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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류인혜 |
날짜 : 03-11-25 22:24
조회 : 3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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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이야기 - 목련꽃 그늘 아래
류인혜
산이 날마다 다른 치장을 하고 나서는데 눈이 현란하다. 수종이 다른 나무들이 제각기 옷을 입기 시작하여 조금씩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똑 같은 나목으로 있을 때는 그저 나무로구나 바라보았다.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새잎이 돋아날 자리가 가려운지 잔가지를 바람에 맞추어 비비느라 분주하다. 어떤 그림을 그릴지 가지들이 모여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의논이나 한 듯 나무마다 나름대로 지니고 있는 색깔을 나타내고 있어 그 이름이 분명해진다.
사람의 무리가 있어도 아무 상관이 없으면 그저 군상일 뿐이지만 그 중 한 사람이 각별해 지면 아무리 많은 사람 가운데서도 그 모습을 뚜렷이 구별해내듯이 나무들도 이제 자기가 지니고 있는 특색을 색깔로 드러내고 있다.
날마다 색깔이 달라지는 산을 보고 문득 생각한 것이 연록의 나무 사이로 한 무더기씩 꽃나무도 섞여 있어 흡사 검정 색 머리 군데군데 염색을 한듯 산도 염색을 하고 나선 철없는 소년으로 느껴진다. 봄바람이 나도 단단히 났다.
나무들이 그렇게 치장하고 나서니, 먼저 피어난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꽃들이 심상해 보인다. 봄의 전령으로 그 의무를 다하고 있어도 그저 봄이 되었으니 또 피어나는구나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버스에 오르기만 하면 주변 산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다. 며칠 전에는 볼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집 가까운 곳의 산등성이 과수원 높은 곳에 서 있는 두 그루의 목련나무를 발견했다. "와!" 하며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나란히 선 나무의 모양대로 가지마다 무수히 꽃을 달고 있다. 꽃을 단 가지가 줄기 밑 부분까지 내려와 있어서 계란모양으로 된 수형이 아주 실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윗가지에만 달린 목련을 보다가 나무 전체가 꽃으로 뒤덮힌 것을, 그것도 두 그루가 똑 같은 모양으로 서 있는 광경을 보니 너무 풍성해 보였다.
그렇게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산등성이에 서서 흰 꽃 무리를 달고 있는 목련 나무를 보자 이상하게도 갑자기 배가 불러지는 포만감이 일어났다. 꽃 모양에서 강냉이 튀밥을 연상했던 것인가, 나무의 모양에서 밥그릇 위로 높이 올려진 쌀밥을 보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가, 집으로 돌아가는 시장한 시간이라서 그랬던가?
사방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는 계절이 돌아온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 읽노라" 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이 봄이 가기 전에 편지를 써야되겠다. 모두들 그 편지를 들고 목련 나무 아래에 서있게 된다면 너무 환상적인 봄맞이가 아닌가, 혼자 먼저 즐거워한다.
2002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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