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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임병식 |
날짜 : 17-12-27 18:21
조회 :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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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의 기억
임병식 rbs1144@hanmail.net
‘협동’을 생각하면 향약이나 두레풍습이 떠오르면서 울력, 협력, 조력이란 말이 뇌리를 스친다. 그러면서 농촌에서 흔히 이루어지던 모내기와 탈곡의 풍경, 그 밖에 씩 불시에 일어나는 화재시에 다투어 달려가 불을 끄던 광경이 그려진다. 그런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가.
협동하는 일은 하나같이 힘이 들고 위험하기도 한 것이지만 그러나 어울리는 사람들은 누가 하나 싫은 기색이 없이 손바람을 내어 도왔다. 그 운김이 놀라운 힘을 발휘했다.
아마도 그 원류는 향약일 것이다. 예전에 나는 그 원류에 해당하는 기록이 전해지는 고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영암 구림마을로 그야말로 그 전통을 보여주는 고문서가 보존되어 있었다. 실로 500여년의 흔적이 고색창연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을 보던 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사람의 한생애도 결코 평탄할 수가 없는데 그것을 500여 년을 이어오며 얼마나 어려움을 많았을까. 서로 양보하고 결속하며 이끌고 밀어주는 손길이 없었다면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닥치는 어려움은 어쩔 수가 없다. 이때는 망연자실하지 않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그것도 한 두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은 협동하여 힘을 보태야 한다.
돌이켜보면 나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몇 차례 고마운 손길의 조력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 일들을 역순으로 더듬어 보면 비교적 근자의 일로는 자동차를 논바닥에 빠뜨린 일이 기억난다.
그해가 1976년 이었던가. 무슨 국민투표인가 하는 행사가 있어서 당시 도청기동대에 근무하던 나는 보성으로 경비배치를 받고 봉고차에 병력을 싣고서 현지로 내려왔다.
그런다음 요소에 배치를 마치고 늦은 저녁시간에 인근에 있는 고향집을 들르게 되었다. 그런데 운전기사가 마을입구에 이르러 차를 돌리려다가 그만 논 귀퉁이에 빠지는 사고를 내고 말았다. 아뿔사! 이런 낭패가 있을 것인가. 빠진 차는 기아를 변속할수록 바퀴가 헛돌며 자꾸만 더 깊숙이 박혀버리는 것이었다. 난감했다.
다음날 날이 새는 대로 바로 현장으로 가서 경비상황을 감독해야 하는데 큰 낭패였다. 잡에 들러 안부도 물을 새 없이 긴급구조부터 요청을 하는 수 밖에 없었다. 해는 져서 땅거미는 짙어오는데 더 지체했다가는 큰 일이었다. 고맙게도 앰프 방송을 들은 마을주민들이 삽과 가마니를 들고 몰려나왔다. 그것으로 한편에선 바퀴 밑을 파서 짚단과 가마니를 집어넣고, 일부의 사람들은 꽁무니에 붙어서 차를 밀어냈다.
그렇게 한 30분이 지났을까. 차가 어렵사리 끌어 나왔다. 그것을 보면서 나는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힘을 합쳐 끌어내준 것이 고마워서 울컥해지기도 하였다.
또 한 번은 직장초기에 소주정을 타면서 심한 풍랑을 만나 배가 침수되었을 때이다. 전날 바람이 심히 불어 불안한 마음에 선착장을 나가보니 배들이 뒤죽박죽 뒤엉켜 엉망이 되어 있었다. 일부 배들은 닻이 뽑히고 우리가 몰던 소주정은 절반쯤 침몰이 된 상태였다. 그 상황이 여간 심각하지 않았다. 바로 옆이 방파제인데 파도가 거세지기라도 한다면 부딪쳐서 파손되는 것도 시간 문제였다.
그 상황을 보고서 구조을 요청하니 동네 주민 10여명이 한달음에 달려와서 도와 주었다. 자기 배들은 갈무리 할 생각도 않으면서 우선 소주정이 파곤되는 걸 막겠다며 삿대로 밀어서 방패제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주었다. 이를 보고서 또 얼마나 감격해 했는지 모른다. 그 무렵 다른 지역에서는 동일한 소주정이 전파되어서 손해배상까지 했던 일이 있어서 고마움은 갑절로 느껴졌다.
가장 오래된 협동의 모습은 내가 어렸을 적 목격한 장면이다. 6.25전쟁이 발발하던 해, 큰댁이 방화가 되었다. 들리는 말로는 북한 괴뢰군의 소행이 아니라 지방 폭도의 짓이라 했다. 이슥한 밤이었는데 불이 본채에 먼저 붙고 외따로 떨어진 대문 행랑채는 나중에 불길이 일었다.
