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 오늘 방문자수 |
  |
| 어제 방문자수 |
 |
| 최고 방문자수 |
  |
| 방문자수 누계 |
  
|
|
|
|
|
|
|
|
|
|
|
|
|
|
| 글쓴이 : 강승택 |
날짜 : 18-05-16 12:50
조회 : 1525
|
|
|
| F 나의 첫 사랑 이야기.hwp (20.5K), Down : 1, 2018-05-16 12:50:19 |
|
나의 첫사랑 이야기
요즘 젊은이들은 사랑을 해도 얼마나 당당하게 하는지 모른다. 에스컬레이터에서, 지하철 플랫폼에서 마주치는 젊은 청춘들을 보라. 얼마나 멋있고 세련되게 사랑의 장면을 연출하는가. 우리 때에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던 모습들을 보며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흘러간 젊은 날, 나에게도 잊히지 않는 기억 한 토막이 있으니 y양에 대한 추억이다. 사랑에 공식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요즘 젊은이들에 비하면 축에도 못 드는 어설프기 짝이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도 기억 저편, 꿈꾸듯 남아 환영처럼 어른거리는 것을 보면 분명 나에겐 첫사랑이었다.
y양과 나는 같은 과(科) 신입생에다 학보사 기자로 만났다. 선배 기자들과의 첫 대면이 있던 날, 자그마한 키에 깜장 베레모를 쓰고 나타난 여학생이 유독 눈에 띄었는데 y양이었다. 이미 여고 시절 자기 소설책을 낼 정도로 이름이 알려진 아이여서 자연스레 나의 관심도 그리로 향했다. 둘은 수업이 있는 날이면 강의실과 학보사에서, 없는 날엔 학보사에서 마주치니 급속히 가까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학생회 대의원 총회가 있는 날이었다. P 주간(主幹)은 이 내용을 취재해 올리라고 y양과 나를 지목해 지시를 내리고 퇴근해 버렸다. 그러지 않아도 함께 있을 구실이 아쉬웠던 판에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둘은 회의장 끝에 앉아, 하라는 취재는 뒷전으로 미룬 채 필담을 통해 서로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늦은 밤, 학교 언덕을 내려오는데 서울 하늘 위에 뿌려진 별들은 왜 그리도 찬란하고 아름답던지. 옆에 y양이 있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y양과 나는 때로 강의가 없는 날이면 학교 앞 극장을 찾기도 했고 청계천 구정물이 흐르는 다리 밑에서는 ‘세느’ 강의 ‘미라보’ 다리를 떠올리며 낭만에 젖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둘은 서로의 성격이나 취향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상에서 영원으로’라는 영화를 본 날이었다. 주연 배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내가 ‘몽고메리 클리프트’를 좋아했던 반면 y양은 ‘버트랭커스터’를 좋아한다고 했다. 깊은 눈에 우수에 잠긴 듯한 몽고메리의 얼굴이 좋다니까 자기는 버트랑카스타와 같이 적극적이고 행동적인 인간이 좋다고 했다. 왠지 기분이 찜찜했지만 앞으로 맞춰나가면 되겠지 다짐하며 어색한 분위기를 넘겼다.
한 달에 한 번 신문이 나오는 날이면 p 주간은 쫑파티라 하여 기자들을 데리고 막걸리 회식을 시켜줬다. 그 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노랑 양재기에 술잔이 몇 순배 돌고 자리가 파할 무렵이었다. y양이 보이지 않았다. 뒤늦게 한쪽 구석에 쓰러져 누워있는 y양을 발견하고 술도 별로 들지 않았는데 웬일일까 모두 의아해했지만 서둘러 자리를 끝내기로 했다. p 주간은 이날도 나에게 뒷일을 맡기며 일행들과 먼저 자리를 떴다. 둘만 남게 되자 정신 없어보이던 y양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말짱한 얼굴로 팔짝팔짝 뛰며 나를 끌었다.
