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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영월 |
날짜 : 08-04-15 17:08
조회 :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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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김 영월
주어진 하루하루가 평온하게 지나가는 게 큰 축복임을 다시금 실감한다.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 지구촌이 사람의 심장을 떨리게 할만한 사건 사고 없이 오늘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하랴. 2008년의 음력 설날도 귀성객들의 고속도로 교통 체증이 어떠하고 가족들이 한데 모여 차례를 지낸다든가 평범한 뉴스로 끝나는 듯했는데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국보 1호, 숭례문의 화재 소식이 전해졌다. 그리고 약 5시간 만에 활활 타버린 600년 문화재의 이지러진 얼굴을 만나야 했다.
서울의 관문인 서울 역에 내려 맨 먼저 눈에 띄고 정겨운 느낌을 주는 상징적 건물, 숭례문(남대문이란 이름이 더욱 친근했다)이 아니었나. 항상 곁에 있던 사람도 어느 날 떠나고 나면 그립듯 눈에 익숙하던 남대문이 어이없는 화재를 당하고 나니 새롭게 허전함으로 다가선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뒤늦게 문화재 관리의 중요성이 나오고 서로의 책임을 따지며 당국이 시끄럽다.
숭례문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으로 병문안을 하듯 수많은 서울 시민들의 발길이 복원공사 현장으로 몰려든다. 나도 열흘이 지난 뒤에 부끄러운 역사의 현장을 찾아 나섰다. 사람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공사장 둘레를 텐트로 막아 놓고 일부만 밖에서 구경할 수 있도록 투명 유리창으로 끼워 놓았다. 일 층 석조 건물은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고 이.삼층 목조 건물은 모두 새카맣게 타버려 언제 주저앉을는지 위태롭게 보인다. 그나마 텅 빈 폐허로 남지 않은 게 위안이 된다. 화재를 안타까워하는 추모의 행렬이 여러 낙서판 위에 써놓은 메모인 듯 당국에 대한 원망과 비난, 슬픔이나 자책감, 위로와 분노의 감정이 빈틈이 없을 만큼 빼곡하다. 그 중에 어느 할머니의 낙서가 눈에 띄어 읽어보니 쓴웃음이 나온다.
-200억이나 들여 복원공사를 한다는데 그 돈 있으면 우리 늙은이들 용돈이나 좀 나눠 주지 그래.
한 쪽에선 고인에 대한 장례식처럼 화재 전 남대문 사진을 크게 걸어 놓고 과일등 차례상을 차려 놓은 채 마이크를 잡은 사회자의 식순에 따라 정중하게 예를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와 상관없다는 듯 교통 혼잡 지역인 이 곳은 수많은 차량들과 인파로 바쁘게 돌아가고 매연 내음이 코를 찌른다. 숭례문은 기나긴 세월의 강을 따라 이 나라의 숨 가쁜 변화를 지켜보며 우리의 정신적 지주로 버텨 주었음을 어찌 감사하지 않으랴.
국민의 가슴에 상처를 주고 귀중한 문화재를 소홀히 다룬다는 외국의 비아냥을 듣는 수치감을 안겨 준 방화범은 의외로 70대 할아버지임이 밝혀졌다. 그는 현장검증에서 참회는커녕 태연하게 말하고 있었다.
-화재는 냈지만 남대문은 복원공사하면 되는 것이고 사람들이 어쨌든 다치지 않았으니 된 게 아니냐?
그는 자신의 재산이 법적으로 수용됨에 따른 정부의 보상금이 적다는 이유로 울분을 터뜨리기 위해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고희에 이르도록 살았으면 인생을 정리해야할 나이가 아닐 듯싶은데 아직도 이기심에 사로잡혀 이성적 판단을 잃어버리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이 마음을 비우고 살아가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것일까. 나이에 비례하여 인격이 성숙할 수 있다면 얼마나 바람직하랴. 주변에서 가끔 어린애보다도 못한 행동을 하는 노인네를 볼 수 있다. 지하철을 타게 되면 어쩌다가 모르고 경로석에 앉은 젊은이가 발견될라치면 기다렸다는 듯 호통을 치는 어르신네의 모습은 아무래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나이 든 게 큰 벼슬이나 된 것처럼 여기지 말고 섬기는 자세로 겸손하게 행동한다면 아랫사람으로부터 자연히 존경받고 세대간의 갈등도 줄어들 게 아닐까.
무자년을 맞이하여 나도 이제 회갑에 이르렀다. 흔히 하는 말로 나잇값도 못하는 사람이라는 핀잔을 듣지 않도록 더욱 자신의 인격을 다듬고 되돌아 볼 때임을 깨닫는다. 비록 건물은 불타버렸지만 숭례문(崇禮門 )의 현판 글씨처럼 공자의 논어에 예를 강조하는 가르침은 언제까지나 되새기고 싶어진다.
-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 것이며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 것이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 것이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도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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