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 동생이 늦둥이를 낳았다기에 안부 전화를 걸었더니 아이를 낳고 나서 심한 우울증에 시달린다고 했다. 간절히 기다리던 아들을 낳고 행복해야 마땅한데 걸핏하면 눈물이 쏟아지고 무기력해서 아기를 돌보기조차 어렵고 그런 자신에 대해 심한 죄책감이 든다는 것이었다. 두 달 이상이나 증상이 지속되면서 불면증과 식욕부진 심하고 거의 모든 활동에 대한 흥미와 즐거움이 사라졌다면 일반적인 산후 우울증의 정도를 넘어선 것이다.

우울증이 있는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을 생각하고 그 중에 15% 정도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다는 보고가 있다. 흔히 어떤 일을 성취하거나 새로운 과제를 앞두고 우울중이 악화되어 자살을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우울증에 대한 편견과 수치심 때문에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우울증은 육신적인 질병과 마찬가지로 의사, 상담심리치료사의 치료뿐 아니고 가족들의 각별한 이해와 돌봄이 있어야 한다. 우울증 회복 일기를 쓴 권혜창 시인은 ‘로뎀나무 아래서’라는 저서를 통해 우울증의 고통과 치료과정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정신과 의사, 전문 상담사, 목사와 상담하고 치료를 받으면서 남편과 가족의 사랑 속에서 회복되어가는 모습은 진정한 영혼육의 거듭남을 보여준다.

남달리 섬세한 감성을 지닌 데다 완벽주의자인 부모 슬하에서 자란 필자는 상담 심리 치료를 하는 동안 가족관계 안에서 중요한 실마리를 찾는다. 실패를 허락하지 않는 어머니에게 좋은 딸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아온 그녀에게 삶의 주도권은 늘 자신의 밖에 있었다. 어머니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두려워했기에 부정적인 감정조차 가질 수 없었다. 자존감 낮고 의존적인 아이에서 성숙한 성인으로 회복되는 동안 타인에 대한 태도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변화되어 간다. 그것은 스스로 자기 감정의 주인이 되는 여정이다.

우울증은 치료 못지않게 일상생활에서의 훈련이 중요하다. 아돌프 아들러는 ‘우울증에서 벗어나려면 14일 동안 누군가를 배려하고 친절을 베풀라.’라고 구체적인 제안을 한다. 왜냐하면 우울증이란 타인에 대한 지속적인 분노나 비난과 같은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우울증 환자의 첫 번째 기억은 대체로 '그때 누군가 어떻게 해서 내가 상처받았다.'로 시작된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낙담한 듯이 보이는 것은 사실 사람들의 관심과 동정, 보호, 지지를 얻어내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서 실패한 우울증 환자는 때때로 자살을 해서라도 복수를 하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자기학대를 해서라도 남을 괴롭힐 수 있는가'하는 생각에 사로잡힌 우울중 환자에게 '잠이 오지 않는다면 그 시간을 이용해서라도 남을 기쁘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시지요.'라고 한다. 우울증의 참된 원인은 협력정신의 결여이므로 타인에 대해서 생각하고 협력하게 되면 우울증은 낫게 되는 것이다.

남에게 친절을 베풀고 기쁨을 줄 때 자신의 고민이나 두려움, 자기연민,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따스한 눈길과 관심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관심을 보이라. 그렇게 하면 짧은 인생에서 많은 기쁨을 누릴 수가 있을 것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여기서 남을 기쁘게 한다는 것은 인정받기 위해 남의 비유를 맞추는 것과는 구별된다.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에게도 따스한 미소를 보낼 수 있는 여유와 너그러움, 자신에게만 향하는 시선을 바깥세계로 돌려보는 친절한 마음의 훈련이다.

-이진화(수필가, 상담 심리치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