“K형, 우리 어디로든 가자!” 나는 이때, 여자가 남자를 부르는 호칭이 ‘형’이 될 수도 있음을 처음 알았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남산으로 향했다.
달빛 고요히 흐르는 산책로를 걷다 바위에 앉았을 때였다. y양은 어느 틈엔가 안경을 벗었는데 나는 그 모습이 신비해 보여 나도 모르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여기서 분명히 밝힐 것은 어떤 의도를 가진 것이 절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문외한이었고 경험 또한 있을 리 없었다. y양은 이런 나의 행동을 오해했는지 갑자기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며 입술을 포개왔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나는 그만 숨이 막혀 나도 모르게 여자를 밀쳐냈다.
그 후 y양은 학교에서 봐도 데면데면한 모습이 전과 같지 않았다. 그러다 결정적인 한마디를 했다. 너는 ‘근시안’이라고. 사람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근시안.
‘남산 사건’이후 나에 대한 y양의 태도가 눈에 띄게 무관심으로 변했다. 여럿이 있는 자리에서는 시선을 피하거나 나에게 해도 될 말을 굳이 멀리 떨어진 동료에게 묻는 식이었다.
비가 내리는 오후였다. 교정엔 인적마저 끊어지고 학보사 역시 y양과 나, 두 사람 외엔 누구 하나 찾는 이가 없었다. 말없이 앉아있던 y양이 하모니카를 꺼내 몇 번 불어보더니 선물이라며 건넸다. ‘선물이라니 뜬금없이 무슨 의미일까? 이럴 때 나의 감각은 유독 발달했는지 ‘이별’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맞다. 이별!’ y양은 지금 나에게 아름다운 헤어짐을 통보하는구나. 그녀의 풍부한 소설적 상상이 이런 장면을 연출할 수도 있구나 생각하니 하늘이 노래왔다. 나는 마음이 급했고 절박한 심정이 되어 한사코 받지 않겠다고 거절했다. 마음을 돌리라고 사정도 했다. 그러나 여자의 마음은 돌아선 지 오래인 듯 하모니카를 밀어 놓은 채 밖으로 뛰쳐나갔다.
비 오는 교정을 달리고 쫒느라 둘이는 한참을 뱅뱅 돌았다. 마침 야간 강의가 있어 올라오시던 동리 선생께서 이 모습을 보시게 되었는데 교수님께선 한참을 의미 있는 표정으로 바라보시더니 발길을 옮겼고 그 결과는 머지않아 강의실에서 나타났다.
소설습작 시간이었다. 교수님께서는 그 날 발표할 원고를 미리 뽑아 오셨는데 제일 위에 나의 작품이 얹혀있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 무렵 y양과의 이야기를 소재로 70매 분량의 소설을 써 과제물로 제출했는데 제목이 ‘너와 나’였다. 거의 사소설(私小說) 수준에 가까운 내용이어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날 빗속에서 한참을 바라보셨던 동리 선생님만은 훤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너와 나, 세상을 모르는 남자와 조금은 조숙한 여자의 어설픈 사랑이야기. 마침 이 날, y양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금 늦게 나타나 제자리에 앉더니 글의 내용이 자기의 이야기임을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숙인 채 힘없이 앉아있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여기에 덧붙여 떠오르는 기억하나가 있다. 이 무렵, 지금은 없어진 동아 방송국이 개국기념으로 “5월의 꿈”인가 하는 제목의 드라마를 내보냈다. 어린 남녀의 사랑을 그렸는데 그 내용이 얼마나 애절하던지 나는 마치 나의 이야기라도 되는 듯하여 밤마다 얼굴을 묻고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
‘너와 나의 행복이 거기 있다면 /구름을 타고라도 가야만 한다. /너와 나의 행복이 거기 있다면 /구름을 타고라도 가야만 한다.’
이렇게 끝나는 주제가는 왜 그리도 서럽던지 모른다.
