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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옛 친구 집에 식사하러 갔다. 불행히도 친구의 온 가족이 풀이 죽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무슨 까닭이냐고 묻자, 친구가 말하기를, 엊그제 밤 아내가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부부나 어린것들에게 어떤 불운이 닥쳐올 징조가 아닌가 겁이 난다는 것이다. 부인이 방에 들어오자, 부인 얼굴에 그득한 수심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수심의 원인을 내가 미리 듣지 않았다 하더라도 부인의 얼굴빛을 보고, 나는 걱정을 하였을 것이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잠시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여보” 하고 부인은 남편을 돌아보며, “어젯밤 촛불 속에 나타났던 그 이상한 사람의 모습을3) 보게 될 거예요.” 한다. 이 말이 나온 뒤 곧 가족 이야기가 시작되었는데, 식탁 끝에 앉았던 어린 아들이 목요일엔 글씨 쓰기 연습하러 가게 되어 있다고 하였다. 부인은 “목요일이라니!” 하더니, “안 된다, 얘야, 너. 하느님 뜻을 따르려거든 어린이 주일날4)에 시작해서는 안 돼. 선생님에게 말해라, 금요일도 늦지 않다고.”

나는 부인의 엉뚱한 환상을 곰곰이 생각하였다. 한 주마다 하루씩 공쳐버릴 사람이 있을까, 의심해 보기도 하였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 부인은 나보고 칼 끝으로 소금을 좀 보내 달라고 한다. 나는 얼떨결에 급히 부인의 지시에 따르다가, 넘겨주는 도중 엎지르고 말았다. 그러자 부인은 그 자리에서 깜짝 놀라면서, 소금이 자기 쪽으로 엎질러졌다고 한다.5) 그러니 나는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식탁에 앉은 사람이 모두 관심을 표명하는 것을 보니, 나 자신이 집안에 재앙을 가지고 들어온 사람인 듯해 스스로 난처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부인은 잠시 사이를 두고 제정신으로 돌아가, 한숨을 내쉬며 남편에게 말하였다.

“여보, 불행은 단독으로 오지는 않는다죠.” 내가 보기에, 내 친구는 식탁에서는 배석(陪席)을 하는 역할에 지나지 않았고, 생각보다 성질이 무던해서, 별수 없이 부인의 감정과 기분에 따라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여보, 우리 집 멍청이 가정부가 식탁에 소금을 엎질렀던 바로 그 날 오후에 비둘기집이 떨어졌지요?” 그러자 남편은 “암 그랬어, 그리고 다음에 날아든 우편물이 앨만자 전투6)의 소식을 전해주지 않았소”라고 대꾸한다. 이런 불운을 모두 털어놓은 후에 나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독자는 짐작이 가실 것이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평소와 다름없이 입을 다문 채 식사를 마쳤다. 그때 내가 아주 당황한 것은 내가 나이프와 포크 사용을 마치고 접시 위에 엇갈리게 포개 놓은 것을 보자, 부인은 십자가 모양으로 포개 놓지 말고, 가지런히 놓아주었으면 마음이 놓이겠다고 청을 하는 것이다. 나는 터무니없는 짓을 하고도 알지를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거기에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미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 이유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앞으로는 언제든 그런 모양으로 나란히 놓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제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을 때, 그를 눈치채는 일은 어렵지 않다. 나 자신의 경우만 하더라도 부인의 눈치를 보고, 부인이 보기에 나는 불행한 일면을 지닌 이상한 사람이라고 간주한 사실을 재빨리 알아차린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나는 식사가 끝나자 곧 자리를 뜨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자 나는 인간의 어리석은 미신이 초래하는 병폐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도대체 미신이라는 게 무엇이기에 팔자 소관도 아닌 가상(假想)의 재난과 슬픔까지 덧붙여서 사람을 굴복시킨단 말인가. 마치 인생의 자연 발생적 재난만 가지고는 부족해서, 아무 관련이 없는 상황까지도 불행으로 돌려, 사소한 사건도 진짜 해악인 양 걱정을 한다. 별이 떨어지면 하룻밤의 휴식을 공친다고 알고 있다.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 사나이는 얼굴이 창백해지고, 운수 맞추기7) 제비뽑기에도 구미가 붙지 않는다는 사람을 보기도 하였다. 한밤중 한 마리 올빼미의 울음소리가 한 떼의 도둑보다 식구들을 놀라게 한 일이 있었다. 한 마리 귀뚜라미 소리가 사자의 포효보다 공포를 준 일이 있다. 무슨 예시나 전조(前兆)로 차 있다고 상상하는 사람에겐 아무리 하찮은 일도 무섭게 생각되지 않는 것이 없다. 녹슨 못 1개, 구부러진 핀 1개도(미신을 믿는 눈에는) 대단한 것으로 보인다.

답답증으로 고생하는 한 노가정부는 친구와 이웃 사람들 사이에서 한없이 근심 걱정을 털어놓는다. 나는 어떤 호족(豪族)의 처녀 숙모 한 분을 알고 있는데, 그녀는 1년 내내 점을 치거나 예언을 하는 구식 무당의 한 사람이다. 그녀는 언제고 허깨비를 보고 죽은 시계 소리를 듣기도 한다.

