇에 빠져드는 생각이 드는 반면에 후자는 진행형으로 읽혀진다. 물론 거기에는 '진(進)'이라는 글자가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을 담고 있어서 인지 모른다.
한데, 나는 이 말을 생각하면 <일상>과 <지금>이 다시 연상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소금, 그 보다 귀한 것은 금이며, 그 금도 지금이 가장 귀해서일까. 일상은 두말할 것도 없이 매일매일 살아가는 일이고 지금이 ‘말하는 바로 이때’여서 인지 모른다. 하면, 왜 이 말이 연상된 것일까. 그 것은 한정된 시간 내에서 폭이 다름은 있을지라도 어떤 글을 보았던 때문이 아닌가 한다.
바로 유오지족(唯吾知足)으로서 이것을 풀이하면 ‘오직 지족할 따름이다.’라는 뜻이다. 장자의 거미이야기에 나오는 이야기기로, 옛날 원음사의 서까래 위에는 오래된 거미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 거미는 독경을 듣고 살면서 문리가 트여서 나중에 사람이 되기를 원하였다.
그 거미가 부처에게 말했다.
“저도 경륜을 펼칠 수 있게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그대에게 안타까운 것은 무엇인가?”
“예 아직 귀한 것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미 있던 것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일상이며 그 일상이 귀한 것입니다. 내세에서도 서까래 위에 앉아서 독경듣기를 원합니다. 오직 지족할 따름입니다.”했다. 그래서 또 유오지족이란 말이 생겨났다.
다시 주제로 돌아가 몰두와 정진을 생각해 본다. 공자님은 주역 책을 보면서 가죽 끈을 세 권이나 고쳐 맸다. 그래서 위편삼절(韋編三絶)이란 말이 생겨났다. 또 이와 관련한 한 분으로 추사선생이 생각난다. 당신은 일생동안 벼루는 세 개나 구멍을 내고 붓을 천 자루나 소모했다고 한다. 얼마나 치열하며 집요한 용맹정진인가.
나의 관향조(貫鄕祖)가 모셔진 보성벌교 제각에는 <鵝山齋아산재>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이 글씨는 고향에서 서예가로 전설적인 인물로 통하는 설주(雪舟) 송운회(宋運會)선생이 쓴 글씨이다. 선생과 관련해서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마을 앞에 개천이 흐르는데 그곳은 항상 먹물이 흘렀다고 한다. 한지에 글을 쓰고 나중에 빨아서 다시 쓰기를 반복하느라 그랬다는 것이다.
자연스레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예술을 한답시고, 글을 쓴답시고 허풍을 치며 보낸 50년, 그중 등단 한지도 사반세기가 넘은 것을 제법 앞세우면서도 얼마나 몰두하고 정진했는지 부끄럽기 때문이다. 당연히 낮이 붉혀지지 않을 수 없다. 태어나면서 생이지지(生而知之)로 깨달은 사람은 몰라도 곤이지지(困而知之)의 형편에서는 그저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는데, 얼마나 깨달음을 주는 것인가.
정확한 소리하나를 얻기 위해 최명희는 냇가에 앉아서 여울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달의 기운을 받기위해 흡월(吸月)을 하면서 뜨락을 서성였다고 하는데, 얼마만한 진지함인가. 한데 나는 그런 간절함으로 절차탁마하며 글을 쓰고 퇴고에 매달려 보았던가.
기껏 흉내나 내본 정도이니 근처에도 가보지 못할 지경인 것이다. 해서 통렬히 반성을 해보게 된다. 지금까지 태작일망정 750편쯤 작품을 썼으면 남들에게 기억 되어야 하는데 아직 그렇지를 못함이다. 이는 순전히 역량부족 이전의 몰두와 정진이 부족했음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골삼천은 나에게 뼈아픈 가르침이다. 그리고 예화로 든 장자의 거미이야기는 아픈 채찍질이다.
이청준 소설가는 살아생전 국어사전을 세권이나 걸레로 만들어 놓았다고 자백하지 않았던가. 모름지기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런 치열성으로 무장하고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 하지 않은가 한다. 뒤늦은 자각이 밀려온다.
하나 마냥 의기소침하여 자포자기를 할 일은 아니지 않는가 한다. 그나마 실천을 하지 않고 손놓고 있으면 흐르는 강물위의 배는 떠밀려 가기 십상이듯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몰두와 정진으로 노를 저을 수 밖에 없지 않는가 한다. 그것이 전해오는 전설의 함의이며 던져주는 메시지가 아닐까.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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