이제 나의 짧았던 사랑 이야기는 여기서 끝을 맺는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내용이지만 지난날을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더없이 행복하고 좋았다.
|
|
| 임재문 |
18-05-17 00:41 |
 |
|
첫사랑의 추억이 담담하게 그려져 저도 그 언젠가 첫사랑을 더듬어 보고 싶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강승택 선생님 !
|
|
|
| |
| 강승택 |
18-05-18 19:52 |
|
|
돌아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 기억입니다. 문득 아련한 추억으로 떠올라 되살려보았습니다만 흉이나 되지않을까 조심스럽네요~ ㅎ
|
|
|
|
| 김용순 |
18-05-18 16:18 |
|
|
와!!! 강선생님 간이 약간 부풀었네요. 그래도 그 정도에서 그쳤습니다. 첫사랑이고 둘째 사랑이고 사연은 많지만,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 되어야 육신이 편안할 것 아닙니까. 나는 그녀가 누군지 알고 있는데, 그래도 간접적이라도 늙어가는 모습을 간혹 볼 수 있어 다행입니다. 괜히 나까지 옛날 생각나게 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
|
|
| |
| 강승택 |
18-05-18 19:57 |
|
|
ㅎㅎ 김선생님, 무슨 말씀 하시고싶은지 대충 짐작 갑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 나이에 아무려면 어떻겠습니까. 김선생님이야말로 풀어놓을 보따리가 많아보이는데 용기를 내보심이 어떠하리까?
|
|
|
|
| 이방주 |
18-05-20 22:48 |
|
70년대 그 시대 남자 대학생들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가난해서 용기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유교적 사고방식말라붙어 헤어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여자들이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강선생님도 참 그렇게 준수한 외모와 남자다운 목소리를 가지셨으면서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지 못하신 것을 보니 답답합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으니 인생의 향기로운 여정이라 하겠습니다
|
|
|
|
| 강승택 |
18-05-21 10:40 |
|
|
이 선생님. 참 답답하지요? 지금 생각해도 그 날 저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많이 후회하고 있어요.참고로 70년대가 아니라 60년대입니다. 군복 바지 검정물 염색해 입고 다니던 시절, 마음도 몸도 꽁꽁 얼어붙었던 .
|
|
|
|
| 김권섭 |
18-05-22 07:52 |
|
이루지 못한 첫사랑은 늘 회한으로 남으며 아름다운 추억이 되는가 싶습니다.
‘지나가는 것은 그리워지나니 ‥.’
아름다운 젊은 날의 동화 같은 강선생님의 첫사랑 잘 숙지했으며
늘 평안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
|
|
|
| 강승택 |
18-05-22 18:33 |
|
|
김선생님 말씀처럼 철없던 시절의 풋내기 사랑이라고나 할른지요. 나이가 드니 지나간 시절이 추억으로 떠오르는군요. 감사합니다.
|
|
|
|
| 일만성철용 |
18-05-23 07:43 |
|
종종 읊어 보는 애송시가 생각납니다.
-다른 사람 나의 님이 되어 오다.
너 깊은 맹세를 저버림이라.
허나 술에 취하였을 때
잠의 높은 고비를 오르 내릴 때
죽음에 직면하였을 때
갑자기 너의 얼굴 마주친다.
-예츠
|
|
|
|
| 강승택 |
18-05-23 17:31 |
|
|
일만 선생님, 감사합니다. 변함없이 노익장을 자랑하시는 선생님의 일상이 부럽습니다. 애송시에 얽힌 사연이 궁금하군요. 늘 건강 하시기바랍니다.
|
|
|
|
| 임병식 |
18-06-09 16:48 |
|
첫사랑은 늘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그리움같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것은 대개 이루워지지 않고 미완으로 끝나기에 더욱 안타깝고 기억에 늘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추억한 한자락을 잘 감상했습니다.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