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강] 수필의 생리. 수필의 위치. 수필의 매력. 시대에.
2. 수필의 생리
1) 수필은 마음의 예술
수필의 주인공은 자신이다. 자신의 면모를 들어낸 고백의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필자의 모습을 비치는 거울이라고도 한다. 수필 1권을 읽으면 그 사람의 살아온 역사를 알게 되기 때문이다.
수필처럼 개성이 강하게 반영되는 독창적인 문학은 없다. 독창적이되 독자에게 공감을 주고, 감동을 준다. 남들이 알아서 아무런 의미가 없고 주제에서 은근히 울어나는 철학이 없으면 감동이나 공감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사실의 단순한 기록이거나, 쓰잘데 없는 넋두리거나, 신변잡기는 피해야 한다.
독백이되 그냥 독백이 아니고, 남들에게 알릴만한 가치가 있는, 쓰지 않으면 못 배길 만한 독백이어야 한다.
깊이 사색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독자적인 철학을 가미한 독백이면서 진지한 여과과정을 거쳐서 정돈되어져야 한다.
수필은 위대한 인간학(人間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수필이 무엇인가와 인간이 무엇인가는 등식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2)수필은 고백의 문학
아무런 허위나 가식이 없는 알몸둥이가 되어 고백하는 자세로 ‘나는 누구인가?’‘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는 끊임없는 의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문학이 수필이라 할 수 있다.
수필은 자기 고백적이고 뼈아픈 체험과 고통의 과정을 거치고 내면화되는 동안 걸러진 지혜와 진리의 이야기이다.
3. 문학 장르 중에서 수필의 위치
응축되고 상징성이 강한 시와, 허구의 세계를 넘나드는 소설의 사이 쯤이 수필의 위치라고 할 수 있다.
수필은 허구가 아닌 진실을 바탕으로 구체성이 요구되면서 시적인 주관성과 소설적인 객관성을 두루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시, 소설, 희곡으로 다룰 수 없는 고유한 문학 형태를 갖고 있다.
다만 수필로 태어나기 위한 필수 조건은 문장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하고 싶은 말을 조리있게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문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 문장력에 호소력까지 더하면 금상첨화라 할 수 있겠다.
읽으면 재미있고, 감동을 맛볼 수 있으면서 길어야 3∼4페이지(원고지 15매 내외)정도의 분량이니 오늘날 대부분의 독자들 기호에 알맞다.
모두들 바삐 뛰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도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르다.
음식도 씻어서 만드는 것보다 인스탄트를 선호하는 시대에, 다른 장르보다 어렵지도 않고 길지도 않아서 일하다 잠깐 한 편 씩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윤오영도 ‘수필이야말로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문학 형태’라고 말했다.
4. 수필의 매력
인간이 살아가면서 때로는 헝크러진 많은 사건들을 접하게 된다. 이런 사슬에서 빠져나가는 철학을 제시하고 안식을 주는 문학이 과연 어떤 장르일까. 사리의 핵심을 찌르는 진솔한 이야기이며, 애절하면서도 간절한 인간의 노래를 담아 현대인의 메마른 지성에 높은 차원의 정서를 부여하는 글이라는 점이 수필의 매력이다.
그런 점을 감안할 때, 수필이야말로 지상의 인류와 더불어 영원한 발전이 약속되는 문학 장르라 할 수 있다.
5. 시대에 맞는 수필
수필 장르가 신선한 인상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있다면 그것은 그 시대에 맞는 새로운 모델이 추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대적인 정서를 외면한 글이라면 독자를 확보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 시대의 핵심에 서서 날카로운 비판의 일면도 지니는 것이 매력일 수 있다.
시대를 불문하고 반드시 유지되어야 하는 기본이 있다면, 정(情)은 있되 자랑은 없어야 한다는 것을 들 수 있다.
현대처럼 정이 식을 대로 식어 살벌해진 때는 일찍이 없었다. 그 정을 회복하는 글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가 되었다.
수필의 선구자 몽테뉴도 ‘정을 지니지 못하고 좋은 수필을 쓸 수 없다’고 했다.
정이 있어야 진실을 볼 수 있고, 진실을 보아야 사리(事理)의 핵심을 찌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은 풍성할수록 좋지만 자기 자랑은 삼가야 한다.
글이 자기 변호나 부각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 시대를 불문하고 자랑하는 것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더구나 남의 자랑을 읽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기관리에 실패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 특정인 허물하는 것과 자기 자랑하기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자기 자랑이 자신에게는 오히려 독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글도 마찬가지다. 신변잡기라고 비판받는 수필을 보면 대부분이 자랑 투성이다. 남편 자랑, 아내 자랑, 자식 자랑, 화분 자랑, 강아지 자랑까지 늘어 놓은 글을 누가 눈여겨 보겠는가.
물론 생활의 곁에 있고, 가까운 소재인 만큼 자기 나름대로 절실한 내용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독자에게는 전혀 흥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바쁜 시대에 독자가 남의 집 가정사까지 파악해야 할 필요가 어디 있으며 더구나 듣기 싫은 자랑을 마음에 담아둘 이유가 없지 않는가.
가치 있는 소재를 다루지 않은 작품이 가치 있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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