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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김권섭 |
날짜 : 18-01-15 15:40
조회 : 1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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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서정抒情
김 권 섭
내가 어렸을 적 겨울에는 거의 찬바람이 불고 눈이 내렸다. 얼음이 꽁꽁 얼고 몹시 추웠다. 아침 밥상에 반찬 그릇이 스케이트를 탄다. 문고리가 얼어서 잡으면 진득진득 했다. 방안에 있는 걸레도 언 적이 있었다. 봄날 피는 벚꽃은 찬연하지만, 겨울 날 눈꽃은 허무하게 흩어진다. 겨울에는 혹한이 계속되어, 날씨가 풀어지기만을 고대하는 입춘 설날만을 바랬다. 섣달 그믐날은 설날 준비물을 사러 장에 가는 날이다. 집에서 장까지는 십리가 넘었는데 길이 온통 수렁이 되어 장화를 신지 않는 사람은 온통 흙 범벅이 되었다. 우리 집에는 장화가 한 켤레도 없어 장에 다녀오신 부모님 모두 흙탕물속에 다녀오신 듯 했다.
겨울에는 내내 눈이 발등을 덮고 무릎까지 찰 때도 있다. 눈이 오는 밤이면 족제비와 살쾡이가 들에 먹이가 없으니 집에 기르는 닭을 잡아먹으러 슬금슬금 다녔다. 그러면 아버지는 나무판자로 만든 덫으로 심심찮게 이들 날 짐승을 잡았다. 가끔 초저녁에는 초가지붕 처마에 자는 참새를 잡았다. 잡은 참새를 구워 먹는 날이면 그렇게도 구수했다. 그 당시 우리 집 초가지붕은 다른 집 보다 유독 두꺼워 참새가 많이 살았다. 본채 사칸, 행낭 채 칠 칸, 별도 창고가 있었는데 확실히는 셀 수 없었지만 집안에 사는 참새들이 수 십 마리가 되는 성 싶었다. 이런 참새가 벼가 익을 때면 벼논에 날아와 참새 쫓기에 품이 많이 들었다.
눈이 내리지 않는 날이면 연을 들고 나가서 연을 날렸다. 바람이 세게 불수록 연은 더 높이 난다(風迅鳶騰). 그러다가 스케이트 타고 싶은 생각이 들면 얼음판에 나가서 스케이트를 탔다. 내가 사는 마을 앞에는 섬진강이 흘렀다. 수 만 마리의 청둥오리 떼가 강에 내려서 먹이가 되는 물고기나 다슬기를 찾아 다녔다. 깊은 강물이었는데 두껍게 얼음이 얼어 물소리도 나지 않았다.(靜水流深 深水無聲). 스케이트를 타러 가면 청둥오리 떼는 저만치 날아간다.
어느 때는 스케이트를 타다가 보면 한 낮이 된다. 주변 강가 가장자리가 어느새 얼었던 얼음이 깨져 발을 적시면 그 때는 집으로 돌아와 양말을 갈아 신고 팽이치기를 했다. 마당에서 팽이를 실컷 내리치고 돌려놓은 다음 집을 한 바퀴 돌 때도 있다. 나무로 깎은 팽이도 치고 자전거 부속에서 나온 쇠 팽이도 쳤다. 나무 팽이보다 쇠 팽이가 더 오래 빙빙 돈다. 팽이를 치다가 지치면 제기도 찼다. 제기는 엽전에 얇은 종이로 만든 것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 오래 공중에서 논다. 일제 강점기에서 내가 어릴 때 까지 아버지는 군청에 다니셨다. 그래서 얇은 종이의 서류 뭉치가 많았다. 그 중에 세로로 잘 찢어지는 종이를 택하여 제기를 만들면 아주 제격이었다.
눈이 많이 내린 날에는 형제자매들과 따뜻한 온돌방에서 이불에 발을 넣고 화투를 쳤다. 화투치기를 해서 주전부리를 사먹는 재미가 특히 좋았다. 화투치기를 하여 내가 지면은 나는 가끔 앙탈을 부리는 때도 있었지만 아버지는 오히려 언제나 자매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시골의 겨울은 농한기로 방안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짚으로 멍석도 만들고 가마니틀로 가마니도 치고 소꼴 망태도 만들었다. 나는 멍석이나 꼴망태는 만들지 않고 짚으로 새끼를 꼬았다. 새끼를 꼴 때는 입의 침으로 “퉤 퉤” 침을 뱉으며 새끼를 꼬았다. 그러다가 지루하면 고구마를 화로에 넣어 구워먹었다.
겨울방학이면 할머니가 감춰둔 창고에 들어가 제사 때 사용할 곶감이나 대추를 먹는 날이면 나중에 할머니에게 들키어 꾸지람과 동시에 팔등을 꼬집혔다. 할머니는 누님이나 여동생들이 눈에 거슬리면 “이! 가시내 년들..”하고 심하게 나무라지만 나에게는 별로 나무라는 일이 없었다. 나는 ‘헤헤’ 잘 웃고 다닌다고 “헤 보!” 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막내 남동생이 태어났다.