언젠가 치통으로 드러누워 있을 때, 우리 안 큰 축견이 크게 짖는 소리를 듣고 혼이 나가게 놀란 일이 있었다. 이렇게 엉뚱한 생각이 수많은 사람들을 공포에 묶어 둘 뿐 아니라 인생의 여분의 임무를 부과케 한다. 인간의 영혼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공포와 무지도 거기서 생긴다. 죽음에 관한 생각(혹은 언젠가는 당할 불운이라고 할까)을 품게 하는 두려움, 그리고 언제 닥쳐올지 모르니 우울한 심정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근심과 의혹으로 가득 차게 되고, 그 결과 이와 같은 아무 근거가 없는 불가사의, 예징(豫徵)을 믿게 되는 것이다. 현명한 사람의 큰 관심이 철리(哲理)로 따져서 인생의 해악을 줄이는 것이라고 하면, 어리석은 사람은 믿는 마음으로 이 세상 해악을 몇 곱절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나의 경우를 말하자면, 내가 만일 앞일을 가늠하는 신통력을 타고났다고 하면 나에게 닥쳐올 모든 일을 꿰뚫듯 알아낼 수가 있겠지만, 마음은 크게 괴로울 것이다. 무슨 일이 닥치기 전에는 어떤 행복의 단맛을 기대하지도 않고 어떤 재앙의 고통도 실감하지 않으리라.

나는 마음 속 우울한 예감과 공포에 맞서서 내 영혼을 굳게 다지는 단 하나의 길을 알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만사를 처리하시고 장래 일을 다스리시는 하느님의 동정과 보호를 확보함으로써 이루어진다. 하느님은 한번 훑어 보시면, 나의 생족의 명수(命數)―이미 지나온 과거의 운수뿐 아니라 영원의 깊이로 치닫게 될 나의 운명까지도 알고 계시는 것이다. 내가 드러누워 잠들 때, 나 자신을 하느님의 보살핌에 맡기고, 잠이 깨면 그분의 지시에 따른다. 나를 위협하는 모든 악 속에 있을 땐, 우러러 도움을 청하고, 하느님이 악에서 눈길을 돌리시건 악을 돌려 복으로 삼으시건 의심치 않고 믿을 뿐이다. 내가 언제 어떤 모양으로 죽게 될지 알 수 없는 바이지만,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두 가지를 다 알고 계시고, 내가 죽음에 처해서도 틀림없이 위로해 주시고 지탱해 주시기 때문이다.

해 설

Joseph Addison (1672~1719)

Wilt 주 Milston에서 교구장(rector)의 아들로 태어나 런던의 Charterhouse에서 스틸과 친구가 되었다. Oxford의 Queen’s College에서 배우고, Magdalen College에서 연구원(demi)의 자격을 얻어 고전학을 전공하였다. 처음엔 외교관으로 출발하였는데, 자유당 내각에서 신망을 얻어 일약 국무차관에 임명되고, 1709년 이후 매년 국회의원에 선출되어 만년에 이르기까지 의회정치에 참여하였다. Warwick 백작 미망인과 결혼하여 굉장한 Holland House의 주인이 되고, 그 후 1년간 국무 대신의 현직에도 있었지만, 원래 성격이 소극적인데다 아내와의 신분의 차이로 인한 가정 불화도 있어 술을 상비약같이 마셨다.

그후 후세에 남긴 공로는 스틸과 손을 잡아 신문 The Tatler, The Spectator를 창간, 건필을 휘둘렀던 일이다. 그 글을 교도(敎導)의 의미가 있었지만, 당시 세상의 모순 결함을 소재로 한 경쾌한 풍자문이 많았다. 풍자라고 하지만, 매도(罵倒)가 아니고 irony도 아니고 독자로 하여금 모습을 거울에 비쳐보게 하고 스스로 시비 곡절을 깨닫게 하는 필법이었다. 여기 실은 ‘항간의 미신’도 그런 계열의 에세이이다.

1) Thessaly : 고대 그리스 신화와 연고가 깊은 지방의 이름.

2) Horace, Epistles(Ⅱ. ⅱ. 208~209).

3) 촛불 심지의 타는 모습에서 그려낸 사람의 모습.

4) Childermas Day : Holy Innocents의 제일(祭日)을 가리킴. 12월 28일(cp. matthew, ⅱ, 16).

5) 소금을 엎지르면 불길하다가 미신이 있음. 또 역신(疫神)을 물리치기 위해 뿌리는 습관이 있다.

6) 스페인의 왕위 계승을 위한 전투로 1707년 4월 25일 싸움에서 Lord Galway가 이끄는 영국군이 프랑스·스페인 군에게 패하였음

7) merry-thought : wishing-bone이라고도 함. 두 사람이 새의 쇄골(鎖骨)을 서로 잡아당겨 쪼개서, 긴 뼈를 잡은 사람이 소원 성취하는 징조로 판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