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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하는 삶은 아름답다

누구나 새로운 일을 접하게 되면 호기심도 두려움도 있는 반면 가슴도 설렐 것이다. 내가 요즘 그런 처지에 있다. 실버넷뉴스 기자로 영상뉴스를 진행하고 있고, 유어스테이지에서 시니어리포터로 활동하고 있는 내게 라디오 불교방송국으로부터 ‘실버시대’프로그램에 출연해 달라는 섭외가 들어왔다. 내가 취재한 기사를 바탕으로 진행자와 대담을 하는 방식이란다.

차라리 내가 진행자가 되어 작가가 써준 원고를 들고 방송만 한다면 문제가 없겠는데 내가 직접 현장을 취재해서 방송자료를 준비하라니 자신이 없었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매주 금요일 4시에 요즘 시니어들의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것이었다. 고심 끝에 해보지도 않고 손사래를 칠 수 없어 용기를 내어 도전해 보기로 했다. 

방송 작가는 내가 섭외에 응하자 우선 계획서를 메일로 보내라고 했다. 라디오 방송은 처음이라서 그가 원하는 내용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우선 대답은 해 놓고  내 방식대로 계획서를 작성했다.

누구를 취재하는 일보다 우선 내 이야기를 하는 게 쉬울 것 같아 ‘ 끊임없이 준비하고 도전하는 실버 이야기’로 방송 타이틀을 정하고 ‘촌닭의 변신’으로 제목을 달아 나의 미니자서전을 썼다. 서울에서 살던 내가 농촌으로 시집와서 30년 이상 흙을 비비며 젖소를 키우다가 노년에 와서 아마추어 수준이지만 작가, 기자, 리포터,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촌부의 놀라운 변신 아닌가 싶어서다.

나의 미니자서전과 내가 취재했던 실버들의 이야기 세 가지를 제목만 붙여서 “애라 모르겠다.”하며 메일로 보내놓고는 안심치가 않았다. 그래서 조건을 붙여 후속 메일을 보냈다. 첫 방송이니 진행자가 나를 인터뷰 하고, 다음 주부터는 제목의 내용으로 방송하자고 양해를 구했다. 만일 내 계획이 적합하지 않으면 난 자신이 없으니 다른 사람을 섭외하라고 했다.

그리고 이틀 만에 방송국 작가한테서 전화가 왔다. 스텝들과 의논한 결과 만장일치로 좋다고 했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기분은 좋으면서도 걱정이 앞섰다. 옛날 같으면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아야 할 나이에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일에 또 도전하게 되었으니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 행복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기에 말이다.
 
방송 전날, 오후 3시까지 방송국으로 녹음하러 갔다. 방송국 건물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다. 녹음실은 17층에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16층까지만 운행되어 한층 걸어서 올라갔더니 이곳에 잠깐 쉬라는 듯이 조촐하게 데스크와 의자가 준비되어 있었다. 넉넉한 시간에 도착했다. 그곳에 앉아 작가에게 전화했다. 잠시 후 스텝들이 잇달아 나와 반겨주었다. 

인사를 나누고 나서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내가 사는 곳에서 방송국은 너무도 멀고, 나이 들어 발로 뛰며 취재를 해서 방송까지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며 엄살을 떨었다. 아니 사실이기도 했다. 그러는 내게 그들은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쉽게 생각하란다. 그동안 살아온 경험과 친지나 주위 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된다면서. 나는 그 말에 긍정도 부정도 못하고 미소만 지으며 안내하는 녹음실로 들어갔다. 방음장치가 철저하게 되어있는 녹음실은 유리창으로 프로듀서와 몸짓과 이어폰으로만 소통 할 수 있었다. 

먼저 시그널 음악이 흘러나오고 이어서 진행자가 고운 음성 세련된 말솜씨로 실버시대를 알리는 멘트와 나를 소개하고 첫 방송 소감을 물었다. 나도 음성을 가다듬어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긴장된 상태에서 진행자보다 내가 할 말이 더 많으니 말이 점점 빨라져 지적을 받았다. 다시 이어진 대담은 20분 안에 순조롭게  끝났고 발걸음도 가볍게 귀가했다.

다음날 오후 4시에 방송이 나온다니 외출도 삼가고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시간이 임박해오자 녹음할 때보다 가슴이 더 떨렸다. 말실수는 없을까 가슴을 조였다. 4년간 실버넷영상뉴스를 보도했지만 하고나면 늘 부족함이 보여 만족스럽지 않았기에 말이다.

5분 뉴스와 광고, 시그널 음악이 흐르는 시간이 왜 그리도 지루한 지. 15분이 지나서야 내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첫 인사는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나의 3막 인생을 펼쳐 보일 때는 목소리에 긴장이 배어있어 듣기가 거북했다. 게다가 방송이 끝나자 곁에서 숨죽이고 듣던 남편은 잘못한 말이 있다며 예리하게 지적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왜 내 귀엔 그 말이 거슬리지 않았을까. 얼굴이 화끈거렸다. 의기소침해 있는 나를 보고 그는 안 돼 보였는지“그것만 빼놓곤 다 잘했어”라고 하며 씩 웃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춘다든가. 위로의 말인 줄 알면서도 오그라들었던 가슴이 스르르 풀렸다. 
그 방송을 들었다는 지인도 전화해서 용기를 주었다. 한 번 실수는 병가상사라고 하지 않던가. 두 번 실수는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대로 첫 문을 무사히 통과한 셈이다. 마음이 홀가분하다. 소중한 인생 무기력하게 낭비하면서 ‘늦었다고’ ‘늙었다고’ 생각지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일이라면 열정을 잃지 말고 도전해 볼 일이다. 앞으로 복지 혜택만을 받는 노인이 아니라 생산자로 사회에 기여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건강만 따라준다면 도전 정신을 갖고 실고 싶다.

거실 창문을 통해 눈앞에 펼쳐진 공원과 앞산을 바라본다. 눈부신 햇살 아래 5월의 신록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싱그럽게 느껴진다. 누가 도전하는 삶은 아름답다고 했던가. 작은 희열이 온몸을 감쌌다.

불교방송 체널 FM101.9
매주 금요일 오후 4시 실버시대(우리들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