그때 다섯 살이던 나는 누나의 손을 잡고 골목가까이서 보고 있었다. 본채는 이미 타서 무너지고 행랑채의 대발로 엮인 닭장에 불이 붙고 있었다. 동네사람들은 구름같이 몰려들어 물을 퍼서 나르고 일부는 그 물을 받아서 끼얹고 있었다. 어린 눈에도 온 동네사람들이 나와서 돕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채는 시커먼 숯덩이로 변해버렸다. 그렇게 빨리 따버린 것은 폭도들이 미리서 마루에다 장작이 쟁이고 석유를 뿌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 와중에서 행랑채는 겨우 화마는 면했다. 다만 닭장만이 대발로 만들어져서 소실되었다.
지방폭도들이 불을 지른 건 무슨 이유였을까. 무슨 눈엣가시로 여긴 억하심정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할아버지 쩍부터 가난 구제에 앞장을 섰다고 들었는데 그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던 것일까. 나는 나중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그 곳에서 큰아버지와 아버지가 망연자실하여 서계시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복구는 나중에 정부에서 일부 목재지원과 마을 뒷산에서 베어온 나무로 새집을 마련하게 되었지만 그때 살림에 큰 구멍이 난 것은 어쩔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큰아버지와 아버지는 그런 일에는 내색을 않으시고 동네사람들이 힘을 합쳐 불을 끄는데 동참해 준 것을 두고 두고 고마워하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무엇보다도 다른 마을과는 달리 한 동네사람이 그런 짓에 가담하지 않은 것을 고맙게 여기셨다. 아마도 인심은 잃지 않고 사셨다는 것을 새기신 것 같았다.
이런 일련의 일들에서 보듯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은 별별 애환을 다 겪는다. 그러면서 협동하여 도와주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한다. 어떤 집에서 가장이 갑자기 입원을 하거나 사망할 때는 모두가 떨쳐나서 추수작업을 도와주고, 태풍으로 담장이 무너지면 내일같이 나서서 도움을 준다. 그 런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세상이 급변하여 대가족제도가 무너지고 이웃마저 담을 쌓고 살아가는 지금의 세상에서는 여간 소망스럽게 생각되는 광경이 아니다. 어느 외국인이 한국에 살면서 느끼는 소회를 말하면서 한국 사람들이 특별히 인정이 많음을 든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아직도 아름다운 전통이 이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여간 흐뭇하지 않았다, 그 연장선에서 서로 돕는 미풍양속도 함께 이어졌으면 하고 바라본다.
아름다운 협동정신, 고마운 조력의 기억을 떠올리면 정말 살맛이 난다. 부디 그것이 추억으로만 머물지 않았으면 한다. 이타정신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이웃을 이웃답게 하는 마지막까지 지녀야할 덕목이 아닐까 .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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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문 |
17-12-27 22: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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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선생님 ! 포항 지진피해를 많은 사람들이 많은 손길들이 도와서 복구가 순조롭게 이루어져 가고 있는 것을 봅니다. 제천 화제 참사 현장에도 구원의 손길이 이어져 귀한 생명을 구해낸 것을 봅니다. 우리나라가 아직은 협동정신이 살아 있다고 생각을 해서 얼마나 마음이 따뜻해져 오는지 모릅니다. 저도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도와가며 살고 싶어집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임병식 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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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7-12-28 2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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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문 선생님 잘 게신지요.
댓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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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자인 |
17-12-31 15: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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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선생님 글을 읽으니 협동하는 마음이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됩니다.
협동하는 마음은 주위를 따뜻하게 하지요.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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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8-01-01 08: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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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인 선생님 무술년 황금개띠해 건강하시고 좋은글 쓰시는 한 해되시길 바랍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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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섭 |
18-01-15 15: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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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 작품을 쓰면서 원류가 되는 영암 구림 마을를 찾으시고
우리민족의 좋은 협동정신을 상고하셨음은 평소 작가의 치열함에 존경스럽습니다.
지금까지 몇 번의 환난을 겪었지만 "상부상조"로 잘 지내옴은 축복이었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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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8-01-16 08: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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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림마을에서 만난 500년된 상조계의 명부는 감동적이었습니다.
마을의 애경사를 치른 기록이 상세히 적혀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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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주 |
18-02-04 13: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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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선생님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과거 시골에 살 때 온마을 사람들이 합심하여 동네의 일을 해결던 생각이 납니다. 어느 댁에 초상이 나도, 경사가 있어도, 마을 길을 넓힐 때도 모두 자기 일처럼 나와서 동참했었지요. 지금 그런 아름다운 일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바른 정치는 국민의 후생과 복지에도 있겠지만 국민들의 의식을 아름답고 바르게 이끌어나가는데도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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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식 |
18-02-04 16: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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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부상조하던 전통의 미풍양속들이 시대가 급변하다보니 많이 사라지고 있어 아쉽습니다.
정치집단은 물론 다른 이익집단들도 완충지대가 사라지다보니 첨예헤 부딪치고 살벌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이방주 선생님 댓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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