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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류인혜 |
날짜 : 15-04-03 07:57
조회 : 3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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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나 더 있어서
琴鶴洞別墅小集記
박지원
연암에 있는 내 시골집은 개성에서 겨우 30리밖에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흔히 개성에 가서 묵으면서 놀았다. 올 겨울에 규장각 직제학 유사경(有士京 유언호)이 개성유수로 온 뒤 간혹 객지에서 서로 만나서 옛정을 나누는 것이 벼슬하지 않는 선비나 다름없었다. 대체로 이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영달과 곤궁에 대한 문제를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는 사경이 따라다니는 하인들을 많이 덜어 놓은 다음 아들만을 데리고 금학동으로 나를 보러 왔다. 그때 나는 양씨의 별장에서 객지살이를 하고 있었는데 곧 술을 데워 내다놓고 다 각각 그동안 지은 글을 보이면서 서로 평가하였다. 그러다가 서로 보고 웃으면서 말하였다.
“금강산 마하연에서 밤을 지낼 때와 어떤가? 단지 백화암의 중 치준緇俊이 참선하고 앉았는 것을 보지 못할 뿐일세. 이렇게 모여서 노는 것이 관천灌泉에서 놀 때와 같건만 어느 틈에 우리들의 머리는 모두 허옇게 되었네그려.”
관천은 바로 서울 있는 내 옛집이다. 금강산을 구경하고 돌아와서 거기서 모여 놀았던 것이다. 그때 내 나이 스물아홉으로 사경보다 일곱 살이 적었지만 양편 살쩍에는 흰 털이 벌써 대여섯 개나 나고 있어서 나는 시를 지을 감이 생겼다고 스스로 기뻐하였다. 그로부터 지금 십수 년이 지나고 보니 시를 지을 감이라고 하던 흰 털이 빈틈없이 어수선하게 붙은 것을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사경은 문무의 권한을 다 거머쥐고 지금 큰 도시에 주둔하고 있는 터라 위아래 수염이 하얗게 되고 말았다.
사경이 살쩍 뒤의 금관자를 만지면서 말하였다.
“제 눈으로 보이는데도 이 꼴인데 더구나 살쩍 뒤야 제 눈으로 볼 수나 있는가?”
전번에 내가 연암에서 개성으로 들어오다가 마침 유수가 군사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과 마주쳤다. 그때 날이 어두워 깜깜한 가운데 나도 말에서 내려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길 옆에 엎드렸는데 횃불이 휘황한 속에 깃발들이 펄럭였다. 내가 길 옆에서 군대 행렬을 보았노라고 이야기하니 사경은 크게 웃으면서 말하였다.
“왜 내 자를 부르지 않았는가?”
“이곳 사람들이 깜짝 놀랄까 봐 부르지 못했네.”
그렇게 말하고 나서 두 사람이 함께 껄껄 웃었다. 사경이 말하였다.
“군대 행렬이 그래 어떻던가?”
“쌍쌍이 대열을 지어 세 줄로 서고 열 걸음씩 떨어진 것이 훈련도감보다는 조금 못하고 평양보다는 훨씬 낫더군. 그런데 뒷부대가 입은 군복은 앞뒤로 두 치쯤 짧아야 훤칠한 것이 더 씩씩해 보일거네.”
사경이 또 물었다.
“나는 그래 어떻던가?”
“나는 장군의 화상만 보았지 장군은 보지 못했네.”
“무슨 소린가?”
“왼쪽에도 신장과 같은 장수, 바른쪽에도 신장과 같은 장수더군. 앞에는 검은 호랑이를 타고 다니는 그런 신장과 같은 장수더군. 초헌 뒤에서만 유독 말 위에 깃발을 가지고 있었는데 검은 바탕에 별 그림이 바로 통솔자를 표시하는 구진기句陳旗더군. 내가 일찍이 화공을 불러다가 초상을 그리는 사람을 보면 반드시 입을 꼭 다물고 틀을 배어 보통 때와는 아주 딴판이거든. 그때의 장군께서도 기침을 참아야 했고 재채기를 참아야 했고 가려워도 감히 긁지조차 못했겠지.”
사경이 껄껄 웃으면서 말하였다.
“과연 내가 하나 더 있어서 길 옆에서 나를 보았네.”
나도 껄껄 웃으면서 말하였다.
“옛날에 조조가 스스로 일어나서 칼을 짚고 상 앞에 섰다고 하니 그것이 자기를 보는 법일세. 그런데 장군이 말을 잘 타지 않는 것은 두예杜預와 같건만《춘추좌전春秋左傳》의 주석을 내고 있단 말은 듣지 못했네. 띠를 느지막히 매어서 선비다워 보이는 것은 양호와 같으니 이 다음날 누가 빗돌을 바라보고 눈물을 흘릴지 알겠는가?”
이렇게 말하고 또 껄껄 웃고 일어나서 가는데 문밖에는 둥근 달이 비치고 있었다. 내가 문 밖까지 전송하면서 말하였다.
“내일 밤은 달빛이 더 좋을 걸세. 내가 남쪽 문루에서 달을 구경하고 있을 터이니 장군이 거기까지 걸어올 수 있겠나?”
“그렇게 함세.”
관천에서 모였을 때도 기문을 지었는데 또 사경이 개성에서 모인 것을 기문으로 지어서 보이기에 나도 이 기문을 지어서 그에게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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