우리 집에서는 할머니 입김이 가장 셌는데 할머니는 나많을 위해 주셨기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도시로 나가 다닐 때에도 겨울이면 자취하는 나의 방에 오셔서 식사며 빨래까지 다 해 주었다. 도회지 내 자취방에서 할머니와 함께 밤을 보낼 때였다. 밖에서 “메밀묵” “찹쌀떡” 하고 외치니 할머니는 속주머니에 간직한 돈을 털어서 사 주셨다. 그런데 정작 먹어 보니 할머니가 해주신 음식만 훨씬 못했다.
가을 추수가 끝나고 겨울에 할머니는 내가 공부하는 도시의 자취방에 오신다. 무 하나를 가지고도 새우, 굴, 명태, 오징어, 갈치 등을 매번 갈아서 맛있는 반찬을 내 놓으셨다. 적은 돈을 드려서도 어찌 그리도 맛있게 반찬을 만드는지 할머니의 음식솜씨는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할머니는 97 세까지 정갈하게 사시다가 본가에서 운명하셨다. 나는 군대도 눈 오는 날 겨울에 입대했다. 결혼도 겨울에 했다. 혹한의 겨울을 견딘 가지 위에 봄에 잎이 돋는다. 겨울이 지나면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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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8-01-16 0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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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권섭 선생님 ! 겨울 서정이 저와 비슷합니다. 저도 어릴 적 초가집에서 살았습니다. 따뜻한 남쪽나라 전남 해남 ! 겨울에 눈이 오면 양짓쪽 부터 눈이 녹아 그림을 그리듯이 들어나던 뒷산봉우리들 ! 초가 처마끝에 주렁주렁 매달린 고드름을 보며, 썰매를 타고 팽이를 돌리고, 연날리던 그런 어린시절의 고항의 겨울이 새록새록 생각납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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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섭 |
18-01-16 08: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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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생님! 언제나 먼저 찾아주시고 나눔을 먼저하니 더욱 반갑습니다.
손님들이 많아도 맨 먼저 온 손님과 악수를 하면 오래 웃음 꽃이 머물지요.
같은 전라남도 동향이니 초가집, 처마끝의 고드름, 썰매, 팽이, 연날리기, 자치기
그런 어린시절 추억들로 새록새록 고향 생각 간절하지요!
남은 세월 건강 잘 챙기시며 평안하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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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8-01-16 08: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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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 한겨울 풍경이 눈에 선하게 그려놓았습니다. 그시절 농촌에서 자란 소년들은 대부분이
현겨울이면 그런 놀이를 하면서 지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우리마을에 산 맡에 있어서 눈이 오는날을 토끼몰이를 많이 나갔지요.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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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섭 |
18-01-16 0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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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복지관에서 처음 상면한 분이 고향을 묻기에 "전남 곡성"이라고 했더니
"그런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은 추억 거리가 많겠지요?" 해서
60여년 전을 회상하며 추억을 재주없는 필로 써봤습니다.
중학교 다닐 때 뒤에 "동악산"이 있었는데 2학기 학기말 고사가 끝난 직후
토끼몰이를 가서(반 전체) 여러 마리 토끼를 잡아온 추억이 떠오릅니다.
어린 시절은 아주 긴 것 같은 데 성인이 되니 가는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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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행원 |
18-01-16 1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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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권섭 선새님, 추운 겨울 어떻게 보내고 계십니까.
구수하게 익숙하게 써내는 글 솜씨가 대단합니다.
어릴 때의 따스한 추억에 공감을 가집니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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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섭 |
18-01-16 13: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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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석계선생님! 그간 안녕하셨지요?
지면을 통하여 뵈도 반갑습니다.
선생님 생각만 해도 따뜻한 정이 절절이 느껴옵니다.
추운 날도 가고 봄이 가까이 오니 천리향보다 만리향보다 진하게 풍겨옵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과 행복이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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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자인 |
18-01-18 13: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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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어릴 때의 풍경이 고스란히 살아있으시네요.
스케이트, 온돌방, 멍석, 가마니, 얼음, 팽이치기 등 그 시절의 풍경이 눈에 선한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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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섭 |
18-01-18 18: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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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인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선생님을 주위에서 칭찬할 때마다, 저도 역시 응원하고 나면 기쁨입니다.
한국수필을 통하여 인사 나눔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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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8-02-04 13: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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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권섭 선생님, 한 50여년 전 겨울 농촌 풍경을 그림을 그리듯이 묘사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작품으로 아련하게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듯합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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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섭 |
18-02-08 01: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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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주선생님 반갑습니다. 등산도, 문학 활동도 선두에 서서 열심히 하는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늘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사시니 선생님의 글을 접할 때 마다
삶의 활력소가 됩니다. 격려의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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