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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준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3년 전 문형동 선생님의 '국물이야기'에 이어 두번째 듣게되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우리 작가회의 역량을 대외에 과시한것 같아 흐뭇한 마음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앞으로도 한 열명쯤은 교과서에 오를 작가가 탄생하지

않겠는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가회 회원님들과 함께 거듭 축하드립니다.

┼ ▨ 작문 교과서에 실린 하재준 선생님의 글 - 작가회 ┼

* 하재준 선생님의 수필 코스모스가
(주)천재교육 출판사에 펴낸
고등학교 작문교과서 84쪽~85쪽에 실렸습니다.
신작수필란에 올리기에도 적당하지 않고 해서 여기에 싣습니다.
수필 감상 다 하신 다음에 위 첨부파일 누르면 코스모스꽃이 환한 웃음을 선사할 겁니다.

코스모스/하 재 준


9월 중순 토요일 오후다. 그간 생활에 지친 번거로움을 모두 잊고 잠시나마 쉬고 싶었다. 나의 몸을 포근히 감싸 줄만한 곳은 없을까. 이 좋은 계절인데, 어느 한적한 시골 호숫가 잔디밭이 좋을 것만 같았다.
생각 끝에 전주 근교에 있는 대아리저수지 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승용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차를 몰고 시내를 빠져 나오는 그 순간부터 길섶의 코스모스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마치 내가 군왕이나 된 것처럼 코스모스의 사열을 받으며 달리는 그 기쁨, 참으로 완연한 가을의 정취가 감도는 이즈음이 아니면 어디서 이같이 상쾌하고 경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집에서 차로 1시간가량 달렸을까 할 무렵, 저편에 대아리저수지가 보이고 좁다란 시골길을 만나자 더 곱고 해맑은 코스모스꽃잎이 마치 지천을 이룬 듯 했다. 난 더 이상 그 앞을 스쳐갈 수 없어 차를 길가 한가한 곳에 세워두고 밖으로 나왔다.
시야에 펼쳐진 들녘, 가을과 더불어 익어 가는 오곡백과였다. 창공을 거울삼아 알알이 붉어 가는 감이 함초로울 때면 결실의 실감이 한결 더해지는 순간이다. 이 모두가 가을의 향연이 아니고 무엇이랴.
방금 전 운전대를 잡고 이곳에 올 때만해도 피로가 온몸을 휘감았는데 언제 회복이 되었는지, 거뜬한 몸은 아닐지라도 가을을 만끽하는데 조금의 불편함이 없었다. 역시 가을이 아니고서는 맛보기 어려운 체험이 아닌가.
말없이 스며드는 가을을 안고 저수지 쪽 풀밭으로 향하려다가 발길을 멈추었다. 들녘에서 농부들이 땀 흘려 일하는 모습이 보였기에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자극을 주지 않으려고 길섶 코스모스가 핀 그곳에 덥석 앉았다. 꽃과 함께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값질 것만 같아서였다.
입으로 불어도 곧 꺾일 것만 같은 그 가냘픈 몸매, 애처로울 정도로 맑디맑은 그 빛깔, 청순한 소녀의 꿈같은 꽃이다. 또 어찌 보면 애상의 화신인 듯 코스모스가 하염없이 애처롭게만 보인다. 마치 천둥과 비바람이 스치고 간 비 갠 이튿날 아침인데도 여전히 먹구름이 주위를 맴도는 것처럼, 어딘가 마음 한구석에 가시지 않고 한숨의 파도는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한 그런 애상에 젖은 꽃이다.
우리가 흔히 애상이니, 애처롭다느니 아니면 서글프고 애달프다 느니 하는 말을 들으면 너무 감상에만 젖은 건전하지 못한 생각이라고들 하겠지만 그렇게 단정을 하기엔 너무 성급한 판단이 아닌가 싶다. 인간의 감정이란 기쁘고 즐거울 때보다 애처롭고 슬프고 애달플 때가 가장 순수하고 진지하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해답이기에 그러하리라.
이른 봄부터 새파란 날개를 접어두고 환희의 그 날을 위하여 마음속으로 그리움을 간직한 채 그 지루하고 긴 여름을 끝내 참고 견디면서, 가을이 오기까지 온갖 고난을 모두 이겨낸 코스모스가 아닌가. 마침내는 뜨거운 정열로 피어내는 코스모스이니 얼마나 질기고 힘차고 장엄한 그 생명력의 의지인가. 그러기에 서릿발에도 굴하지 아니했으리라. 이처럼 대견한 꽃이기에 사실 나는 코스모스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코스모스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본래 원산지는 멕시코다. 그러기에 이 꽃은 동양적인 꽃이라기보다는 서구적인 냄새가 많이 풍기는 꽃이다. 눈물과 소원, 믿음과 기쁨 이러한 모든 것으로 다져진 메마른 땅, 멕시코에서 꽃씨의 싹을 틔웠던 꽃이다. 그러기에 가냘프면서도 끈기가 있고 인내가 있고 그러면서도 힘찬 생명력과 의자가 그 꽃 속에 배어 있는지도 모른다.
소리 없이 젖어드는 가을바람, 끝없이 트인 맑은 하늘, 활활 타오르는 태양은 마지막 과일의 단맛을 내게 하는데 이것들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이 모두가 하나의 생명을 완성시키기 위한 몸부림이랄까. 정녕 그대로의 섭리인 것이다. 대자연의 이치이다. 한 송이 피어난 코스모스, 얼핏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연약한 꽃에 불과하지만 이 꽃이 피기까지 얼마나 많은 진통의 과정을 겪어야만 했을까. 한 생명체가 탄생하기까지는 우연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나서 자라고 죽는 이러한 과정을 겪는 동안 얼마나 많은 희로애락의 사연들이 절절히 숨어 있는가. 한 생명체가 다시 피어오르기까지는 참으로 숭고한 순간순간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이런 때일수록 정말 감사의 기도라도 드리고 싶다. 우주 창조의 신비력 앞에선 인간의 지혜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가을 하늘, 한없이 높은 하늘, 티 없이 맑고 순결한 향훈, 그러기에 아무리 지성이니 의지니 하고 큰소리를 친다 할지라도 역시 가을의 계절 앞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맑고 순수해지지 아니한가. 코스모스의 애상에 젖은 가냘픈 모습을 보면서 가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