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부활절을 한 주일 남겨둔 꽃주일. 내가 발랑부인과 처음 만난 지 꼭 50년이 되는 날이다. 18세기의 시작과 함께 태어난 부인은 그때 스물 여뎗 살이었고, 나는 겨우 열 일곱 살. 인간으로서 다정다감한 기질이 겨우 싹트기 시작했다는 것도 알지 못하던 때다.성격이 쾌활하면서도 점잖고 매사에 겸허하면서 얼굴도 보통 말하는 미남인 청년에게 부인이 호의를 베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또 재기에 찬 우아한 용모와 맵시를 갖춘 부인이 내게서 끝없는 찬사를 받게 되었다.

무엇보다 먼저 말해 두어야 할 것은 부인을 만난 최초의 순간, 나의 인생을 결정지을 무엇을 지녔고, 그 인연이 나로 하여금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오솔길을 걸어야 하게 만들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신체의 모든 기관이 고루 발달하여 사내로서 귀중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단계에 아직도 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인에 대한 나의 관심은 구체적으로 어떤 틀이 잡혀있는 것은 아니었다. 부인은 내게서 그것이 고루 갖추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부인을 만난 뒤부터는 부족했던 기능의 생장이 한층 더 빨라지기는 했어도 그 정도로는 아직 성숙한 단계에 도달한 것은 아니었다.그때 내가 받았던 교육으로 뿌리박힌 단순한 성품으로 인하여 환희에 찬 순간적인 찰라를 내것으로 만들기에는 나는 미숙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한참 후 그 부인과의 재회가 내 운명을 결정지워 주었다. 그녀를 나의 것으로 만들기 전부터 나는 그녀의 정신과 마음과 생활 속에 뛰어들어 살게 됐고 오직 부인을 위해서 살아가게 되었다. 단 두 사람은 얼마든지 평화롭고 감미로운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그 많은 기간이 스쳐간 뒤 내가 겪게 된 운명은 또 왜 그리도 험난한 것이었을까.

내 일생을 통하여 단 한 번밖에 없었던 저 짧은 세월, 완전히 나의 자아를 찾았고 부족한 것이 없이 꿈처럼 달콤하게 즐길 수 있었던 그 시절, 나는 이때를 회상해 볼 때마다 감동으로 가슴이 뛰지 않을 때가 없었다. 베스페시아누스 황제 시대. 임금의 은총을 입고 그가 전원으로 돌아가 유유한 세월을 보냈었다는 近衛隊長과도 비슷한 마음으로.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 70년을 보냈지만 정말 산 것은 7년에 불과하다." 나는 이렇게 따라 흥얼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짧으나마 이토록 소중한 기간이 없었더라면 나는 <자기>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 후로는 줄곧 남의 지배를 받으며 괴로와해야 했고, 그들의 뜻대로 이끌려 다니면서 농락만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생활의 연속으로 일어나는 풍파와 거의 남이 휘두르는 환경속에서 살아가게 됐다. 거기다 나를 질시하는 주위 사람들의 가혹한 모함과 필연적인 운명의 무거운 멍에를 짊어지고 계속 허덕이며 살아갔다.

그와는 반대로 짧은 세월 동안 나는 넘쳐흐르는 듯한 친절과 부드러운 마음씨를 가진 한 여성으으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내가 하고 싶어한 것은 무엇이나 다 해 보았다. 또 무엇이든 하고자 하는 일은 뜻대로 다 이루어졌고, 시간 틈틈이 활동하여 그녀의 기르침과 독서로서 소박하고 순진했던 나의 영혼을 더 견고하고 알맞는 상태로 만들어 나갈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 짧은 기간 동안 내가 받았던 모든 것은 그 후 영원토록 변함없이 내 마음의 양식이 되었다.

이 기간 동안 나는고독을 즐기고, 명상의 시간을 자주 갖는 경향이 생기고, 그것이 내부에서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부드러운 내 감정의 양식이 되어 주었다. 바깥 사회의 소란한 분위기와 잡음은 나의 이러한 감정을 압박하고 구속했으나, 안온하고 평화로운 자연은 나의 명상을 샘같이 솟아나게 하였고 날으는 새처럼 하늘 높이 떠있게 해주었다.

나는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마음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를 시골에 가서 살도록 권했다. 골짜기 언덕배기에 있는 외딴집이 우리의 은신처였다. 거기에 4~5년 묵고 있는 동안 몇 백 년을 살아도 얻어 볼 수 없을 만큼 크고 완전한 행복을 맛보았다. 그때의 추억은 지금의 두렵고 지겨운 감정을 뒤덮어 주었다. 시골에서 살고 싶었으며 끝내 그 소망이 이루어졌다. 자유를 구속당하는 것은 도무지 견딜 수 없는 일이었으나 오직 내가 사랑하는 대상에게서만 구속을 받았다.

내 시간의 대부분은 애정으로 가득찬 보살핌과 전원생활속에서의 들일에만 소비했었다. 그런 평화로운 상태가 오래도록 계속되는 것만이 내 소망의 전부였고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았다. 거기에 단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면 이런 평화의 상태가 오랫동안 계속되지 않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뿐이었다. 우리의 괴로왔던 환경에서 생기는 걱정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뒤부터 나는 그런 근심과 불안에서 해방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고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거기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앞으로 있을 빈곤을 구제해 나갈 유일한 길은 지식과 재능을 갖추고 있어야 하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훌륭했던 여성으로부터 내가 받았던 그 사랑에 언젠가는 보답할 수 있는 훌륭한 인간이 되기 위해 내 여가를 유용하게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루소의 말년에 쓰여진 명상록인 이 책은, 루소의 인생과 문학을 집약적으로 정리한 유언과도 같은 총 결산이라 할 수 있다. 세상에서 어느 누구도 그와 이어진 연관을 거부하고, 오로지 <결코 배반하지 않는 자연>을 벗하며 산보 속에서 인간이 무엇이냐 를 추구한 이 고독한 방랑자 루소가 자기의 참된 모습을 담담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들려준다.(廉 基 瑢 번역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