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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의 선사께 / 김정희
  글쓴이 : 류인혜 날짜 : 04-01-07 08:39     조회 : 2456    


1

병석에서 선사의 편지와 선물 꾸러미를 연달아 받으니 매우 기쁩니다. 부처님의 부적이라고 할까요. 아니면 이마를 적셔 주는 감로수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보내 준 차 덕분에 병든 위장이 지금은 시원하게 뚫린 것 같습니다. 더구나 맥이 풀려 있던 때라, 그 고마움이 뼈에 사무쳤답니다.

자흔과 향훈도 차를 보냈구려. 그 넉넉한 마음이 여간 고맙지 않습니다. 나 대신 정중히 감사의 뜻을 전해 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향훈 스님이 따로 박생에게 보낸 엽차는 파공의 추차아에 못지 않게 향미가 있더군요. 가능하다면 내 것도 한 봉지 더 부탁했으면 합니다. 병이 어지간해지면 보잘것없는 글씨로나마 특별히 보답할 생각이니, 향훈 스님에게 나의 이 뜻도 함께 전하여 바로 내 소원이 이루어지게 해 주었으면 합니다. 포장 맛도 매우 좋습니다. 병든 혀를 상쾌하게 해 주었어요. 고맙구려.

진사(震師)의 행적을 적은 글은 인편에 돌려보내니 그대로 행해도 무방할 겁니다. 두 편의 글도 삭제할 것이 없으나 원록(原錄) 속에 상의해야 할 곳이 더러 있을 듯합니다. 그러나 지금 머리가 맑지 못해서 일일이 바로잡을 수가 없을 듯합니다. 게다가 이 일은 하루아침에 끝낼 성질의 것이 못되니 다른 날을 기다려서 고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아니면 그대로 시행해도 무방하고…… 선문의 문자라는 것은 조금 이상한 데가 있더라도 보는 사람들이 알아서 살려 보기 때문이지요.

다른 글은 조금 정신이 맑아질 때를 기다려서 살펴볼 생각이니, 여기서는 자세히 되풀이하지 않겠습니다. 요컨대 백파(白坡) 노인의 마견(魔見)으로 뽑아 와도 다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내가 병든 지 오늘로 50일째가 되었는데, 마치 고인 물이 흐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날마다 열 냥쭝의 인삼을 복용하여 이미 대여섯 근이나 되었으니, 지금까지 버텨온 것도 그 힘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횡설수설. 이만 그칩니다.


2

인편으로 편지를 받으니 선사가 사는 산중이나 내가 사는 이곳이 전혀 다른 세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하늘을 이고 그리워하면서도 어찌해서 지난날은 그처럼 격조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곳은 세밑 주위가 기승을 부려서 벼루 물고 술을 얼리고도 남을 정도랍니다. 선사가 사는 남쪽은 들판에서도 이런 일은 없겠지요. 그러니 따뜻한 암자 속에서이겠습니까. 요새 청아하고 한가한 복을 입어 방석과 향등(香燈)이 한결같고 가볍고 편안하신지요? 그러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몸은 계속 서울에만 있으니, 설이나 지내고 봄이 오면, 다시 한 번 호남으로 갈 신과 지팡이를 매만질까 합니다.

차는 이 갈증이 난 폐부를 적셔 주어 좋지만 얼마 되지 않는 것이 한입니다. 향훈 스님과 전에 차에 대해 약속했는데, 왜 아직 소식이 없는지. 부디 이 뜻을 전하고 차 바구니를 뒤져서라도 봄에 이리로 오는 인편에 보내 주면 고맙겠습니다. 글씨 쓰기도 어렵거니와 인편도 바빠서 이만 줄입니다.

그런데 새로 딴 차는 왜 돌샘과 솔바람 속에서 혼자만 즐기면서 먼 곳에 있는 사람 생각은 하지 않는 것입니까? 서른 대의 매를 아프게 맞아야 하겠구려.

새 달력을 보내니 대밭 속의 일월(日月)로 알고 보시기 바랍니다. 호의는 별고 없으며 자흔과 향훈도 역시 평안하신지요? 두 스님에게도 달력을 보내니 나눠주시고 또한 멀리서 보내는 나의 정성도 아울러 전해 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김세신에게도 달력이 전해졌으면 합니다.


3

편지를 보냈으나 답장이 없구려. 분명 산중에 바쁜 일이 있는 것도 아닐 터인데…… 혹시 나 같은 속인과는 어울리고 싶지 않다는 뜻인가요? 나는 이처럼 간절한데도 그대는 그저 묵묵부답이니…….

머리가 허옇게 센 지금 이 나이가 되어서 갑자기 이처럼 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우스운 일입니다. 아예 절교하자는 말인가요? 이렇게 하는 것이 과연 스님으로서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선사를 보고 싶지도 않고, 또한 선사의 편지도 보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차로 해서 맺은 인연만은 끊어 버리지 못하고 또 쉽게 부숴버리지도 못하여 다시 차를 재촉하는 것이니, 편지도 필요 없고 다만 지난 두 해 동안 밀린 차 빚을 한꺼번에 갚되, 다시는 지체하거나 어긋남이 없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조(馬祖) 스님의 꾸지람과 덕산(德山) 스님의 몽둥이를 맞을 것이니, 이 꾸지람과 이 회초리는 비록 백천 겁이 지나도 피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모두 뒤로 미루고, 이만.


1) 백파 - 조선 시대 말기의 승려. 전북 고창 선운사에 추사가 쓴 비문과 부도가 전하고 있다.

2) 마조 - 당나라 고승 도일선사(道一禪師)를 말한다. 성이 마씨이기 때문에 마조라고 한다.

3) 덕산 - 당나라 고승. 어려서 출가하여 깊이 경륜을 밝혀 <금강경>을 통달하니 그 도가 준엄하여 승려들을 봉살(棒殺)했다 한다.


------------------------***


김정희(金正喜 1786~1856)

호는 추사(秋史) 또는 완당(阮堂) 등 300여 가지. 순조 14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병조판서를 지냈다. 금석학의 대가로 북한산의 진흥왕 순수비를 밝혀냈고 독특한 서체를 창안하여 이른바 추시체로 유명. 저서에는 <완당집>, <금석과안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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