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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권연희 |
날짜 : 04-01-31 15:38
조회 :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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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멍하니 정신이 없다. 우리집 개 코로가 갑자기 죽었기 때문이다. 남에겐 보잘 것 없는 한 마리 똥개에 지나지 않지만 내겐 귀여운 한집안 식구였다.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 같다. 그 구멍으로 차가운 비바람이 스며든다, 오늘은 아무와도 다른 얘긴 하고 싶지 않다면 사람들은 나를 센티멘탈 과잉이라고 웃을 테지. 웃어도 할 수 없다.
어차피 구제할 길 없는 바보니까.
어제밤 늦도록 코로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내와 나는 우산을 받쳐들고 여기저기 빗속을 헤매며 개 이름을 부르고 다녔지만, 코로는 아무 데도 없었다. 밤새 개 몰잇군에게 끌려갔나? 그렇게도 생각했으나 날이 새면 경찰에라도 물어 보기로 하고 아침이 되기를 기다렸다.
이튿날 아침, 아내가 경찰에 전화를 걸고 있을 때 이웃 아이가 달려왔다. 코로가 근처 철로 길에 죽어 있다는 것이다. 아내가 허둥지둥 뛰어가더니 이윽고 코로의 시체를 안고 돌아왔다. 얼떨결에 달리는 기차에라도 부딪쳤는지 아무데도 상처는 없다. 지극히 평화로운, 아무런 괴로움도 없는 그런 얼굴로 잠들어 있다.
누이동생도 울고 아내도 울고 이웃사람들도 와서 울었다. 대단치도 않은 한 마리 개이지만 역시 하나의 파문을 던지고 갔다. 아는 이가 자기 집 뜰에 핀 꽃을 꺾어다 주었다. 매양 코로와 같이 놀던 동네아이들도 와서 합장(合掌)해 주었다. 고마운 인정이다. 이 인정이 있길래 세상살이의 고달픔을 잇는 것인지도 모른다.
희로애락의 깊이는 그 사람이 되어 봐야만 안다. 이웃끼리의 정의는 서로 서로가 남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는 데서 우러난다. 나는 문득 정부의 정책변경으로 갑자기 직장을 잃게 된 한 친구가 생각났다. 그의 일가족 ____ 아내와 자식들은 내일의 불안에 떨고 있다. 친구의 한 사람으로 물론 나 자신도 십분 동정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과연 진정으로 나 자신의 일처럼 절실히 그것을 느끼고 있었을까? 자책이 고개를 치켜든다.
정치가 하나에서 열까지 잔인한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그러나 희생당하는 사람의 위치에 서서, 그들이 겪어야 할 불안과 고통을 염두에 두고 정책이 결정되고 시행되는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다수당(多數黨)의 힘을 믿고 억지춘향격으로 만들어진 법들을 치켜세워, <이것이 법>이라고 우격다짐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구세자비(救世慈悲)의 인덕(仁德)일 까닭도 없다.
코로는 필시 제 잘못으로 기차에 부딪친 것이리라. 그렇다면 물론 거기에는 원망도, 분노도 있을 수 없다. 다만 뜻하지 않았던 불행을 슬퍼할 따름이요, 그 불행으로 해서 우리와 더불어 같이 슬퍼해 주는 이웃을 발견한 것을 고맙게 알고 오직 감사할 뿐이다. 그러나 만일에 코로가 자신의 과실 아닌 외부의 잔인한 압력으로 죽은 것이라면 어떠할까? 나 자신부터 잠자코 있지는 못할 것이다. 또 한번 정칭얘기가 되지만 직장에서 쫓겨나게 된 친구의 그 불안이 마침내 분노로 바뀌어졌을 경우를 생각해 본다. 이웃간에 정분이나 신의를 정치에 기대한다는 것은 한갓 부질없는 로맨티시스트의 망상일까?
희로애락간에 우리는 서로서로 좋은 이웃이 되고 싶다. 개인끼리거나, 정치에 있어서나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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