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경기를 통해 우리 선수들의 놀라운 기량도 보고, 사람들마다 입을 모으는 히딩크 감독의 뛰어난 용병술도 보았다. 철벽 수비라는 아주리 군단도, 완강한 전차군단도, 부드러운 삼바축구도 보았다. 그리고 ‘열 띤’ 정도로는 표현이 부족한 그야말로 ‘한 덩어리가 된’ 대한민국 응원의 기세도 보았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11명 선수들의 땀을 보았다. 비오듯 흘러내리는 땀의 기쁨을 누리는 선수들은 행복에 겨워 약동했다. 솟아나는 땀으로 하여 살아 날뛰며 솟구치고, 달려들고, 흩어지는 그 다리들은 생존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얼굴에 범벅된 땀은 거름이 되어 다리를 길러내고, 튼튼하고 실한 다리들은 좋은 공을 만들어내느라 들떠있었다. 물 속에서 갓 나온 듯한 젖은 머리와 젖은 유니폼은 고통이 아니라 그들의 자부심이고 축복이었다.

벤치에 앉은 12명의 선수들은 필드에 흐르는 땀을 부러워했다. 관중석의 우레 같은 함성이 터질 때마다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배지만 흘러서 눈을 가리는 저 땀방울을 가지고 싶었다. 마른 몸으로 벤치에 묶여 숨을 죽여 가느니, 젖은 몸으로 죽도록 필드에서 뒹굴고 싶었다.

땀을 흘리고 싶어할 대기선수들의 심정을 헤아리느라 경기내내 안쓰러움이 가시지 않을 때가 많았다. 경기가 한창 진행되는 동안에도 11명에 기용되지 않은 선수들을 짚어보느라고 경기의 줄거리를 놓치고 옆에서 경기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 자주 핀잔도 들었다. 마른 몸으로 벤치에 앉은 선수들도 23명의 최종 월드컵 선수 명단이 확정되었을 때 다른 많고 많은 선수들의 부러움 속에서 전율했을 터이다. 영광의 인물로 몇 날 며칠 보도되며 나라 안을 술렁이게 했던 그들이다. 아무도 부러울게 없던 마지막 영광의 자리에 들었다고 생각했던 그들이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이 아니었다. 이제 벤치에 앉아 긴소매 점퍼를 입고도 한기를 느끼고 있다. 짧은 유니폼을 입고 바가지 땀을 흘리는 초록 필드 위 동료 들의 용솟음치는 활기에 위축되어 있다. 23명의 동료들과 함께 히딩크 감독의 지휘아래 땀흘리던 훈련기간의 뿌듯했던 시간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 솟아지던 땀을 그리워하고 있다.

필드에서 뒤는 선수들이 흘리는 땀 줄기와 벤치에 앉은 선수들의 마른 얼굴을 보며 땀이 축복임을 자꾸자꾸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가족들은 주말이면 어김없이 산을 찾고, 산을 헤집고 다니며 팥죽 같은 담을 흘린다. 한여름에는 집안에서 훨훨 벗어제치고 시원하게 보낼 수도 있을 텐데 굳이 긴 옷들을 갖춰 입고 산을 찾는다. 때로는 땀이 너무 많이 흘러 위에 걸친 조끼마저 흥건하게 젖을 수도 있는데, 그럴 때일수록 진한 쾌감을 느낀다. 다른 사람이 맡으면 역겨울 수도 있는 땀 냄새를 일부러 킁킁거리며 맡고는, 땀 냄새가 좋다고 연발한다. 산에서 줄줄 흘리는 담은 일상의 공간에서 더위에 시달리며 언짢게 흘린 땀과는 상쾌함이 확연히 다르다. 본래 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일상생활에서는 더위를 느끼지 않으려고 조금만 해도 부채질을 하는지, 선풍기를 돌리고 에어콘 시설을 찾게 된다.

그런데 산에서는 땀을 편하게 받아들인다. 땀 흐르는 것을 거부하지도 않고 닦지도 않고 축복인양 줄줄 흘리며 즐긴다. 몸 속에 쌓인 피로도 인생살이의 앙금 같은 것도 한껏 배설되어 상쾌한 기분만 남게 된다. 그 때 우리는 진정으로 땀을 사랑하기까지 한다. 우리는 땀을 흘리러 산을 찾는 셈이다.

공을 따라 탄력 있게 몸을 던지다가 공격을 잠시 멈추고 선, 선수의 얼굴이 텔레비전 화면에 클로즈업되면 산에서 땀이 범벅된 가족의 얼굴을 보는 것처럼 뿌듯했다. 땀이 몸밖으로 흘러나오면서 몸 속에 새로운 큰 에너지를 만들어 놓는다. 사람을 살맛 나게 하는 에너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