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지난해 말부터 나와 안면이 없는 사람이 몇이 문자를 계속 보낸다. 언뜻 이름을 들어본 사람도 있고,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 사람도 있다. 무슨 속내인지는 안다. 출마하려는 사람들이다. 그중 한 사람은 내가 사는 동네 바로 옆의 동네에 국회의원으로 출마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그를 줄곧 서울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무슨 연고가 있어 옆 동네에 출마하려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가 예전 서울 모 신문의 기자였다는 사실뿐이다.
불쑥 나타난 지역 출마자, 정치와는 무관
지금 사는 곳의 국회의원에 대해서도 나는 아는 바가 전혀 없다. 자신의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은 결코 온당한 일이 아닐 것이다. 정치 무관심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어떻게 해서 내가 사는 지역의 국회의원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마도 부산과 약간의 연고, 예컨대 부산에서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를 다닌 그런 연고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그는 이곳을 떠나 서울로 가서 이른바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그곳에서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기르고 있는 사람, 곧 서울 사람이다. 요컨대 어린 시절 부산과 개미허리처럼 가느다란 인연의 끈이 있을 뿐, 그는 외지인일 뿐 부산 사람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할 사람쯤 되면 누구라도 부산과 어떤 연고가 있을 것이다. 부산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다는 것은 큰 연고다. 부산에서 과거에 몇 년 근무한 적이 있었다는 것, 아내 혹은 남편이 부산 사람이라는 것도 괜찮은 연고다. 좁은 대한민국 한두 다리 건너면 다 부산과 관련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런 연고가 부산을 지역구로 삼을 만한 충분한 근거가 되는 것인가? 한 마디로 우습다. 곰곰 따져보면 그들은 대개 잘난 ‘서울사람’이 된 지 오래다. 좋은 부모를 둔, 출신성분이 좋은 사람이거나, 아니면 부자이거나, 학벌이 좋은 사람들이다. 한때 어렵게 산 사람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 좋다는 아무개 대학의 아무개 학과를 나와서, 판사, 검사, 변호사, 고위공무원을 지낸 사람들이다. 아니면 재벌기업에서 높은 자리에 올랐거나, 그도 아니라면 힘 있는 시민운동가로 명성을 얻었을 것이다.
다는 아니겠지만 대한민국의 잘난 국회의원들은 거개 그렇게 해서 국회의원이 된다. 내가 사는 곳에서 10년이고 20년이고 활동하던 사람, 지역 주민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정치를 배워 정치인으로 성장한 사람이 아니라, 아득히 먼 곳의 전혀 알지 못하는 어떤 ‘외지인’이 개미허리 같은 그 무엇을 연고라 내밀면서 ‘나 원래 이 동네 사람입니다’ 하고 나타나는 것이다. 당연히 당선이 되고 ‘국회의원 아무개 사무소’만 허름한 건물 2층에 남기고 다시 이곳을 떠난다. 그게 전부다.
통치자·지배자가 아닌 정치인을 뽑고 싶다
우리는 정치할 사람을 뽑지만, 그들은 정치를 하지 않는다. 정치를 할 사람이 뽑혔다면, 전셋값 폭등도, 청년실업률 증가도 없을 것이다. 비정규직, 대량해고, 노년빈곤, 교육붕괴, 무한경쟁, N포세대, 헬조선이란 말이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치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오직 통치하고 지배할 뿐이다.
보통의 국민과 같은 공간에서 같은 생활을 체험하면서 정치를 배우고 익혀, 아래로부터 성장한 정치인이 아니라면, 모두가 정치인이 아닌, 지배자고 통치자일 뿐이다. 새 ‘누리’를 만들겠다는 정당이 만든 누리는 헬조선이 되었다. ‘새’ 정치를 하겠다면서 연합하더니 분열을 거듭하며 국민을 외면하는 정당도 있다. 그들이 과연 보통 국민의 고통에 공감하는 바가 털끝만큼이라도 있으면 그런 짓거리를 할 수 있을까?
기득권을 지키며 오직 통치하고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충만한 정당이 아니라, 보통 국민의 고통에 절절이 공감하는, 아래로부터 성장한 정치인을 보고 싶다. 누가 그런 정당 좀 만들어다오! 그에게 나의 소중한 한 표를 드리겠다.
출처 - 실학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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